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처럼 검고, 죽음처럼 강하며, <br>사랑처럼 달콤하다.

지옥처럼 검고, 죽음처럼 강하며,
사랑처럼 달콤하다.

  • 355호
  • 기사입력 2016.09.12
  • 취재 이수진 기자
  • 편집 송예균 기자
  • 조회수 12120

‘지옥처럼 검고, 죽음처럼 강하며, 사랑처럼 달콤하다.’ 바로 ‘커피’에 대한 터키 속담이다. 커피는 터키에서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기호식품이 되었다.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커피 한 잔 하자’라는 말을 건네며 인사를 나누는 것이 어색하지 않고, 친구를 만나면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이렇듯 커피는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현대인과는 뗄 수 없는 음료로 자리 잡았다. 단순한 기호식품을 넘어 일상의 필수품이 되었으며,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있다고 말하는 것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과연 커피는 언제부터 마시게 되었으며, 우리나라에는 언제 들어오게 되었는지 커피에 대한 궁금증들을 풀어보도록 하자.


갈색에 가까운 색깔의 기호음료로 독특한 풍미를 가지고 있는 커피는 ‘생두’라 불리는 커피나무 열매 속의 씨앗을 볶고 물을 이용하여 성분을 추출해 만든다. 어원은 아랍어인 카파(Caffa)로 힘을 뜻하며 에티오피아의 산악지대에서 기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커피나무는 심은 후 2년이면 흰색의 꽃을 피우는데 그로부터 3년 후에는 빨간색이나 노란색 열매를 맺는다. 커피가 생산되는 곳은 남위 25°부터 북위 25°사이의 열대, 아열대 지역으로 커피 벨트 또는 커피 존이라고 한다.


커피가 6~7세기경, 에티오피아의 ‘칼디’라는 목동에 의해 발견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염소들이 빨간 열매를 따 먹고 흥분하여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고 자신도 이 열매를 먹어보게 되었다. 그 결과 칼디는 머리가 맑아지면서 상쾌해 지는 느낌을 받았고 그 사실을 이슬람 사원의 수도승에게 알렸다고 한다. 그 이후로 빨간 열매가 기분을 좋게 하며 졸음을 방지해 주는 등 수양에 도움이 되는 신비의 열매로 알려지게 되어 여러 사원으로까지 퍼져나가게 되었다.

커피의 원산지인 에티오피아에서는 농부들이 자생하는 커피 열매를 끓여 죽이나 약으로 먹기도 했다. 9세기 무렵 아라비아 반도로 전해지며 처음 재배되었으며 나중에는 이집트와 시리아, 터키에까지 전해졌다. 이곳에서는 커피 열매를 끓여 그 물을 마시거나 커피 열매의 즙을 발효시켜 ‘카와’라는 알코올음료로 만들어 마셨다. 이 음료는 13세기까지는 성직자들만의 음료였으나 그 이후부터는 일반 대중들까지 마실 수 있었다.

이 시기 커피 재배는 아라비아 지역에만 한정되었고 다른 지역으로 커피 종자가 나가지 못하도록 이슬람 세력의 엄격한 관리를 받았다. 그러던 중 십자군 전쟁이 발발하며 이슬람 지역을 침입해 온 유럽 십자군이 커피를 맛보게 되었다. 초기에 기독교 문화권의 유럽인들은 커피를 이교도적 음료라 배척했지만, 밀무역으로 인해 이탈리아에 유입된 이후 그리스도의 음료로 공인 받았고 그 이후 유행처럼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 가장 처음으로 커피가 들어온 연도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1882년 임오군란 이후의 1890년대로 보는 견해가 많다. 구한말, 청나라를 통해 서양의 문물이 들어오면서 외국인들의 왕래가 늘어났다. 특히 임오군란 이후, 미국이나 영국 등 서양의 외교사절이 들어오면서 커피를 마시는 문화가 퍼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서양 외교관들은 조선 왕실과 귀족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커피를 진상하기도 했다고 한다. 조선의 왕족들과 대신들은 커피의 독특한 향과 카페인에 매혹되었고 곧 우리나라에도 커피가 자리 잡을 수 있었다. 그 당시 커피는 한자로 음역되어 ‘가배다’ 혹은 ‘가비다’라고 불렸다.

실제로 고종황제는 1895년 을미사변 당시 피신해 있던 러시아 공사관에서 커피를 처음 맛보게 되었고 그 후 커피를 궁중 다례의식에까지 사용하도록 했을 만큼 커피를 즐겼다. 일반 민가에도 외국인 선교사와 상인들을 통해 커피가 파급되었다. 1919년 이후에는 명동, 충무로, 종로 등지에도 커피점들이 등장했다. 주인은 대개 일본인이었고 서민들은 너무 비싼 가격 때문에 쉽게 즐길 수 없었다. 우리나라에 커피가 본격적으로 보급된 것은 1945년 이후이다. 6·25전쟁이 끝나고 미군이 주둔하게 되고 그로부터 값싼 인스턴트가 대량으로 흘러나왔다.

하지만 커피는 당시 수입 금지 품목으로 유통되는 커피는 대부분 부정 유출된 것이었다. 1968년이 되어서 제한 승인품목으로 바뀌었지만 관세가 높아 커피 수입은 아주 적은 양으로 한정되었다. 1970년대가 되어서 비로소 커피는 보편 음료가 될 수 있었다. 동서식품이 1970년, 국내 최초로 인스턴트 커피 생산에 성공하면서 커피 가격이 낮아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후, 동서식품은 1976년 세계 최초로 커피믹스를 개발했으며 1980년대가 지나며 국민 음료가 되었다.


갓 수확한 커피 원두는 옅은 회색을 띠는 흰색에 향도 거의 없이 쓴 맛만 가지고 있다. 독특한 향과 색의 커피는 말리고, 볶는 가공과정을 거쳐야 완성된다. 커피는 정제, 볶기, 배합, 분쇄의 과정을 거쳐 가공되며, 그 후 원액을 추출한다. 먼저 커피 열매에는 2개의 종자가 들어있는데 이 종자를 빼내는 과정을 정제라고 한다. 정제의 방법으로는 습식법과 건식법이 있다. 습식법은 여래를 물속에서 발효해 각질과 과육을 없앤 뒤 다시 말려서 껍질을 벗겨내는 과정이다. 이 방법은 주로 물이 풍부한 지역에서 사용되며 질 좋은 커피를 얻을 수 있다. 건식법은 열매를 말린 뒤 기계를 이용해 껍질을 벗겨내는 방법이다. 주로 건조한 기후와 작업환경이 열악한 지역에서 사용되며 품질이 고르지 못하다는 단점이 있다.

정제 과정이 끝나면 커피의 원두는 소비국으로 보내진다. 정제된 원두는 볶기를 통해 맛과 향을 가진 커피로 거듭나게 된다. 보통 12분에서 20분 동안 180~200℃의 온도에서 볶는다. 볶은 뒤에는 빨리 냉각 해야하며 이 과정이 끝나면 우리가 흔히 아는 갈색 커피콩이 된다. 볶는 정도는 취향에 따라 다양하게 할 수 있지만, 짙은 갈색인 유럽식, 매우 짙은 갈색인 프랑스식, 검은색에 가까운 이탈리아식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볶는 정도가 약할수록 맛이 부드럽고 향이 풍부한 커피가 된다.

볶기 전이나 볶은 뒤에는 서로 다른 원두들을 섞어 좋은 맛과 향을 내기 위해 배합의 과정을 거친다. 원두의 종류에 따라 신맛이 나거나 쓴맛이 나는데 배합 할 때에는 보통 중성 원두를 기본으로 신맛이 나는 원두와 쓴맛의 원두를 섞는다. 2종에서 5종이 되는 원두를 섞는 것이 일반적이나 너무 많은 종류를 섞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정제와 볶기, 배합의 과정을 겪은 원두는 분쇄되어 가루로 만들어진다. 볶은 원두는 산화의 속도가 매우 빨라 커피를 추출하기 전, 바로 전에 가루로 만드는 것이 커피의 향과 맛을 느끼기에 좋다. 분쇄 정도는 다양하며 입자의 크기에 따라 추출법을 달리하기도 한다. 입자가 굵은 커피는 드립식과 퍼콜레이터식, 조금 가는 것은 사이폰식과 에스프레소식, 가장 고운 가루는 터키식 커피에 좋다.

모든 가공과정을 거쳐 가루가 된 커피는 커피 원액을 추출하는 추출과정도 거치게 된다. 추출 방식은 터키식 커피, 프렌치 프레스, 핸드드립 등 매우 다양하다. 터키식 커피는 분쇄한 가루를 끓여 가라앉힌 다음 마시는 전통적인 추출법이다. 프렌치 프레스는 유리관 안에 분쇄된 커피를 담고, 뜨거운 물을 부어 금속의 필터로 눌러 짜내는 수동식 추출법이다. 핸드드립은 가장 자연적인 추출법으로 중력의 원리를 이용한다. 받침대 위에 여과지를 고정하고, 커피가루 위에 뜨거운 물을 천천히 부어 추출한다. 이 외에도 기계를 이용해 대량으로 커피를 추출하는 기계드립, 삼투압을 이용하는 버큠포트 방식과 커피 전문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에스프레소 커피머신을 이용한 추출법 등이 있다.


출처
두산백과
올 어바웃 에스프레소, 이승훈, 2010., Coffee&Tea;
커피 이야기 : 살림지식총서 089, 김성윤, 2004. 5. 15., ㈜살림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