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안에 또 다른 누군가가 있다면? - Chimera, 그리고 Chimera Placity

  • 100호
  • 기사입력 2006.01.14
  • 취재 전미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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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의 기원과 본질 - 키메라 ♧ 

글 - 김은영 (중문, 04)

CSI 과학수사대라는 외화를 즐겨보면서 매우 흥미로운 사건을 접하게 되었다. 한 강간 살인 사건에서 용의자가 DNA 검사에서 범인이 아닌 것으로 결과가 나와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졌다. 그러던 중 우연히 용의자가 인간 키메라임을 발견하여 범인임을 밝혀낸다는 것이었다. 이제 키메라에 대해 알아보자.
 

▣ ‘키메라’란?



키메라(chimera)는 그리스 신화 속에 나오는 머리는 사자, 가슴은 양, 꼬리는 뱀으로 된 괴물이다. 생물학적으로 키메라란 한 개체 속에 유전적형이 다른 2종류 이상의 조직이 서로 접촉하여 존재하는 생물을 말한다.  접목 식물이 바로 키메라의 일종이며, 이는 기존 종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고 생산력을 높일 수 있다. 몸통은 배추, 뿌리는 무인 ‘무추’, 몸통은 토마토, 뿌리는 감자인 ‘토감’, 나란히 뻗는 두 가지 중 하나는 고추, 하나는 가지인 ‘고가’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 인간 키메라

한 사람의 몸속에 두 가지 이상의 유전자가 함께 존재하는 인간키메라가 실제로 존재할 수 있을까? 2003년 12월 사이언스 타임즈에 인간키메라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게재되었다. 5년 전 미국 보스턴의 병원을 찾은 한 환자에게 신장 이식이 필요했다. 편의상 제인이라고 부를 이 환자의 가족 중에 신장을 기증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남편과 세 아들의 혈액을 검사했다. 검사 결과는 믿을 수가 없었다. 세 아들의 아버지는 제인의 남편이 분명했다. 그러나 제인의 세 아들 중 둘의 어머니는 제인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사람의 면역계는 세포 표면에 드러난 단백질을 보고 내 몸과 내 몸이 아닌 조직을 구분한다. HLA 복합체라는 유전자 집합이 이 세포 표면 단백질과 다른 여러 가지 면역 단백질을 만들어내고, 각 HLA 유전자에는 수백가지 대립인자가 존재하기 때문에 이 대립인자들의 조합은 개인마다 다르다. 이 유전자들이 사람 세포의 6번 염색체 위에 가까이 모여 있고, 모든 사람은 이 자리에 어머니에게서 받은 HLA 반수체와 아버지에게서 받은 HLA 반수체를 가지고 있다. HLA 반수체가 비슷할수록 거부반응의 위험이 적다. 따라서 환자의 가까운 가족부터 조직형이 비슷한지를 검사한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는 HLA 유전자 중 1/2이 완전히 같고, 형제자매의 조직형이 서로 일치할 가능성은 1/4이다.
담당의사 마곳 크루스칼과 동료들은 제인의 HLA 반수체 형을 찾아서 이것을 형태 1과 형태 3이라고 이름 붙였다. 제인 남편의 반수체는 형태 5와 형태 6이었다. 제인의 아들 중 하나의 반수체는 형태 1과 형태 6으로 제인과 남편 사이에서 나온 자식이 분명했다. 그러나 다른 두 아들에게는 어디서 왔는지 모를 형태 2의 반수체가 있었다. 제인이 세 아들을 자연 임신해서 낳았기 때문에 이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처럼 보였다. 제인 남편과 다른 여자의 아이를 어떻게 제인이 임신한단 말인가?
처음의 혈액 검사에서 빠진 제인의 다른 가족을 검사했을 때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했다. 제인의 오빠에게 형태 2의 반수체가 있었던 것이다. 크루스칼은 제인의 혈액을 제외한 머리카락, 피부, 갑상선 등 몸의 다른 조직의 유전자를 검사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제인의 몸은 두 가지 다른 세포로 이루어져 있었다. 혈액은 모두 (1,3) 세포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머리카락과 피부에는 대부분의 (1,3) 세포와 함께 일부 (2,4) 세포가 있었다. 갑상선은 반대로 대부분이 (2,4) 세포로 이루어져 있고 일부 (1,3) 세포가 있었다. 결론은 제인은 두 사람이 합쳐진 키메라라는 것이다.
가장 그럴듯한 설명은 제인의 어머니가 이란성 여자 쌍둥이를 임신했는데 임신 초기에 합쳐져서 하나의 배아로 자라났다는 것이다. 혈액은 한 가지 세포로 이루어졌지만, 제인의 난소와 난자에는 두 가지 세포가 다 있어서 아들들에게 불가능해 보이는 유전자 조합이 나온 것이다.이런 인간 키메라가 얼마나 되는지는 아직 아무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몸 밖에서 난자와 정자를 수정시켜 자궁에 착상하는 시험관 아이가 늘며 쌍둥이가 많이 태어나 그에 따라 키메라도 늘어났을 것이라 예상된다.
우리의 몸이 수정란에서 출발한 한 가지 세포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증거들이 있다. 어머니의 자궁에서 태아의 세포 중 일부는 태반을 지나 어머니의 몸 안으로 들어간다. 임신한 여자 중 80~90%의 혈액에서 태아의 DNA를 찾을 수 있다. 이렇게 태아의 세포가 어머니 몸속에 들어간다는 것은 1990년대 중반부터 알려졌다.
그렇다면 어머니의 세포가 태아의 몸에 들어갈 수도 있을까? 시애틀에 있는 프레드 허친슨 암 연구센터에서 면역학자로 일하는 J. 리 넬슨(J. Lee Nelson)과 동료들은 32명의 건강한 여자 혈액을 조사했다. 그들 중 7명은 자기 어머니에게서 온 백혈구를 지니고 있었다. 우리의 몸 안에 어머니의 난자와 아버지의 정자로 이루어진 세포 말고 어머니, 할머니, 이모, 외삼촌, 언니, 누나, 형의 세포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 내 몸 안에 "다른 사람"의 세포가 들어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 키메라는 이란성 쌍둥이가 발생 과정에서 한쪽이 죽어 다른 한 쪽 쌍둥이에게 그 유전자가 스며드는 형태로 발생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
 

▣ 키메라에 관한 연구 
몸에서 마치 자기 세포처럼 인식하고 두 유전자가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기능이 유리한 타 세포를 자기 세포처럼 이식하여 질병을 치료하거나 더 나은 종의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이다. 일명 키메라 플래스티(모자이크 유전자 변형기술)이라 불리는 첨단 유전자 변형기술은 인간 유전질환의 80%를 치료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유전조작 생물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미 키메라를 통한 연구는 상당히 진행되고 있다. 검은털 쥐의 초기 배와 하얀털 쥐의 초기 배를 융합하여 대리모의 자궁에 옮겨 발생을 진행시키면 검은 색과 흰색 털이 얼룩진 키메라 쥐가 된다. 배를 융합하는 방법 외에 쥐의 배가 속이 빈 채 부풀어 오르는 ‘배반포’라는 시기에 다른 배의 ‘배성 간세포(ES 세포)’를 유리관으로 주입하는 식의 방법도 있다. 형성된 키메라 쥐는 배반포의 세포에 유래하는 조직과 ES 세포에 유래하는 조직을 모두 가지게 된다. 같은 종 생물끼리의 키메라만이 아니라 다른 종끼리의 키메라도 만들 수 있는데, 84년에는 염소와 양의 키메라 ‘기프’가 이미 탄생한 바 있다.
그러나 서로 다른 종의 교배가 가능해지면서 반인반수의 생명체가 우려된다. 미국 스탠포드대 어빙 바이스만 교수가 이끄는 분자생물학 연구팀은 인간 뇌세포를 생쥐의 태아에 주입, 인간-생쥐 키메라를 만든 바 있다. 현재로는 이 생명체의 뇌 중 1% 만이 인간 세포이지만 앞으로 뇌가 100% 인간세포로 된 쥐를 만들어내겠다고 밝혔다. 이 쥐들이 연구적인 목적에만 쓰인다고 누가 보장할 수 있을 것인가. 자칫 사고로 실험실을 벗어나면 어떻게 될 것인가. 이 외에도 과학자들은 이미 정맥에 인간 피가 흐르는 돼지와, 심장과 간이 인간과 상당부분 같은 양을 만들었다.
이러한 반인반수 잡종의 탄생이 의학계에 있어서 큰 변혁을 가져올 것은 자명하다. 인간에게 할 수 없는 시약테스트를 한다든가, 배아복제를 하지 않고서도 인간의 체세포를 배양시켜 간, 심장 등 장기를 만들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이러한 기술이 악용될 가능성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SF 영화에서 인류를 위협하는 괴물의 등장은 대부분이 과학을 남용한 인간의 욕심에서 기인한 인재(人災)였다. 그러한 위험이 단지 영화 속 이야기라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최근 생명 자체의 중요성보다는 과학적인 성과에 더욱 무게가 실리며 생명에 대한 외경심이 사라지는 것은 아닌가 우려된다. 키메라는 분명 생물학계와 의학계에 있어서 획기적이고 희망적인 메시지일 것이다. 그러나 인류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의도가 정 반대의 결과를 낳아 인류의 재앙이 될 수도 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배아복제 및 키메라플래스티는 인간의 생존 및 난치병 치료, 생명에 대한 연구에 공헌을 할 수 있지만 그에 함께 윤리적 성찰과 자연의 순리를 지키는 것 역시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편집 ㅣ 성균웹진 전미린 기자 (wjsalfls@skk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