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의 가치

투표의 가치

  • 371호
  • 기사입력 2017.05.12
  • 취재 김규현 기자
  • 편집 김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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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규현 글로벌경제학과(16)

대한민국의 5년을 맡을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이번 5월 9일에 실시되었다. 뜨거워진 대선 열기를 반영하듯, 선거일 당시에 투표하지 못해 미리 투표를 실시하는 사전투표에서 1,000만명을 넘는 26% 가량의 유권자들이 권리를 행사했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와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는 실시간으로 투표소 모습을 찍은 사진과 투표 도장이 찍힌 손등을 인증하는 게시물로 가득했다.

투표는 민주주의의 근간이자 꽃이라 불릴만큼 민주주의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요소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렇게 행사하는 한 표의 가치는 얼마정도일까? 기껏해야 투표용지를 인쇄하는 인쇄값만큼이나 나가는 것일까, 혹은 그보다 더 많은 비용이 나가는 것일까.

인증샷을 찍을 때 손등이나 손가락에 찍는 기표용구는 각각 대선이 끝나면 전량 폐기한다. 기표 반복으로 인한 잉크 미세번짐 등의 우려로 한번 쓴 투표용구는 망치로 깨부수거나 폐기물 업체에 맡겨 폐기한다. 지난 번 총선에서 사용된 스탬프 전문기업 그린피앤에스의 기표용구는 개당 2,800원이라고 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가 밝혔다. 당시의 납품 규모가 무려 9만여개였으니, 선거일 후에 폐기를 거치면 2억 5,000여 만원이 소비되는 것이다. 또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행정자치부가 인용한 자료에 따르면, 이번 19대 대선의 유권자 수는 약 4,240만 명으로 투표 용지 인쇄에 들어가는 비용만 약 6억에 달한다고 한다.

기표용구비와 인쇄비만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이 외에도 선거 전체를 관리하는 인적 비용이 추가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깨끗하고 부정없는 공정한 선거를 위해 사무원, 경찰 및 소방관, 투표관리관 등 약 48만 명의 인원이 투입되고, 이 인원의 인건비를 위한 예산은 무려 1,800억 원에 육박한다. 더불어, 교섭단체를 형성한 정당에게 지급한 선거보조금은 420억 원 가량이 되고 후보자의 선거비 역시 지출된다. 선거비란 선거사무원 인건비, 연설·대담용 차량 등 선거운동을 위해 지출한 비용으로 선관위에 청구하면, 엄밀한 확인과정을 거쳐 국가예산으로 되돌려 준다. 후보자의 선거법에 따르면, 득표율이 10% 이상인 정당·후보자에게 선거비용의 50%, 득표율이 15% 이상이면 전액 보전되는데, 지난 17대와 18대 대선에서의 선거비용은 평균적으로 890억 원에 달한다.

이를 모두 종합하면, 선거에 드는 비용은 총 3,110억 원으로 강원도 태백 시의 한 해 예산에 맞먹는 수치이다. 이를 모든 유권자들이 권리를 행사하였다고 가정하면, 한 표당 가치는 약 7,300원으로 계산될 수 있다. 그렇기에 대부분 투표에서 투표율이 70%에 그친다는 것을 고려할 때엔, 포기하는 가치가 무려 930억원에 달하는 것이다.

또 다른 독특한 계산법이 눈길을 끈다. 당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도 지난 6일 유세현장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유권자들의 한표의 가치를 4,726만원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문 후보가 매긴 한 표의 가치는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행사하는 연간 국가 예산에 주목한 것이다. 문재인 후보는 "우리나라 1년 예산이 400조원이고 대통령 임기 5년 동안 대략 2000조원이 사용된다"며 "이를 유권자 수로 나누면 한표당 4726만원의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물론 이는 투표의 가치를 어느정도 과장한 것이나, 투표가 그만큼 나라의 운명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말이다.

사실 나의 표 하나가 선거 당락에 영향을 전혀 미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면서 투표를 꺼려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몇 표 때문에 투표의 당락에 영향을 준 사례가 꽤 많다. 2000년에 실시된 16대 총선에서는 경기 광주군에 출마한 박혁규 한나라당 후보가 1만 6675표를 받으면서 문학진 당시 새천년민주당 후보가 얻은 1만 6672표보다 겨우 3표가 많아 당선되었다. 문학진 후보는 3표 차이로 낙선했다 해서 문세표라는 웃지못할 별명도 얻었다. 워낙 표차가 적다보니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법원에 재검표를 신청했는데 결과 차이가 2표로 줄어들자 문학진 후보의 별명이 문두표로 바뀌기도 했다.

2008년 재보궐 선거에서는 더 긴박한 투표가 진행되었다. 강원 고성군수 자리를 놓고 출마했던 무소속 황종국, 윤승근 의원은 동일하게 4597표를 얻은 것이다. 결국 처음부터 일일이 투표용지를 재검토하면서, 겨우 한 표 차이로 황종국 의원이 강원 고성군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한 표의 힘이 생각보다 크지 않은가. 미국 독립전쟁 영웅이자 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은 “용기 있는 한 사람이 모여 다수를 만든다”고 말했다. 또한, 우리나라 속담에서 티끌모아 태산이라는 말이 있듯이 개인의 뜻있는 한 표 한 표가 모인다면 선거에 영향을 줄 수도 있는 것이다.

이번 대선은 대한민국 헌정 사상 유례없는 사건으로 인해 가장 빠르게 선거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중요한 시국, 이런 중요한 대선에서 당신은 당신의 소중한 한 표를 아깝지 않게 던졌는가?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한 사람에게는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