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티스와 피카소 -창작과 표절사이-

  • 15호
  • 기사입력 2002.07.30
  • 취재 도진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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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프롤로그

영국 화가 터너(1775∼1851)의 작품들을 모아둔 이른바 터너컬렉션으로 유명한 런던 테이트 겔러리에서 지난 7월 '마티스-피카소 展'이 열렸다고 한다.(뉴스위크 2002.7) 야수파(포비즘)의 거장 마티스와 입체파(큐비즘)의 태두 피카소는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길 레 이러한 기획전을 개최한 것일까? 이러한 의문을 가지고 자료들을 찾다보니 이들 사이에는 피카소가 프랑스 파리의 몽마르트에 온 1904년부터 마티스가 사망한 1954년까지 끈끈한 애증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Ⅱ. 앙리 마티스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는 프랑스의 북부 카토 지방에서 출생하였다. 법률공부를 하다가 화가가 되기로 진로를 바꾸었다. 루브르 미술관에서 유명한 작품들을 모사(模寫)하면서 세월을 보내고 있던 마티스는 귀스타브 모로(Gustave Moreau)의 눈에 띄어 그의 미술학교에서 공부를 하게되었다. 여기서 마티스는 루오, 마르케 등과 함께 수학하게 되었고, 이들이 훗날 야수파를 주도하게 된다. 마티스는 모로의 지도를 받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강렬한 색채미술을 추구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영향으로 이른바 포비즘(fauvism)이 태동하게 된다. '거친 동물'이라는 어원을 가지고 있는 포비즘은 1905년부터 1908년까지 마티스, 루오, 뒤피 등이 참여한 예술 운동으로서, 강렬한 색채와 형상의 변조 및 소박한 양식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다.
한 때는 입체파(큐비즘)에 매료되기도 하였으나, 모로코를 다녀온 이후부터는 아라베스크 또는 꽃무늬 등과 같은 정형화된 문양과 원색계열의 깨끗한 색을 병렬적으로 배치하는 평면적 구성의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이 무렵의 대표작으로는 '목련꽃을 든 오달리스크'가 있다. 마티스는 이후에도 계속해서 보색관계를 더욱 교묘하게 배치하고 순수한 색채효과를 강조하는 마티스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추구하였고, 그 결과 마티스는 피카소와 함께 20세기 미술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된다.

Ⅲ. 마티스와 피카소

마티스와 피카소는 20세기초 프랑스 화단에서 가장 강력한 경쟁자였고, 서로가 서로에게 날카로운 비평가이면서 동시에 열렬한 팬이었다. 피카소는 '마티스의 뱃속에는 아마도 태양이 들어 있을 것'이라 하여, 마티스가 강렬한 색채를 자유분방하게 사용하는 것을 무척 부러워하였다고 한다. 마티스 역시 임종이 가까웠던 어느 날 피카소에게 '우리들 중 한 명이 죽으면 세상에 다시없는 대화 상대를 잃게 될 것'이라고 하였었다고 기록은 전한다.(뉴스위크, 2002.7)
마티스는 색과 빛을 분해하여 자유롭게 재배치하는 파격을 추구하였고, 반면에 피카소는 사물을 분해하는 작업을 하였다. 기존의 관념과 틀을 철저히 파괴해 버리려는 몸부림은 이들의 공통점이었으나, 그 분해의 대상에서는 전혀 다른 세계를 추구하였다. 결국 이들은 서로에게 서로가 충격을 주면서 각자 자신의 예술세계를 한차원 상승시키는 계기를 마련하였던 것이다.
마티스는 알제리를 방문하여 원주민의 몸과 미술에 깊은 영감을 얻어 1906년 'blue nude'를 그리게 된다. 몸과 근육의 형태를 파괴하고 강한 푸른색 톤을 사용하여 여인의 육감적인 몸을 강조한 작품이다. 그런데 이듬해인 1907년 피카소는 그 유명한 '아비뇽의 처녀들'을 발표하게 된다. 이 역시 여인의 몸의 윤곽과 근육을 왜곡시키고 푸른 색 톤의 배경을 사용하였다는 점에서 마티스의 'blue nude'와 그 맥을 같이 한다. 마티스는 피카소가 자신의 원주민 미술을 표절하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표절시비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문헌이 없다. 어찌되었든, 필자는 이 기회에 미술작품과 표절에 대하여 몇 가지 법률문제를 소개하고자 한다.

Ⅳ. 창작과 표절사이-미술저작권의 침해

미술저작물이란 형상 또는 색채에 의하여 미적으로 표현되어 있는 저작물을 말한다. 이들 미술저작물에는 '회화, 서예, 도안, 조각, 공예, 응용미술작품, 만화, 삽화' 등이 있을 수 있다. 한편 우리가 흔히 '표절'이라고 하는 것은 '타인의 저작물을 마치 자신의 저작물인양 발표하는 것'을 말하는데 대표적인 미술저작물의 저작권을 침해하는 행위에 해당된다.
그런데 저작물을 무단으로 이용한다고 해서 모두 저작권을 침해하는 것은 아니다. 기존의 저작물을 그대로 베꼈거나 다소의 수정은 있었으나 창작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경우에는 저작권 침해에 해당하지만, 기존의 저작물을 이용은 하였지만 단순히 시사 받은 정도에 불과하거나 그것을 완전히 소화하여 기존의 작품과 동일성 및 종속성을 발견할 수 없는 완전히 새로운 작품이 된 경우에는 저작권 침해로 보지 않는다.(오승종/이해완, 저작권법, 박영사, 450면)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저작권 침해의 여부를 판단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저작권 침해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첫째, 침해자가 저작물을 이용하려는 의사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만약 우연의 일치에 의해서 또는 동일한 재료를 사용하는데서 오는 자연적 귀결로 인하여 저작물과 동일한 작품이 나온 경우에는 저작권 침해를 인정하지 않는다. 둘째, 양 작품 사이에 동일성과 종속성이 있어야 한다. 동일성과 종속성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설정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구체적 사례마다 저작물과의 동일성 및 종속성을 따져 보아야할 것이다. 더욱이 저작권의 보호대상은 '내용'이 아니라 '형식'이며, '아이디어'가 아니라 '표현'이라고 한다. '아이디어'와 '표현'의 구분은 우리를 더욱 혼란스럽게 한다. 그러나 이처럼 복잡한 법이론도 상식의 수준을 넘지는 않는다는 것이 필자의 강한 신념이다. 자신의 양심이 허락하는 범위까지만 다른 사람의 작품을 이용한다면 저작권 침해의 시비는 없을 것이다. 창작과 표절에 대한 가장 명확한 기준은 바로 작가의 '양심'인 것이다.

편집 | 스큐진기자 윤지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