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굿즈의<br> 시대

영화 굿즈의
시대

  • 370호
  • 기사입력 2017.04.30
  • 취재 이종윤 기자
  • 편집 최재영 기자
  • 조회수 7950

당신은 영화의 감동을 어떻게 간직하는가. 영화를 기념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혹자는 글로 감상을 남긴다. 사진을 찍어 기록하는 이들도 있다. 필자의 경우 영화 굿즈를 모은다. 영화와 관련된 물품을 보고 있자면 영화가 주었던 감정이 되살아난다.

필자와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많다. 영화 굿즈 시장은 어느새 거대해졌다. 영화 굿즈를 판매하는 플리마켓이 정기적으로 열리기 시작한다. 블루레이에서 핸드폰 케이스까지, 굿즈의 스펙트럼도 넓어졌다. 영화 굿즈의 춘추전국시대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다. 영화에서 파생된 상품들은 예전부터 존재했다. 디즈니나 마블같은 거대 제작사는 일찌감치 스토어를 열어 골수팬을 견고히 했다. 해리포터 시리즈도 다양하고 질 좋은 공식 굿즈들로 유명하다. 주목할 것은 이제 굿즈 문화가 거대 회사의 시리즈물 너머 모든 영화에서 향유된다는 것이다.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영화 파생 물품은 팜플렛이 아닐까. 영화관에 비치되어 있는 팜플렛은 덕후들에게 종이 한 장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흥행 배우의 대문짝만한 얼굴에 촌스러운 문구를 삽입한 팜플렛의 시대는 갔다. 팜플렛은 이제 예술이라 칭할 만큼 감각적이다. ‘피그말리온’ 같은 디자인 스튜디오들의 공이 컸다. 특정 팜플렛을 구한다는 글이 온라인에서 심심찮게 보인다. 자신의 동네에 원하는 팜플렛이 없어 이른바 ‘원정’을 떠나는 이들도 생겼다. 필자도 <신비한 동물사전>의 접이식 팜플렛을 구하고자 온 영화관을 돌아다닌 기억이 있다. 영화 개봉과 함께 비치되는 팜플렛은 시간이 지나면 구할 수 없다. 희귀성은 덕후들의 수집욕을 돋군다.

영화 굿즈는 증정 형식으로 제공된다. 굿즈 증정 상영, GV (관객과의 대화) 행사 후에 지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포스터와 엽서가 주를 이룬다. 4월 1일 장국영의 기일에 맞춰 재개봉한 <패왕별희>는 엽서세트를, <아비정전>은 포스터를 증정했다. 망설이던 팬들은 굿즈 증정 소식에 주저 없이 예매 버튼을 눌렀다. 사무용품도 인기다. <비틀즈: 에잇 데이즈 어 위크- 투어링 이어즈>는 GV 행사 후 비틀즈의 사진과 노래 가사가 실린 공책을 제공했다.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는 주인공들의 이름이 적힌 뱃지와 펜을 증정품으로 걸었다.


티켓에 굿즈 값을 포함한 ‘스페셜 패키지 상영’이 성행 중이다. <문라이트>는 야광 포스터 3종에 엽서 9종을 얹었다. <퍼스널쇼퍼>는 엽서 3종, 파우치에 에세이 북까지 증정했다. 약 1.5배 비싼 티켓값에도 표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예매가 어찌나 치열한지 상영 당일 새벽 4시에나 취소 표를 구했다. 관객들 대부분이 굿즈의 질과 양에 만족했다. 굿즈는 VOD시대 영화관이 관객을 모으는 하나의 전략이 되었다.

특이한 굿즈는 영화의 또 다른 재미요소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GV에서 샐리의 이름이 새겨진 양말을 받았다. 양말을 신을 때마다 티격태격하는 해리와 샐리의 모습을 상기한다. <컨택트> GV에서 받은 손거울은 여전히 유용하게 쓰고 있다. 머그잔은 항상 배우 한예리의 얼굴이 그려진 <최악의 하루> 컵받침 위에 둔다. 영화 굿즈가 점점 진부함을 벗어나 관객의 일상에 침투한다. 영화의 분위기, 내용과 일맥상통한다면 홍보효과가 배가된다. <죽여주는 여자>는 시사회에서 박카스를, <카페 소사이어티>는 양주잔 세트를 GV 굿즈로 증정하여 영화의 분위기를 더했다.

위의 행사들은 하나의 영화를 상대로 한 단발적인 증정행사다. 굿즈로 장기전을 펼치는 프로그램도 있다. 장기적인 이익을 노리는 것이다. 메가박스의 ‘시네마 리플레이’ 행사가 대표적이다. 전년도 영화 열 편을 상영하고 해설을 진행하는 이 행사는 열 편 모두를 관람하는 관객에게 특별한 굿즈를 선물한다. 영화 퀴즈를 진행해 관객이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끔 유도하기도 한다. 영화 퀴즈를 맞힌 관객을 위해 다양한 상품이 준비되어 있다.

증정품 굿즈를 받지 못했다고 슬퍼하지 말자. 사면된다. 다양한 굿즈들이 있다. 영화를 제대로 즐기고 싶다면 블루레이와 아트북을 구매하자. 블루레이는 가장 사랑받는 굿즈 중 하나다. <캐롤>과 <킹스맨:시크릿 에이전트>의 블루레이는 판매 시작과 함께 매진될 만큼 경쟁이 치열했다. 블루레이에는 메이킹 영상, 인터뷰 등의 영상들이 추가된다. 아트북에도 영화 제작 과정, 디자인, 인터뷰 등이 상세히 나와 있어 영화에 대한 부가적인 정보를 얻기 좋다. CGV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에 가면 여러 아트북과 영화 스크립트를 볼 수 있으니 구매에 앞서 방문하기를 추천한다.


영화관의 매점도 관객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영화 개봉에 맞춰 영화 이름의 팝콘 콤보가 출시된다. 포켓몬 시리즈가 큰 인기를 끌었다. 피카츄 스노우볼부터 포켓몬 스탬프까지 캐릭터를 십분 활용한 굿즈였다.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호응이 좋다. 현재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2> 개봉에 앞서 주인공들의 피규어가 달린 팝콘 콤보가 판매되고 있다. 영화의 팬들은 걸음을 멈추고 콤보를 살 수 밖에 없다. 매점 팝콘 세트는 일회용품에서 관객을 매점으로 이끄는 큰 전략으로 변모했다.

최근 CGV가 굿즈 산업에 뛰어들었다. 여러 영화의 장면을 일러스트로 그린 파우치, 머그컵, 핸드폰 케이스 등을 출시했다. 제품이 구비된 영화관에서 상시 구매가 가능하다. 디즈니와 협업한 <미녀와 야수> 단독 기획 상품도 준비되어 있다고 한다.

아트나인 플리마켓은 메가박스 아트나인점에서 열리는 정기 굿즈 판매 행사다. ‘찬란’, ‘안다미로’, ‘그린나래미디어’, ‘엣나인필름’ 등 10개 이상의 업체가 참여한다. 포스터, 엽서, 폴라로이드 사진, 핀버튼, 에코백, 머그컵, 마스킹테이프를 비롯한 다양한 굿즈들을 만날 수 있다. 예쁜 굿즈들이 많으니 지갑 속을 두둑이 채워가야 할 것이다. 지난 1월 행사 때는 500명이 넘는 인파가 몰렸다. 트위터에 대리 구매를 요청하는 글이 쇄도할 만큼의 인기였다. <캐롤>과 <라라랜드>의 엽서 등 일부 굿즈가 일찌감치 매진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아트나인 측이 ‘사재기 및 되팔기가 일어나지 않도록 보완하겠다’ 밝힌 만큼 앞으로 더 체계적인 행사 운영이 기대된다. 오는 6월 3일 썸머시즌 플리마켓을 앞두고 있다. 다수의 영화관 및 제작사들이 SNS에서 단발성 이벤트를 열어 굿즈를 배부하는 경우도 많으니 SNS를 주의 깊게 살펴보도록 하자.


영화는 ‘감상’의 대상에서 ‘소유’의 대상으로 변모하고 있다. 영화 굿즈 산업이 앞으로도 영화계에 큰 활력이 되길 바란다. 물론 필자도 굿즈 수집을 기꺼이 멈추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