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증이 치료의 핵심 - 스테로이드, 알고 쓰자

  • 517호
  • 기사입력 2023.06.15
  • 편집 이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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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은 “김지현 교수가 알려주는 아토피와 알레르기의 모든 것” 중에서 가져왔습니다.)


글 :  의과대학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과 김지현 교수




아이가 돌 즈음에 아토피 진단을 받았어요. 처음엔 스테로이드 연고를 조금씩 사용했는데 금방 좋아졌어요. 그런데 다시 나빠지는 것 같고 부작용이 무서워서 사용하지 않았어요. 평생 좋아졌다, 나빠졌다 반복하고 부작용을 걱정하며 살아야 할까 봐 걱정이에요.



아토피피부염을 가진 아이를 키우면서 호전과 악화를 반복해 겪다 보면 이런 걱정이 생기는 것이 당연하다. 강도 높은 스테로이드제를 오랫동안 바르면 피부가 위축되고 모세혈관이 확장되거나 여드름이 생긴다. 하지만 부위에 따라 사용량과 방법을 잘 지키면 바르는 스테로이드제를 무서워할 이유가 없다. 기전과 부작용을 알고 제대로 사용하면 우리 아이를 아토피 염증에서 지키는 비장의 무기로 활용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스테로이드라고 부르는 약제는 부신피질호르몬제를 의미한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콩팥 위에 있는 부신에서 만들어지는 호르몬의 한 종류이다. 오전 8시경 가장 많이 분비되는데, 우리 몸의 시스템을 정상적으로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스테로이드제는 염증 질환에 사용된 역사가 매우 길어서 그 효과와 부작용이 잘 알려져 있다. 물론 스테로이드를 먹는 약이나 주사로 장기간 사용하면 부작용이 생긴다. 위궤양, 골다공증, 당뇨병, 쿠싱증후군과 같은 우려할 만한 부작용이다. 그래서 이런 약을 장기간 사용하는 경우는 폐출혈이나 류마티스처럼 심한 만성 질환에 국한된다. 질병 자체의 합병증이 약의 부작용보다 훨씬 더 무서운 경우이다. 따라서 염증 억제 효과는 유지하고 부작용은 줄이기 위해서 ‘국소적’으로 사용하는 스테로이드 약제가 개발되었다.


약한 강도의 스테로이드 연고는 부작용도 적고 피부염에도 잘 듣는다. 강도가 제일 낮은 약물은 수개월 동안 매일 사용해도 특별한 이상이 없다는 보고가 있을 정도다. 그렇다고 매일 주구장창 바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만에 하나 부작용이 생겨도 강도가 낮은 약으로 바꾸거나 약의 사용을 중지하면 회복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약물의 효과가 좋다는 이유로 무서워서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두겠다는 것은 냉정한 판단이 아니다. 제대로 된 방법을 지켜서 일단은 피부 증상을 빨리 가라앉혀야 한다.


약을 끊으면 금방 나빠지고 다시 썼을 때 잘 듣지 않는 것 같다는 얘기도 많이 듣는다. 이런 문제는 스테로이드제의 강도 선택과 사용 기간이 적절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강도가 낮은 스테로이드제는 증상이 심해지기 전에 사용해야 한다. 불이 난 초기에는 작은 소화기만으로도 불길을 잡을 수 있다. 하지만 번지고 커지면 소방차나 헬기를 동원해야 한다. 가급적 강도가 낮은 스테로이드제를 사용하고 싶다면 초기에 시작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초전박살’을 기억하자. 증상이 심할 때가 아니라 붉은 기운이 막 생기기 시작할 때 사용해야 약이 잘 듣는다. 사용 기간도 중요하다. 피부염이 완전히 좋아지지 않았는데 약을 너무 빨리 끊으면 당연히 금방 다시 나빠진다. 군불 정리까지 완벽해야 한다.


먹는 약은 처방된 양이나 횟수를 지키지 못할까 봐 여러 차례 확인하면서, 바르는 스테로이드제는 무조건 적게 바르려는 경향이 있다. 대부분 아주 조금 덜어서 최대한 넓은 곳에 펴 바른다. 먹는 약이 우리 몸에서 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게 중요한 것처럼 바르는 스테로이드제도 용량과 사용 횟수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효과는 높이고 재발은 줄일 수 있다. 염증의 불길이 심하게 번지고 나서야 약을 시작하면 몇 주일 혹은 몇 개월 계속해서 사용해야 한다. 오히려 스테로이드제의 부작용 위험도 커진다. 필요할 때는 그 양을 충분히 바르고 증상이 호전되면 병원의 지시대로 조금씩 줄이거나 끊어야 한다.


그럼 얼마나 사용하는 것이 적당한 양일까? 연고는 어른의 손가락 한 마디만큼 짜서 손바닥 두 개에 해당하는 범위에 바른다. 양 손바닥에 문질러서 그 손으로 아이 피부에 바르라는 의미가 아니다. 어른 손바닥으로 면적을 가늠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로션으로 된 약이라면 50원짜리 동전만큼 짜서 손바닥 두 개에 해당하는 범위에 바를 수 있다.


스테로이드제는 약마다 강도, 즉 세기가 모두 다르다. 강도를 숫자 등급으로 나누는 경우 1등급이 가장 높고 7등급이 가장 낮은 단계이다. 스테로이드가 흡수되는 양은 약의 강도와 피부 두께에 따라서 결정된다. 손바닥이나 발바닥처럼 피부가 두꺼운 곳은 강도가 낮은 스테로이드제를 바르면 흡수되지 않아 소용이 없다. 당연히 스테로이드제의 효과도 부작용도 잘 나타나지 않는다. 증상과 부위에 따라 강도가 낮은 약을 길게 바르는 것보다 센 약을 단기간 쓰는 게 효과와 부작용 면에서 더 나을 수 있다. 증상이 나아지면 빨리 약한 약으로 바꾸었다가 유지하면서 끊고 일반 피부 관리법으로 돌아가면 된다.


바르는 약도 로션, 연고, 크림의 형태로 나눌 수 있다. 연고는 끈적끈적한 기름과 같은 성분으로 만들어져 있고, 로션은 물이나 알코올 같은 용액에 약 성분이 섞여 있다. 로션 타입의 약은 병변이 넓거나 진물이 나거나 피부가 접히는 부위에 사용하기 편하다. 반대로 연고는 부위가 좁고 진물이 없는 곳에 바르는 것이 효과적이다. 연고는 끈적끈적한 기름 성분이기 때문에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세정제를 이용해 씻어 먼지나 때가 끼는 것을 막아야 한다. 제대로 씻고 다시 바르지 않으면 피부에 자극이 돼서 오히려 피부염을 더 악화시키기도 한다.


아토피피부염은 염증 질환이고, 염증 치료의 핵심은 스테로이드제이다. 바르는 스테로이드제를 제대로 된 방법으로 사용하면 부작용 염려 없이 아이의 증상을 훨씬 편하게 할 수 있다. 밤새 모기에 한두 군데만 물려도 그날 밤은 끝장이다. 가려워 미칠 것만 같고, 피를 낼 만큼 긁어도 만족스럽지 않다. 모기에 수십 군데는 물린 것 같은 가려움이 몇 날 며칠 이어지는 아이의 가려움을 가늠할 수 있을까? 잠 못 이루는 밤은 낮 동안의 생활에도 영향을 미친다. 지금 내 아이를 편하게 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 무엇인지 생각 하면 답이 보인다.



◈ 김지현 교수는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로 아토피로 고생하는 아이와 엄마를 보며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다 책까지 냈다. 그녀 역시 자신의 아이가 아토피로 고생했으니 아주 남의 일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책을 읽어보면 구구절절 이 사람이 얼마나 환자와 환자의 보호자를 걱정하는지 마음에 와닿는다.

경험과 연구, 치료를 통해 알게된 지식을 이 한권의 책에 담았다. 추측과 감이 아니라 온전한 지식이 들어 있는 이 책을 아토피로 고생하는 독자들이 읽으면 좋겠다.

그녀의 온기가 느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