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군 이땅, 이제 떠날수 밖에 <br>- 젠트리피케이션

내가 일군 이땅, 이제 떠날수 밖에
- 젠트리피케이션

  • 377호
  • 기사입력 2017.08.09
  • 취재 김규현 기자
  • 편집 김규현 기자
  • 조회수 6249

글 : 김규현 글로벌경제학과 (16)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백년 살고 싶어 ♬"



한국 사람이라면 가수 남진이 부른 '님과 함께'라는 노래를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흥얼거리는 박자와 감각적인 가사는 우리가 실제로 그러한 밝은 내일을 꿈꾸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내가 좋아하는 장소에서 터전을 잡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그런 행복한 꿈 말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현실은 노래에서 부르는 행복한 꿈을 펼치기엔 너무 야속한 곳인가 보다.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골목을 온 정성을 쏟아 가보고 싶은 골목으로 만든 영세업자들의 눈물과 애환이 섞인 이야기이다. 이제 그들은 자신들이 일구어놓은 터전을 뒤로한 채, 다시 아무도 찾지 않는 골목으로 돌아가고 있다. 낙후된 거리가 기존 영세업자들의 노력으로 번성하게 되었지만, 그로 인해 높아진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그들의 가게를 내놓아야 하는 현상인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때문이다.

싱어송라이터이자 영원한 가객으로 불리는 김광석을 주제로 한 대구의 '김광석 거리'는 젠트리피케이션을 말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거리이다. 김광석이 태어난 대구 중구 대봉동 방천시장에는 그를 기리는 '김광석 거리'가 생겨나고, 유명세를 타면서 작년에는 무려 1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다녀갈 정도로 붐비는 곳이다. 그러나 김광석 거리를 만든 방천시장의 예술가들과 가게는 치솟은 임대료를 견디지 못하고 모두 떠나버리고, 지금은 상업활동에 전념하는 가게들만 남아있다. 실제로, 대구 중구청이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김광석 거리가 유행하기 전인 2010년부터 지금까지 영업하고 있는 업소는 고작 방앗간 한 곳과 카페 4~5곳이 전부라고 한다. 화려한 거리의 네온사인 아래에 영세업자들의 설움이 담겨 있는 듯 하다.

서울에서도 소위 "뜨는" 거리에서의 임대료 상승률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국토교통부가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지난 2015년 상반기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2년 동안 서울 전체 상권의 임대료 상승률은 1.21%였다. 그러나 최근 입소문을 타고 있는 거리들 중 하나인 경리단길 임대료는 10.16% 상승했고, 성수동은 6.45%, 홍대는 4.15% 가량의 상승세를 보였다. 반면 인기가 한풀 꺾인 인사동은 0.04% 수준으로 임대료 상승률 격차를 보여줬다.

임대료가 이렇게 상승하면서, 텅 빈 상점들 역시 늘어나고 있다. 업무용 빌딩에서 임대되지 않고 비어 있는 사무실이 차지하는 비율을 말하는 공실률이 서울의 유명 상권에서 늘어나고 있다. 가장 높은 임대료 상승률을 보인 이태원 경리단길의 공실률은 무려 15%에 달하며, 서울 평균인 6.5%에 크게 웃돌았다.

특히 임대료가 치솟으면서, 가격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낮은 영세업자들은 거리를 떠나게 되고, 가격경쟁력이 높은 프랜차이즈업이 빈자리를 채우고 있다. 통계청과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신촌은 프랜차이즈 카페 비율이 2006년에서 2014년 사이 7%에서 37%로, 압구정 로데오거리는 18%에서 37%로 증가했다. 물론 프랜차이즈가 많아지는 것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볼 수 없지만, 높은 창업비용과 가맹업비 등을 부담할 수 없어 스스로의 브랜드를 내세운 자영업자들이 직격탄을 입을 수밖에 없어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경계를 늦출 수 없다.

사유재산의 보호와 개개인의 절대적 자유를 천명하는 자본주의의 미명 아래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은 어찌 보면 당연한 사회적 현상인 동시에, 자신의 능력으로 자신의 터전을 번영하게 했음에도 자신의 터전에서 쫓겨나야 하는 사회는 부정의하며 모순적인 사회일 것이다. 부정의하며 모순적인 사회는 결국 파멸을 맞기 마련이다. 영세업자들의 상대적 박탈감과 허탈함을 하루 빨리 해결하는 것이 바로 정의롭고 올바른 사회로의 첫 걸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