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행복했던 바보 화가.. 운보!!

  • 11호
  • 기사입력 2002.05.28
  • 취재 기희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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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미술 series> 글 | 법학과 김민호 교수님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던 바보화가, 운보 雲甫!

Ⅰ. 프로롤그

밤새 흩뿌리던 비가 멈추고 화창한 햇살이 아파트 베란다 창을 통하여 쇼파에서 흐느적거리고 있는 필자의 얼굴을 간지럽히고, 아들 녀석의 등살과 아내의 곱지 않은 눈빛에 필자는 어쩔 수 없이 가솔들을 이끌고 어디론가 떠나야 했다. 딱히 갈 곳을 정하지 않았기에 우리는 초정리에 있는 운보의 집을 가기로 했다. 지난번에 갔을 때는 운보 미술관을 한참 짓고 있던 터라 갤러리가 다 지어지면 다시 오기로 약속을 했던 것이다. 운보의 집 정원 구석에 우두커니 서 있는 석등에는 빗물이 여전히 고여 있고, 대청마루에는 운보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기에 충분할 정도로 청아한 일요일의 아침 풍경이었다. 따지고 보면 그리 행복하지만은 않았던 그를 무엇 때문에 필자는 행복하다 생각하는 것이며, 이 곳에 오면 필자마저 행복해 지는 것일까? 필자는 운보의 작품 중에서 특히 바보산수를 좋아한다. 우리네 넉넉한 풍경을 가장 표현하고 있으며 가장 김기창 다운 작품이라고 필자는 맹신을 한다. 이제부터 필자는 운보와 우향의 러브스토리, 바보산수에 대한 필자의 예찬론, 그리고 운보가 평생 그들의 권익을 위하여 봉사하였던 농아자의 법적 지위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Ⅱ. 雲甫와 雨鄕

운보 김기창과 우향 박래현은 1946년 결혼한다. 그 후 1976년 우향이 타계할 때까지 30년여년간 운보와 우향의 러브스토리가 전개된다. 운보의 작품세계에 반하여 결혼을 하였으나 필담만으로 의사를 교환하는 것에 한계를 느낀 우향은 운보에게 입으로 말하는 구화법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자신의 귀로 들을 수 없는 발음을 입으로만 말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포기하고 좌절하고 어떤 때는 신경질적인 운보를 달래어 가면서 우향은 끝내 운보의 입을 열게 하였던 것이다. 어떤 때는 자애로운 어머니로서, 어떤 때는 냉엄한 선생님으로서, 또 어떤 때는 서로의 작품세계에 대해 격려도 하고 비판도 하던 동료로서 우향은 운보의 곁에 있었다. 그러나 우향은 마치 자신의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알기라도 한 듯 창작에 대한 열정으로 어린 딸들과 그저 우향이 없으면 안절부절을 못하는 운보를 남겨두고 1968년 판화를 배우기 위해 도미유학을 한다. 운보 자신이 쓴 자전적 소설 '나의 사랑과 예술'(정우사, 1997년)이라는 책에서 우향의 7년간 유학생활동안 운보가 우향에게 보낸 구구절절한 사랑의 편지가 여러 차례 나오는 것을 보아도 운보의 우향에 대한 감정은 각별하였던 것 같다. 그러나 우향은 유학생활에서 운보의 곁으로 돌아오자 말자 바로 병마에 시달리다 운보의 곁을 영원히 떠나고 만다. 우향과의 사별은 운보의 작품세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필자가 예찬하는 바보산수 역시 우향의 타계 이후에 본격적으로 작업이 시작된 것이라고 한다.

Ⅲ. 바보산수

경희대 최병식 교수는 바보산수를 통하여 본 운보의 예술세계를 "첫째 자신이 처한 장애와 환경을 극복해 가는 불굴의 의지, 둘째 그칠 줄 모르는 정열과 창조적인 에너지로 인한 다양한 경향의 창출, 셋째 샘솟는 한국 미술의 전통성에 대한 남다른 애착과 그 현대적인 재해석, 넷째, 자연주의적인 사상, 다섯째 대범성과 해학적 성정"이라고 평하였다. 바보산수는 이른바 운보의 <바보회화> 중에서 산수화를 일컫는 말이다. 운보는 바보회화에 대하여 생전에 "우리의 민화는 아주 훌륭한 예술입니다. 서민들의 소박한 삶과 해학이 조금도 꾸밈없이 담겨져 있어요.

바보산수는 그러한 민화의 정신을 내 나름의 작품 세계에 담아보려고 한 것입니다."라고 한 바 있다. 우리의 전통적인 민화를 보다 더 희화화해서 시원시원하면서도 단순하게 표현한 것을 바보회화라 하고, 그 중에서 산수를 표현한 작품들을 바보산수라 하는 것이다. 1976년의 작품으로 <강변> <정자> <강호정담> 등이 대표적이다. 평론가들은 바보회화 내지는 바보산수를 우향의 타계이후 운보가 우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 창작활동에 몰두한 일탈의 의지가 담긴 민화의 현대화라고 정의한다.

필자는 솔직히 평론가들의 정의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분명 바보산수에는 단순함 속에 감추어진 넉넉함이 보인다. 강변의 초막과 나룻배에 몸을 싣고 있는 사람들의 한가로움이 그대로 전해오는 듯한 감동을 주면서도 화폭이 어지럽지 않고 시원한 구성이 바로 바보산수의 매력이다. 평론가들의 현란한 미사여구로도 설명할 수 없는 잔잔함과 포근함이 바보산수 속에 숨어 있는 것이다. "나는 작가정신이 어린이가 되지 못하면 그 예술은 결국 죽은 것이라는 예술관을 가지고 있어요"라고 항상 얘기하던 운보의 예술세계가 바로 바보산수인 것이다

.Ⅳ. 농아자의 법적 지위

운보는 자신이 농아자 이었던 사실이 오히려 작품활동에 자신을 함몰시킬 수 있는 장점으로 작용하였다고 여러 차례 얘기한 적이 있다. 그러나 분명 답답했을 것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살면서 억울한 일도 많이 당했으리라. 필자는 운보의 예술세계에 대하여 고찰한 것을 계기로 우리나라의 현행법에서는 농아자를 어떻게 취급하고 있는 지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1. 소송법상 변론능력

민사소송에서 소송당사자 즉 원고와 피고가 자신들의 주장이나 증거로 상대방을 공격하거나 상대방의 공격에 대하여 방어하는 것을 변론이라 한다. 이러한 변론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이른바 변론능력이라 하는 데, 농아자를 변론무능력자로 보는 견해가 있다. 다시 말해서 농아자는 대리인을 통하여 변론을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농아자라 하여도 수화 등을 통한 통역이 가능하므로 변론능력자로 보아야 한다는 반론도 있다. 우리나라의 민사소송법에서는 독일처럼 변호사강제주의를 취하지 않고 있으므로 변호사에게 소송을 대리시키지 아니하고 본인이 직접 소송을 수행할 수 있으므로 보통 소송능력이 있으면 변론능력이 있는 것으로 본다. 그러나 소송능력이 있더라도 국어 구사력이 부족하거나 농아자 등과 같이 변론능력을 결하는 경우에는 그러한 자의 진술을 제한하고 이를 보완함으로써 변론의 충실을 도모하고자 하는 것이 변론능력을 제한하는 원래의 취지이기 때문에 농아자를 변론무능력자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2.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권리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은 수사단계에서는 물론 공판절차에서도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다. 피고인이 사형·무기 또는 단기 3년 이상의 형에 해당하는 죄로 기소된 경우에는 변호인 없이 재판을 할 수 없다. 또한 피고인이 미성년자, 70세 이상 고령자, 농아자 또는 심신장애의 의심이 있는 자인 때와 빈곤하여 변호임을 선임할 수 없어 그 선임을 청구한 때 등의 경우에는 법원에서 피고인을 위하여 변호인을 선임하는데 이를 국선변호인이라 한다. 이처럼 농아자는 형사소송에 있어 국선변호인의 도움을받을 권 리가 있다.

3. 형법상 한정책임능력자

농아자의 범죄행위에 대해서는 보통의 경우보다 형을 감경하여 처벌한다. 농아자란 청각기능과 발음기능 모두 장애가 있는 자를 말한다. 선천적으로 장애가 생긴 경우이건 유아시에 생긴 경우이건 묻지 않는다. 이러한 자는 정신발육이 불충분한 것이 보통이므로 형법은 특별 취급하여 형을 감경하기로 한 것이다. 농아 그 자체는 신체장애의 일종이지만 농아교육이 발달된 오늘날 이로 인해 반드시 정신장애를 일으킨다고 할 수 없고 또 정신장애가 있는 농아자는 심신장애자로 취급할 수 있으므로 농아자를 일률적으로 한정책임능력자로 특별 취급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현재 형법개정안에는 농아자를 한정책임능력자에서 제외하고 있다.(정성근·박광민, 형법총론, 삼지원, 316면 참조)

<운보 김기창의 작품>
스큐진 기자 기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