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의 바다에서 조약돌 하나 – 겸손의 민주주의

  • 438호
  • 기사입력 2020.02.25
  • 취재 최지원 기자
  • 편집 김민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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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진실인가?


인류는 끊임없이 자신을 의심하며 새로운 지식을 탐험해왔다. 위대한 갈릴레이 뒤를 이어 근대과학의 문을 연 아이작 뉴턴은 "진리의 큰 바다에서 나는 그저 바닷가 모래밭의 예쁜 조약돌 하나를 찾았을 뿐이다"고 했다. 이런 겸손한 자세는 늘 필요하지만, 인간 사회에서 항상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1840년대 오스트리아 빈 종합병원에서 산부인과 환자들 중 25%가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특히 제 1병동은 제 2병동보다 사망률이 4배 높았다. 산부인과 조교수였던 이그나츠 제멜바이스는 한 의사가 산모 시체를 해부하다 손가락을 베인 후 이전에 죽었던 산모들과 같은 증상으로 죽게 되자 해부하던 의사 손에 묻은 ‘시체 입자’가 산모 상처에 들어가 산모들이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모든 의사들에게 다음 환자를 보기 전에 염소화 석회로 손을 씻자고 제안했다. 여기서 ‘시체 입자’는 세균이었다. 그리고 산모들이 죽은 이유는 분만으로 생긴 상처에 세균이 침입, 감염되어 고열을 내는 병인 산욕열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의견을 받아들이면 이전에 죽은 산모들의 죽음이 의사들 책임이 되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오히려 정신병원에 갇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2주 만에 죽는다. 그의 나이는 마흔일곱이었다. 30년 후 파스퇴르와 코흐에 의해 세균 감염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나서야 제멜바이스는 다시 인정을 받는다. 하지만 그동안 수많은 환자들이 불필요한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이 사건에 대한 아쉬움으로 기존 지식에 반대되는 새로운 지식을 무조건 거부한다는 뜻의 ‘제멜바이스 반사(Semmelweis Reflex)’ 라는 말이 생겼다.


JTBC 방송 ‘차이나는 클라스’에서 박종훈 교수는 “의료 발전의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는 관습이다.” 라고 했다. 이 말은 의료계에서만 적용되는 말은 아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제멜바이스를 가두고 정신병자로 몰았던가?

오늘날 우리는 또 다른 제멜바이스를 가두고 있지는 않는가?


이웃나라 중국에서 발생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퍼지면서 우리 일상을 위협하고 있다. 코로나19를 처음 발견하고 의심했던 의사들은 당국의 조사를 받고 각서까지 써야 했다. 그중 한 사람인 리원량은 결국 코로나에 감염되어 젊은 나이에 임신한 아내를 두고 죽었다.

민주주의는 시끄럽고 번거롭다. 주말마다 대통령을 몰아내라는 시끄러운 시위를 이어가는 사람들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소음과 환멸에 시달리고 버스는 제 시간을 못 맞춘다. 장애인을 위한 학교 하나 짓는데도 몇 년이 걸리고 장애인을 자녀로 둔 학부모들이 무릎을 꿇고 호소한 끝에 올해 겨우 개교한다. 노인들이 집안에서 무료하게 보내지 않도록 하는 시설은 누구나 가까운 곳에서 편하게 이용하고 싶지만 주민들이 반대해서 곳곳에 세울 수 없는 형편이다. 우한 지역 교민을 공공 시설로 격리 보호하는 것 또한 지역 주민들이 반대하였으나 일부 주민들이 환영 메시지를 보내는 등 우여곡절 끝에 겨우 진행되었다.

자신의 뜻과 다른 주장일지라도 함부로 가두고 입을 틀어막을 수 없는 것은, 민주주의의 순기능 때문이다. 자유롭게 표현하고 검증하는 것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대할 때 비판적인 자세는 필요하지만 무분별한 비난이 되어서는 안 된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바다가 아니라 조약돌일 뿐이라는 것. 우리가 한층 더 성숙하고 깨어 있는 민주주의 시민이 되기 위해선 이런 자세가 필요하다.


★ 참고자료

JTBC 방송 차이나는 클라스 – 질문 있습니다 – 102회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799회

https://www.yna.co.kr/view/AKR20200218059700004?input=1195m 장애학생 부모 ‘무릎 호소’ 서울 서진학교, 다음 달 드디어 개교

https://www.yna.co.kr/view/AKR20200217120200074?input=1195m '리원량 사망' 후에도 입막음 계속…잡혀가는 中지식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