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현실적이지만 현실적 매력
'피카레스크'

  • 467호
  • 기사입력 2021.05.12
  • 취재 박기성 기자
  • 편집 김민서 기자
  • 조회수 5181

의 본질은 무엇인가? 문학은 인간의 생각을 기반으로 만들어지며, 궁극적으로는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이라는 현실에 대한 사유의 허구적 재현이라 볼 수 있다. 우리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세상에 착한 사람만 있다면, 아니면 나쁜 사람만 있다면 어떨까?’ 이러한 상상력은 인간은 착하거나 나쁘다는 전제를 기본으로 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사람에 대한 판단 기제는 주관적이다.  일반적으로 소설, 드라마, 연극, 영화 등 문학 작품에서 등장하는 인물은 크게 선역과 악역으로 나눌 수 있고, 대부분 선과 악의 대립이 작품의 주된 주제의식이다. 그러나 인간이 착하기만, 혹은 나쁘기만 할 수 있을까?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이 상상을 바탕으로 한 악한 인물들만이 등장하는 문학의 한 갈래가 있다. 오늘 소개할 ‘피카레스크’ 장르가 바로 그것이다.


피카레스크(Picaresque)는 프랑스어 단어로 악당을 의미하는 스페인어 피카로(Picaro)에서 유래했다. 피카레스크 장르는 15~16세기 스페인에서 등장해 주류가 되서 인기를 끈 문학의 한 갈래다. 서사 전개를 이끄는 주요 등장인물들이 도덕적인 결점이 있는 악한 인물들이라는 특징을 가진다. 피카레스크 소설은 주로 주인공과 주인공이 처한 현실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서사 구조가 독립적이지만 전체적으로는 긴밀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내용으로 피카레스크 장르의 구성과 형식이 등장한다. 피카레스크 형식으로 창작된 작품은 독립된 여러 이야기들이 연속적으로 나열된다. 이야기들 간의 짜임새를 염두에 두고 전개되지는 않지만 하나의 통일된 대주제와 맥락을 같이한다. 본 기사에서는 피카레스크 형식보다는 내용 면에서 관념적인 담론이 아닌 현실적이고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는 피카레스크 장르의 작품들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먼저 소개할 작품인 전상국의 <우상의 눈물(1980)>은 피카레스크 장르로 완전히 분류되지는 않지만, 내용상의 특징에서 피카레스크의 특징을 가진다. 작품은 표면적으로는 담임과 형우라는 선과 기표와 재수파 패거리의 악의 대립으로 나타나지만, 그 이면을 심층적으로 바라보면 선악의 대립이 아니다. 담임과 형우는 학급을 원활하게 통제하기 위해 학급 내 신화적인 존재로 군림하는 기표를 굴복시키려고 한다. 그러한 의도에서 그들은 기표의 낙제를 막기 위해 중간고사에서 부정행위를 계획하고 기표의 불우한 가정환경을 학급 전체에게 알려 돈을 모은다. 심지어는 이 모든 일을 영화로 제작하려고 하는 등 그들은 학급의 우상적 존재인 기표’에게 동정받아 마땅한 한 마리 벌레와 같은 이미지를 덧씌우면서 기표의 지위를 무너뜨린다. 담임과 형우는 겉으로는 위선적인 행동을 하면서 이면에는 그들 역시 악한 행동을 통해 기표를 굴복시키려 한다. 전상국은 이러한 대립적인 구조를 통해 기표의 표면적이고 물리적인 폭력과 담임, 그리고 형우의 위선적이면서도 비가시적, 정신적 폭력의 대결을 그려낸다. 이처럼 <우상의 눈물>은 악을 없애기 위해 선을 가장한 또 다른 악이 작용하는 현실의 질서, 즉 악과 악의 관계를 그려내며 위선적이고 정신적인 폭력이 더욱 악랄하다는 생각을 드러낸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우상의 눈물>은 작품을 전달하는 서술 형식 역시 관찰자로 설정했다. 작품 속의 내용을 독자에게 제공하면서도 사건에 개입해서 서사 전개를 방해하지 않는 관찰자를 통해 현실의 극복 의지가 결여된 인물을 그려낸다. 악과 악이 대립하고 이를 개선할 수 없는 작품 속 상황은 피카레스크적 내용의 특징과 부합한다.


피카레스크적 내용이 부각되는 영화 작품은 류승완 감독의 <부당거래(2010>다. <부당거래> 속 경찰은 유력한 용의자를 사살하는 사고를 발생시키고, 이를 무마하기 위해 가짜 범인을 만들어 사건을 종결하려 한다. 경찰은 자신들과 연결된 건설사와 조직폭력배를 시켜 살인범을 조작하고 구속하기에 이른다. 이 모든 사건의 중심에는 경찰대를 나오지 않은 출신 성분 때문에 번번이 승진에서 누락되는 최철기 반장과 그의 욕망이 자리한다. 최철기와 내내 대립 구도를 이루는 주양 검사 역시 기업과 언론과의 유착관계를 형성하는 부패한 인물이고, 검찰 조직 내에서도 자신의 장인어른을 통해 자리를 유지한다. 이렇게 선하지 않은 인물들이 서사를 이끌어가는 <부당거래>는 이념적 담론, 남녀 간의 지고지순한 사랑, 조폭의 집단 활극과 같은 추상성, 비현실성을 완전히 제거함으로써 극 현실주의 양상을 구체화한다. 여기에 더해서, 실존하는 언론사나 국가기관의 실명을 노출시키고 있다. 경찰과 검사의 수사지휘체계나 관행 등 이야기 배경도 실제와 거의 유사하게 그려진다. 이 영화는 이를 통해 영화 속 이야기를 현실 자체와 같이 위치시킨다. 이어 ‘대중에게 알려지는 보도 내용과 사건의 진실이 완전히 다르다’는 점을 드러내면서 국가 기관, 기업, 언론사 등 한국의 주류를 ‘진실을 조작하거나 은폐하는 존재’로 규정해낸다. <부당거래>는 이와 같은 극 현실주의 방식으로 주류 체제에 대한 반동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피카레스크 장르의 작품은 악한 인물들만이 등장하는 비현실적인 설정을 통해 오히려 현실의 문제를 조명하고 이를 문학적으로 재현해 낸다. 인간의 한 성향을 아예 배제함으로써 더욱 많은 것들을 보여주는 피카레스크만의 특징은 문학계에서 많은 시간 동안 인기를 끌며 그 가치를 입증받고 있다. 이러한 피카레스크 장르에 한 번 도전해 보는 것은 어떨까?



내용 출처: 

<부당거래>를 통해 본 반영웅주의 – 허만섭

사진 출처:

대표 이미지 - https://bulletinofadvancedspanish.com/don-quijote-postmodernism-and-postmodernity/

부당거래 - https://ko.wikipedia.org/wiki/%EB%B6%80%EB%8B%B9%EA%B1%B0%EB%9E%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