설 연휴의 영화들

설 연휴의 영화들

  • 364호
  • 기사입력 2017.01.25
  • 취재 이종윤 기자
  • 편집 최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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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설이다. 설 대목 극장가는 항상 붐빈다. 그만큼 많은 영화의 흥망이 결정되는 때이기도 하다. 과연 어떤 영화들이 설 연휴 관객들의 선택을 받아 왔을까. 또 이번 설에 웃을 영화는 무엇일까. 2013년부터 설 연휴 박스오피스의 동향을 살펴보았다.

1980~90년대 설 극장가는 성룡의 주 무대였다. 아직도 명절이면 많은 이들이 그의 영화를 떠올리는 이유다. 그러나 1999년 강제규 감독의 <쉬리>가 놀라운 흥행 성적을 거두며 설 극장가의 판도가 바뀐다. 한국영화의 활약이 시작된 것이다. 한국영화는 그 후 꾸준히 관객들의 설 연휴를 책임졌다.

2013년도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10위권 영화 중 절반이 한국영화다. 매출액 점유율도 합쳐서 80%에 육박한다. 눈에 띄는 것은 <7번방의 선물>의 약진이다. <7번방의 선물>은 최종 관객수 1200만 명을 넘기며 2013년 흥행 1위, 역대 박스오피스 7위를 기록했다. 설 기간에도 액션 블록버스터 <베를린>를 앞지르며 순항을 이어갔다. 관객의 웃음과 눈물, 두 마리 토끼를 성공적으로 잡은 결과다.

화려한 볼거리를 선사하는 액션 영화도 설 극장가에서 입지가 건재했다. 첩보 액션 영화 <베를린>은 개봉 전부터 스타 감독을 비롯한 호화 캐스팅으로 기대를 모았다. 순제작비 108억 원과 해외 올 로케이션으로 수준 높은 액션을 보여준 <베를린>. 대기업 CJ E&M이 배급까지 맡으며 설 연휴에 좋은 성적을 거뒀다. 이어서 <다이하드: 굿 데이 투 다이>가 설 연휴 박스 오피스 3위를 차지했다. 이 영화는 <다이하드> 시리즈의 다섯 번째 편으로 당시 시리즈 25주년을 맞았던 전통 깊은 액션 영화다.

이 밖에도 애니메이션 영화들이 연휴를 맞아 가족 단위 관객들을 끌었다. <눈의 여왕>, <뽀로로 극장판 슈퍼썰매 대모험>, <몬스터 주식회사>, <명탐정 코난: 은빛 날개의 마술사>가 순위에 올랐다. 매출액 점유율은 낮지만 10개의 영화 중 무려 4개가 애니메이션이다. <몬스터 주식회사>는 12년 만에 3D로 재개봉하여 2013년 재개봉 영화 흥행 1위에 오르기도 했다.

2014년 설은 ‘그녀들’이 접수했다. 여성 주인공을 내세운 <수상한 그녀>, <겨울왕국>, <조선미녀삼총사>가 순위에 올랐다. <수상한 그녀>의 성공은 놀라웠다. 흥행에 불리한 여성 원톱 영화였고 티켓 파워를 자랑하는 대형 배우도 없었다. 감독과 출연진에게도 이 영화는 도전이었다고 한다. <도가니>로 메가폰을 잡았던 황동혁 감독은 이 작품으로 처음 코미디 영화를 시도했다. 아이돌 그룹 B1A4의 진영도 처음으로 연기 활동을 펼쳤다. 심은경 역시 유학 후 오랜만에 연기를 하며 성인 연기자로서 첫 걸음을 내디뎠다고 말한 바 있다. <수상한 그녀>의 흥행은 ‘유머 코드’와 ‘감동 코드’를 잘 배합한 영화가 명절에 승리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2014년은 <겨울왕국>의 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는 북미에서 큰 흥행을 거두고 우리나라까지 휩쓸었다. 어린이들은 물론이고 성인들까지 두 자매의 이야기에 열광했다. 영화는 설 연휴 인기 고공행진을 펼치더니 애니메이션 사상 처음으로 관객수 천만을 돌파했다. 애니메이션 명가 디즈니의 저력을 다시금 보여주었다. 인기의 일등공신은 단연 ‘Let it go'를 비롯한 영화의 OST다. 훌륭한 음악은 영화의 인기를 배가한다. <인사이드 르윈>도 마찬가지다. <인사이드 르윈>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감독 코엔형제가 3년의 공백을 깨고 선보인 첫 음악영화다. 영화는 미국 60~70년대의 포크음악을 다룬다. 감독의 연출과 음악이 어우러지며 소소하지만 설 연휴 박스오피스 10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변호인>은 10위권 영화 중 유일한 전년도 개봉작이다. 해가 바뀐 후에도 꾸준히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쉽게 얻은 결과는 아니다. 영화는 고 노무현 대통령의 이야기와 부림 사건을 다룬다. 개봉 당시 영화는 정치 색깔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영화의 제작자였던 최재원 대표는 최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변호인>을 제작한 후 자신과 관련된 영화들이 정부의 투자를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영화 개봉 후 많은 투자자들의 원망을 들었다고도 한다. 그러나 영화는 결국 천만이 넘는 관객들의 선택을 받았다.

2015년 설 박스오피스에 의외의 영화가 자리했다. B급 감성의 청소년 관람불가 외화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가 그 주인공이다. 설 극장가에서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의 영화는 살아남기 어렵다. 외화라면 더욱 그렇다. 설 연휴 박스오피스 2위라는 성적이 놀라운 이유다. 설 이후에도 이례적인 행보는 계속되었다. 영화는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의 외화 중 처음으로 관객수 500만 명을 돌파했다. 우리나라가 각별히 사랑한 영화였다. 우리나라는 영화가 개봉한 60여 개국 중 흥행 수익 2위에 올랐다. 영화의 배경이 된 영국보다도 흥행 수익이 높다.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는 B급 감성의 코메디 영화가 부족했던 우리 극장가의 틈새를 잘 공략했다는 평을 받았다.

<이미테이션 게임>도 설 연휴 예상치 못했던 강세를 보였다. 설 극장가에서 선전하는 액션이나 코미디에서 한참 벗어난 영화였다. 주연배우들의 힘이 컸다.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영국드라마 <셜록>으로, 키이라 나이틀리는 영화 <비긴 어게인>으로 한국 관객에게 진즉부터 사랑받은 배우다. 영화는 낯익은 배우들을 앞세워 설 기간 뜻밖의 성적을 냈다. 영화의 작품성이 받쳐주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이미테이션 게임>은 아카데미 시상식 8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고 각본상을 수상하여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조선명탐정: 사라진 놉의 딸>이 설 연휴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며 전편의 흥행 기록을 이었다. 전편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도 2011년 개봉 당시 설 연휴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한 바 있다. 설 연휴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한 조선명탐정 시리즈는 3편 제작이 확정되었다. 코미디 영화가 설에 꾸준히 사랑받듯 설 박스오피스에 계속 이름을 올리는 배우도 있다. 바로 오달수다. 오달수는 2013년 <7번방의 선물>, 2014년 <변호인>으로 설 극장가를 찾았다. 2015년에는 순위에 오른 <조선명탐정: 사라진 놉의 딸>과 <국제시장> 무려 두 편의 영화가 오달수의 출연작이다. <국제시장>은 전년도 개봉작이나 설까지 좋은 성적을 유지하여 역대 박스오피스 2위에 올랐다. 오달수는 <7번방의 선물>, <변호인>, <국제시장> 후 <암살>, <베테랑>, <도둑들>을 천만 영화 반열에 올리며 누적 관객 1억명을 달성했다.

<검사외전>의 압승이다. 설 극장가를 찾은 대다수 관객이 <검사외전>을 택했다. 그러나 영화의 흥행을 두고 스크린 독과점 논란이 일었다. 영화관들은 <검사외전>에 스크린을 몰아준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실제로 <검사외전>은 개봉 후 2주간 3대 멀티플렉스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에서 50% 내외의 상영 횟수 점유율을 보였다. 영화는 기세를 이어 설 극장가에서도 스크린을 대거 확보했다. 극장가의 고질적인 ‘스크린 독과점’ 문제가 다시 불거진 이유다. 가볍고 즐거운 영화의 내용과는 상반된 상황이다. 영화는 코미디 장르에 맞게 강동원과 황정민의 유쾌한 연기가 돋보였다. 경쾌한 붐바스틱 노래와 강동원의 춤이 유행하기도 했다. 전년도 개봉작 <히말라야>가 순위에 오르며 황정민은 2016 설 연휴 박스오피스에 두 번 이름을 올린 배우가 됐다. 2위는 드림웍스의 <쿵푸팬더3>가 차지했다. <쿵푸팬더1>과 <쿵푸팬더2>가 앞서 4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여 <쿵푸팬더3> 흥행의 초석을 다진 결과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내한한 배우 잭 블랙의 효과도 컸다. 그러나 큰 흥행을 거두기엔 <검사외전> 돌풍이 거셌다.

그렇다면 올해 설 극장가의 모습은 어떨까. 네 편의 영화에 주목해보자. 설을 열흘 앞두고 대형 한국영화 두 편이 같은 날 개봉했다. 조인성, 정우성 주연의 <더 킹>과 현빈, 유해진 주연의 <공조>. 두 영화 모두 캐스팅이 화려하다. <더 킹>은 정치드라마이자 블랙코미디로 부패한 권력에 대한 영화다. 적절한 시기에 개봉을 했다. 비슷한 내용의 영화 <내부자들>, <베테랑>, <마스터>도 흥행을 거뒀다. <더 킹>은 어떤 차별화된 매력으로 설 연휴 관객들을 만날까. <공조>는 화려한 액션과 유해진의 코믹 연기가 기대된다. 현빈과 유해진, 두 남자의 호흡도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두 한국영화에 애니메이션 영화들의 공격이 거세다. <겨울왕국>과 <빅히어로>의 성공으로 상승세인 디즈니가 최근 회심작 <모아나>를 선보였다. 디즈니는 몇 년에 걸친 조사와 답사 후 <모아나>를 제작했다고 한다. 영화는 개봉 후 연일 좋은 성적을 냈다. <모아나>가 <겨울왕국>의 열풍을 재연할 것인지 기대가 모아진다. 또 다른 화제작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너의 이름은.>이다. 1월 초 개봉과 동시에 수많은 팬들이 생겼다. 영화가 흥행하면서 <초속 5센티미터>를 비롯한 감독의 전작들이 연이어 CGV에서 재개봉했다. 1월 초에 개봉한 <너의 이름은.>이 얼마나 오래 극장가에 걸려 있을지 궁금하다.

2017년 설 연휴에 극장을 찾는다면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도 다양한 영화가 설 대목 극장가를 풍성하게 만들어주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