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ign or Decline, 디자인할 것인가? 쇠망할 것인가?

  • 452호
  • 기사입력 2020.09.22
  • 취재 최지원 기자
  • 편집 김민채 기자
  • 조회수 4740

 <Design or Decline(디자인할 것인가? 쇠망할 것인가?)>는 전 영국 수상 마가렛 대처가 1987년 영국 산업연맹 디자인 컨퍼런스 개막 연설에서 한 말로 산업에서 디자인의 힘과 중요성을 강조했던 그의 생각을 잘 보여준다.


© http://www.huffingtonpost.co.uk (전 영국 수상 마가렛 대처)


 영국은 1970년대 후반 IMF에 긴급구제자금을 신청했는데, 이때 마가렛 대처가 디자인을 국가적인 사업으로 발전시켜 지금까지 영국 경제를 지탱하는 경쟁력을 만들었다.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 디자인을 강조한다? 어떻게 이런 발상이 가능했던 것일까?


 보통 ‘디자인’은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위한 보조적 수단으로 생각되기 쉽다. 하지만 영국은 디자인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론으로 정의했다. 실제로 영국의 보건복지부에서는 당시 네번째로 사망률이 높은 ‘2차 감염’을 막기 위해 디자인을 활용한 적이 있다. 응급실에서 소독할 틈도 없이 바쁘게 쓰이는 휠체어에서 감염을 막기 위해 나사 부분을 최소로 하여 일체형으로 디자인해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간호사들이 물건을 싣고 다니는 카트 서랍은 손등이 위로 오게 하여 열게 만들어서 위에서도 오염이 잘 보이도록 만드는 식이었다. 보도 블럭, 건물 등 아직 쓸 수 있는 것들을 모두 부수고 새로 짓는 대신 디자인만 바꾸어 경쟁력을 갖게 하자는 아이디어였다. 그래서 물건이 있는데 또 사야 하는 까닭이 되어주는 디자인에 힘을 쏟는 문화를 만들고자 했다. 또한 영국은 어릴 때부터 디자인 교육을 시켜 소비자들의 디자인 역량을 올렸다. 왜냐하면 디자인은 만드는 사람만이 아닌, 선택하는 소비자의 안목에 의해서도 가치가 높아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선풍기’를 떠올리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아마 동그란 외형 안에 선풍기 날개가 돌아가고 있는 모습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헤어 드라이기’를 생각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ㄱ’자 모양으로 된 전자기기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머리를 말리는 모습이 떠오를 것이다. 이렇듯 우리가 어떤 물건의 상징이라고 생각한 것을 없앰으로써 디자인의 승리를 맛본 기업이 있다. 바로 영국의 ‘다이슨(Dyson)’이다. 진공청소기에서 먼지봉투를, 선풍기에서 날개를, 헤어 드라이기에서 소음을 없앴다. 다이슨의 창업자인 ‘제임스 다이슨’은 진공청소기의 먼지봉투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청소기 흡입력이 떨어지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먼지봉투가 없는 진공청소기를 발명했다. 그 제품의 성공으로 다이슨은 영국 국민청소기 이미지를 얻게 되었다. 또한, 선풍기 날개 때문에 일어나는 안전사고들, 날개를 분리해서 청소를 해야 한다는 불편함 때문에 3년 연구 끝에 날개 없는 선풍기를 발명했고 기존의 머릿결이 상하고 시끄러운 헤어 드라이기 문제점을 해결해 소음 없는 헤어 드라이기를 발명했다.



 

 제임스 다이슨은 한 인터뷰에서 ‘엔지니어링이 곧 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 디자인을 별개로 했을 때 위험한 점은 디자이너가 엔지니어가 허용하는 디자인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디자이너는 아무 힘이 없게 되고 그저 피상적인 스타일의 제품만 디자인하게 된다.’ 고 말했다. 한계를 두지 않고 틀에서 벗어난 제품을 만들기 위한 그의 철학이 돋보인다. 실제로 다이슨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연구개발(R&D)’이다. 매년 순이익의 30%를 R&D에 재투자하고 약 2조원을 들여 연구센터를 지었다고 한다. 5,126번의 실패 후, 5,127번째 시도에 먼지 봉투 없는 진공청소기 발명에 성공한 창업자의 도전 정신과 실패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정신이 돋보인다.

 

 또한, ‘자기 집을 빌려주고 돈을 번다’라는 획기적인 사업아이템으로 공유 경제 시장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둔 ‘에어비앤비(Airbnb)’의 창업자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대 중 하나인 로드아일랜드 디자인 스쿨(Rhode Island School of Design, RISD)에서 산업디자인을 공부한 졸업생들이다. 그들은 새로운 숙박 시스템을 디자인해서 숙박 공유 플랫폼의 모습을 바꿔 놓았다.


©에어비앤비 홈페이지 (에어비앤비 창업자들. 왼쪽부터 브라이언 체스키, 조 게비아, 네이선 플레차르스키)



©Asia Design Prize 홈페이지(최종훈 디자이너의 Pimoji)


하트, 뇌, 폐, 눈, 사람의 장기들, 찡그린 표정, 귀여운 미니어처 모형 같은 이것은 무엇일까? 바로 약이다. 이 작품의 이름은 알약의 ‘Pill’과 그림 문자를 뜻하는 ‘Emoji’를 합친 ‘피모지(Pimoji)’이다. 산업디자인을 전공하고 있는 대학생 최종훈 디자이너의 작품으로 많은 약을 복용하고 있는 노인 분들이 비슷비슷한 모양의 약들을 구분하기 어려워서 잘못 복용하는 일이 없도록 약들을 최대한 직관적인 모양으로 만든 것이다. 하트 모양 약은 심장약, 찡그린 표정 모양 약은 진통제 등등, 이 약이 어디에 도움을 주는 약인지 한눈에 봐도 알 수 있다.



 2018년 평창올림픽 성화봉과 성화대, 아이리버 MP3, 삼성 애니콜의 ‘가로본능’ 핸드폰, 국립중앙박물관 이촌역 나들길 등을 디자인한 한국의 1세대 산업디자이너이자 ‘INNODESIGN’의 대표 김영세 산업디자이너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제 디자인은 형태가 아니라 사람의 사용성이다.”


                  

©연합뉴스 (성화봉을 들고 있는 김연아 선수)    


©디자인하우스 (아이리버 MP3)


©다음 블로그: 꿈꾸는 목수 (삼성 애니콜 ‘가로본능’ 핸드폰)  


©INNODESIGN 홈페이지 (국립중앙박물관 나들길)


 그는 ‘How to Design(어떻게 만들 것인가)’이 아니라 ‘What to Design(무엇을 만들 것인가)’으로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되면 단순히 디자인을 전공한 사람만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기 위한 꿈을 가진 모든 사람이 디자이너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디자인은 아름다운 외형을 꾸미는 것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고 일상을 바꾸어 주는 모든 아이디어와 상상력을 뜻한다고 할 수 있겠다. 김영세 산업 디자이너는 한 인터뷰에서 ‘인간이 가진 최고의 재산인 창의력과 상상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디자인’이라며 창의적인 사람이 돋보이고 우대받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디자인이란 니즈는 사업 계획을 그리는 일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래서 경쟁을 안 할 수 있는 경쟁을 해야 한다. 

…… 경제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도, 문화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도 디자인이 국민적 문화가 되어야 한다. 

…… 인간이 가진 최고의 재산은 창의력이다. 로봇, AI, 디지털이 아무리 발달해도 우리가 이길 수 있는 건 상상력이다.” 

– 김영세 산업 디자이너

 


참고자료

  • NEWSTOF, [가짜명언 팩트체크] 대처는 "Design or Resign"이란 말을 한 적 없다

  • Youtube EO 채널, ‘4,500억 매출 아이리버 디자이너 김영세가 말하는 디자인의 미래’

  • Youtube JTBC Culture 채널, JTBC 특집 다큐 ‘디자인, 사람을 만나다’

  • 이진우의 손에 잡히는 경제, 5/31(일) “영국이 디자인에 주목한 이유”, “펫보험 가입 시 알아둘 점”, “집밥족 증가로 뜨는 간편식과 밀키트 시장”

  • 아시아경제, 5126번의 실패가 만든 '영국의 애플' 다이슨

    • 디자인정글, 예쁘고 쉬운 알약

대표이미지 사진 출처: INNODESIGN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