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알레르기가 있으면 평생 못 먹나요?

  • 514호
  • 기사입력 2023.04.28
  • 편집 이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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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은 “김지현 교수가 알려주는 아토피와 알레르기의 모든 것” 중에서 가져왔습니다.)



글 :  의과대학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과 김지현 교수


어린이는 어른보다 알레르기가 더 많이 생긴다. 면역이나 점막 기능이 아직 미숙하기 때문이다. 100명 중 4~5명의 어린이가 식품알레르기 증상을 경험하고 이 중 한 명은 아나필락시스까지 겪는다. 2015년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초·중·고등학생 중 15% 이상이 식품알레르기 의심 증상을 한 번 이상 겪었다고 한다. 알레르기의 흔한 원인 식품은 나이에 따라 다르다. 나이가 어린 아이들은 달걀, 우유, 밀, 땅콩, 견과류가 흔한 원인이다. 청소년, 성인에게는 주로 땅콩, 견과류, 해산물, 갑각류, 과일이 문제가 된다. 중간에 해당하는 나이에서는 양쪽의 원인 식품이 모두 문제가 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식품 등의 세부표시기준’으로 알레르기 유발 식품 정보를 제공하도록 정해져 있지만, 사고를 완벽하게 예방하기는 어렵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2017년부터 3년 6개월간 소비자 위해감시 시스템에 접수된 식품알레르기 사고 건수가 3천 건을 넘었다고 한다. 특히 4건 중 1건 이상이 10세 미만의 어린이에게 일어난 사고였다. 따라서 학교 입학을 앞둔 알레르기를 가진 어린이의 부모들은 걱정이 한 가득이다.


"우리 주영이는 24개월에 달걀을 먹고 온몸이 울긋불긋해져서 안 먹이고 지냈거든요. 유치원 보내기 전에 검사를 했더니 달걀이 2단계, 밀이랑 호두가 1단계였어요. 학교에 입학하고 급식에서도 모두 제한하고 있어요. 이제 3년 정도 차단했으니 다음 달에 피 검사를 할까 해요. 그래도 급식은 위험하니까 계속 제한하는 게 좋을까요?"


한 번 알레르기는 영원한 알레르기로 생각하는 부모님을 만날 때가 있다. 매일 급식 메뉴를 확인하고 문제가 되는 음식을 못 먹도록 차단하는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조리 기구를 함께 사용하거나 수업 중 알레르기 음식을 사용하는지 작은 노출 가능성까지 신경 써야 한다. 상비약도 미리 챙겨 학교에 부탁한다. 이전에 제대로 진단을 받지 않은 경우라도 기관이나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는 그 음식이 정말 문제가 맞는지 전문의 진료가 필수이다. 혈액 검사에서 알레르기 항체 수치가 나왔다 해도 먹을 수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사연 속 주영이도 입학 당시에는 달걀 알레르기가 이미 좋아졌을 가능성이 높다.


아이의 검사가 정상인데도 무서워서 이것저것 먹이지 못했던 엄마가 있었다. 아이가 학교에 가는 것도 외출하는 것도 항상 걱정이 된다고 했다. 


“그동안 안전하게 잘 키우느라 수고하셨어요.” 훌쩍훌쩍 우는 엄마를 달래자 아이의 얼굴 표정이 어두워졌다.


“음식 못 먹어서 많이 힘들었구나. 앞으로 선생님이 도와줄게.”


“선생님, 저는 괜찮아요. 엄마가 도와줘서 별일 없었는데, 엄마한테 미안해서 그래요. 저 때문에 매일 너무 힘드신 거 같아요.”


아이의 대답에 나는 울컥했다. 그동안 엄마의 불안이 아이에게 온전히 죄책감으로 전달되었다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몸 건강도 중요하지만 마음 건강 역시 중요하다. 엄마가 아이에게 미안하듯이 아이 역시 나 때문에 엄마가 힘들어하면 미안하다고 느낀다. 알레르기가 확실하지 않으면 전문가와 상담하여 먹이자. 불필요한 차단 생활은 아이의 마음 건강을 해치고 아이의 일생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몇몇 음식은 시간이 지나도 알레르기가 지속되지만, 대부분 식품은 성장하면서 자연적으로 괜찮아진다. 최근 우리나라 연구에 따르면 만 5세경이 되면 달걀 알레르기 환자의 50% 정도가 호전된다고 한다. 우유 알레르기의 경우 만 8세경이 되면 반 정도의 아이들이 문제없이 유제품을 먹을 수 있게 된다. 이후에도 조금씩 호전되어 대부분 아이들은 달걀이나 우유를 먹게 된다.


알레르기가 오래 지속되는 대표 음식은 땅콩과 견과류(호두, 아몬드, 잣, 캐슈너트, 헤이즐넛, 피스타치오, 마카다미아 등)이다. 수빈이는 어릴 때 아토피피부염도 심하고 여러 음식에 알레르기가 있어 고생했다. 자라면서 새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늘었지만 땅콩/견과류 알레르기는 포기하고 지냈다. 간혹 쿠키에 숨겨진 견과류가 호흡곤란과 아나필락시스를 일으켜서 천식 흡입약과 에피네프린 주사를 항상 지니고 다녔다. 그런데 대학에 입학하고 용기를 낸 검사에서 땅콩과 아몬드 알레르기가 없어졌다. 그동안의 고생에 감격한 엄마와 끌어안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수빈이처럼 만 4세 이후 혹은 성인이 되어서 땅콩 알레르기가 호전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보고되기도 했다. 견과류 알레르기도 마찬가지다. 낮게는 9%부터 높게는 74%까지 좋아진다고 한다. 희망을 버리지 말자. 국내 연구에서도 생후 5세 이전에 땅콩 알레르기가 있었던 환자들의 약 30%가 시간이 흘러 결국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급식을 앞둔 부모와 의사는 식품알레르기를 초등학교 입학 전에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래서 최근에는 알레르기의 자연 경과를 바꾸는 적극적인 치료도 시도한다. 경구면역요법이라고 부르는 이 치료는 알레르기가 나타났던 음식을 조금씩 먹여서 아이의 면역 시스템이 ‘이 음식 괜찮은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외국에서도 만 4세 무렵까지 식품알레르기가 지속되면 이 방법을 고려한다. 하지만 위험한 알레르기 반응이 생길 수 있어서 경험이 많은 전문의와 반드시 상의해야 한다. 자체적으로 집에서 시도하거나 다른 비전문가들의 조언만으로 진행하는 것은 정말 위험하다.


과일을 먹고 입안이 가렵고 불편한 증상은 구강 알레르기 증후군, 꽃가루-식품알레르기 증후군이라고 한다. 꽃가루와 과일의 교차 반응이 원인이다. 과일과 꽃가루는 우리 몸의 면역 항체와 만나는 부분이 비슷하게 생겼다. 그래서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는 아이들이 과일을 먹었을 때 몸에서는 “아, 꽃가루가 들어왔구나” 생각하고 공격한다. 꽃가루로 인한 비염이나 결막염이 생기는 나이 즈음에 평소 문제없던 과일이 새롭게 증상을 일으킨다. 사과-견과류-자작나무 꽃가루, 셀러리-쑥 꽃가루-자작나무 꽃가루, 바나나-멜론-돼지풀 꽃가루 사이에 교차 반응이 대표적이다. 증상이 아주 심한 경우에는 쇼크까지 일어날 수 있어서 제한이 필수적이다. 꽃가루 면역요법이 아니면 과일 알레르기가 저절로 좋아지는 경우는 별로 없다.



◈ 김지현 교수는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로 아토피로 고생하는 아이와 엄마를 보며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다 책까지 냈다. 그녀 역시 자신의 아이가 아토피로 고생했으니 아주 남의 일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책을 읽어보면 구구절절 이 사람이 얼마나 환자와 환자의 보호자를 걱정하는지 마음에 와닿는다.

경험과 연구, 치료를 통해 알게된 지식을 이 한권의 책에 담았다. 추측과 감이 아니라 온전한 지식이 들어 있는 이 책을 아토피로 고생하는 독자들이 읽으면 좋겠다.

그녀의 온기가 느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