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을 말하다

  • 446호
  • 기사입력 2020.06.28
  • 취재 최지원 기자
  • 편집 김민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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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아름다움을 좇으며 살아간다. 아름답기 위해 소비하고, 꾸미고, 사랑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정작 어떻게 해야 아름다울 수 있는가, 어떤 것이 아름다운 것인가 하는 물음에 답하기는 쉽지 않다. 그걸 알면 우리가 살아가는 방향도 함께 밝힐 수 있지 않을까. 아름다움에 대해 김수업 교수가 쓴 <우리말은 서럽다>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김수업 교수는 ‘아름답다’라는 단어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보는 첫걸음은 낱말 짜임새를 살펴보는 일이라고 하면서 ‘답다’를 먼저 풀이한다. ‘답다’는 ‘사람답다’, ‘어른답다’, ‘아이답다’, ‘사장답다’, ‘직원답다’, ‘학생답다’, ‘교사답다’처럼 사람을 뜻하는 단어를 몸통으로 삼고 붙기도 하고, ‘참답다, 꽃답다, 학교답다, 고양이답다, 진달래답다’로 쓰임새가 열려 있는데, 그 몸통이 마땅히 있어야 할 거기에 넘칠 만큼 가장 바람직한 그것으로 있다는 뜻이다.


 몸통인 ‘아름’은 우리가 쉽게 알기 어렵다. ‘아름’은 원래 ‘알암’이고, ‘알밤’이라고 한다. 본디 ‘알ㅂㆍㅁ’처럼 아래 아 밤으로 쓰다가 ‘알ㅇㆍㅁ’에서 리을이 아래로 흘러내려서 ‘아ㄹㆍㅁ’, 다시 ‘ㆍ’가 사라지면서 ‘으’로 바뀌어 마침내 ‘아름’이 되었다. ‘아름답다’는 단어의 뿌리는 ‘알밤답다’인 것이다. 거기에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았던 시각이 감춰져 있다고 한다. 우리가 예쁜 아기를 보면 “꼭 깎아 놓은 알밤 같네!”라고 하지만, 깎아서 드러난 알밤만으로 아름다움을 헤아린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밤이라는 열매를 모두 생각했다는 것이다.


 밤이라는 열매는 겉으로 험상궂은 밤송이에 싸여 있다. 손이 닿으면 찔리는 가시투성이인 밤송이 안에 알밤은 깊이 감추어져 있다. 이 거칠고 험상궂은 밤송이를 애써 까고 나면 거기에는 반들거리는 밤톨이 드러난다. 밤톨도 매끄럽고 딱딱한 껍질로 알밤을 단단히 감추어 싸고 있다. 이 딱딱하고 매끄러운 밤톨 껍질을 벗기면 이제는 또 트실트실한 보늬가 드러난다. 보늬는 부드럽지만 텁텁한 맛을 내어서 그냥 먹으려고 달려들기 어렵고, 벗기려 해도 단단히 달라붙어서 쉽지 않다. 그만큼 알뜰하게 감싸고 있는 보늬를 공들여 벗기면 그제야 마지막으로 알밤이 모습을 드러낸다. 저마다 깊은 뜻을 지닌 세 겹의 껍질로 알맹이를 감싸고 있는 이것이 밤이라는 열매의 모습이다.


 겉모습으로 보고는 험상궂어서 쉽게 다가갈 마음도 먹기 어려운 밤송이를 한사코 벗겨 내고, 한결 나아졌지만 그래도 매끄럽고 딱딱한 밤톨의 껍질도 애써 까내고, 한결 더 부드러워졌지만 텁텁하여 입에 대기 어려운 보늬까지 벗겨 내고야 만날 수 있는 알밤. 세 겹의 만만찮은 껍질을 벗기고 들어온 이에게는 하얗고 깨끗하고 단단한 속살과 고소하고 달콤한 맛을 남김없이 보여주는 알밤. 그런 알밤은 온통 보얀 살결로만 이루어져서 어디를 뒤져 보아도 흠도 티도 없이 깨끗하다. 겉으로 드러내어 떠벌리며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어리석고 미련한 사람은 좀처럼 닿아 볼 수 없도록 겹겹이 깊숙하게 감추어진 알밤. 이런 알밤을 우리 겨레는 아름다움의 참모습을 알고, 이런 알밤다우면 그것이 곧 아름다운 것이라 여겼다.


 그래서 알밤은 서낭에게 바치는 제물의 맨 윗자리를 차지한다. 알다시피 서낭에게 제물로 바치는 열매는 모두 꼭지 쪽으로만 자르고 껍질을 벗기지 않는 법이지만, 오직 맨 윗자리에 놓는 밤만은 세 겹의 껍질을 모두 벗겨 내고 알밤으로 바쳐야 한다. 알밤을 아름다움의 알맹이로 여기는 우리 겨레의 마음이 서낭에게 바치는 제물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말이다.


                                     - 김수업, <우리말은 서럽다> 297쪽


 김수업 교수는 여기에 덧붙여, 한자 말에서 아름다울 미美와 견준다. 이것은 ‘염소 양’자 아래 ‘큰 대’자를 붙여 만들어진 단어로, ‘염소가 크다’는 것이 곧 아름답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여기서 말하는 염소가 큰 ‘면양(털염소)’으로 옷감으로 쓰이기 때문이다. 또한, 맛이 좋아 가장 값진 고기로 여겼다고 한다. 그리하여 “만두 속에는 값싼 개고기를 넣으면서 만두 집 대문 위에는 염소 대가리를 내다 건다. (양두구육)”는 속담까지 생긴 것이라고 한다. 염소는 중국 사람들에게 먹고 입는 일에서 가장 귀한 짐승으로 여겨졌기에, 그것이 클수록 아름답다고 생각한 것이고 제물로 바칠 적에도 가장 좋은 제물로 여겼다는 것이다.


 서양과 동양에서 나라마다, 문화마다 다르게 내적인 아름다움이니, 외적인 아름다움이니 하고 따졌지만, 우리말에는 아름다움이란 겉만 보고는 알 수 없고, 용기 있게 나서서 다가가야만 만날 수 있고 진정하게 드러난다는 뜻이 이미 들어있다. 우리가 입고 먹기 때문이 아니라 아름다움의 알맹이를 지닌 알밤을 우리는 조상님께 바친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도, 한 나라가 발전하는 과정도 이와 같다. 한 시대를 열어가는 과정도, 새로운 기술이 익어가는 과정도 이와 같다. 처음에는 보잘 것 없어 보이지만 한 걸음 한 걸음 더 아름답게, 더 사람답게 나아가 그 열매를 간직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아름다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