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벤스와 올드파 위스키 -초상권이란 무엇인가??-

  • 17호
  • 기사입력 2002.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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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프롤로그

바로크시대를 대표하는 화가 루벤스와 위스키의 대표브랜드 올드파 사이에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 올드파 위스키의 병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마음씨 좋게 생긴 할아버지 초상화가 그려져 있다. 초상화의 주인공은 토마스 파(1438∼1589)라는 사람이라고 전해진다. 그는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152세까지 술만 마시고 인생을 살다가 간 주선(酒仙)이었다. 신장 155cm에 체중 53kg의 왜소한 체격이었으나 당대에 유명한 두주불사였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그는 80세에 처음 결혼하였고, 102세때 재혼할 정도로 노익장을 과시하였다는 점에서도 세간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였다. 영국의 찰스 1세는 이미 유명세를 타고 있던 그를 런던에 초대하였고, 당시 최고의 화가 루벤스에게 그의 초상화를 그리게 하였다. 바로 그 초상화가 양주 올드파의 상표가 되었다는 것이다.(출전, http://www.jinro.co.kr)
필자는 영국 왕실에 보관되어 있다는 그의 초상화에 관한 자료를 찾으려 노력하였으나, 애석하게도 더 이상의 자료를 발견할 수 없었다. 따라서 이러한 일화의 진위여부에 관하여도 확신하기가 어렵다. 이야기의 진실성은 접어두고, 이 기회에 필자는 바로크시대를 대표하는 루벤스와 그의 작품세계, 그리고 초상화를 상표로 사용하는 경우에 발생할 수 있는 법적인 문제 즉 초상권에 얽힌 법률문제를 소개하고자 한다.

Ⅱ. 루벤스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 6. 28 ∼1640. 5. 30)는 독일 베스트팔렌의 지겐이라는 곳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15세 때부터 화가의 꿈을 품고 노르트, 베니우스 등에게 그림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그가 바로크 미술에 눈을 뜨게 된 것은 23세 때부터 8년 동안 이탈리아에서 유학한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때 그는 미켈란젤로, 티치아노, 카라바조 등의 베네치아 화가들에게서 빛과 색채의 자유로운 기법을 터득했으며 점차 명성도 얻게 된다.
역사적으로 대부분의 유명한 화가들이 생존 당시에는 비참한 생애를 살았던 것과는 달리 그는 매우 안정되고 유복한 삶을 살았다는 점도 특이하다.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의 외교관으로 활동하였고, 영국의 찰스 1세에게서는 기사직위와 Cambridge대학 명예학위를 수여 받기도 하였다. 루벤스는 1626년 아내 이사벨라가 죽은 후 1630년 당시 16세 소녀 엘레나 푸르망과 재혼하였다. 1640년 통풍으로 안트베르펜에서 생을 마감한다.

Ⅲ. 루벤스의 작품세계

루벤스의 작품세계를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역동적인 힘'이라 할 수 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루벤스를 바로크 미술의 대표화가로 평가하는 것이다. '바로크(baroque)'의 원래 의미는 '일그러진 진주'라는 뜻으로서, '과장된' '지나치게 수식적인'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단어이다. 이를 회화적 측면에서 설명하면 '과장된 남성 경향의 17세기 미술양식'을 일컫는다. 바로크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강렬한 색채와 뚜렷한 음영처리, 풍부한 질감대비라고 할 수 있다. 16세기의 르네상스미술은 정돈과 조화를 통한 균형미를 특징으로 하였고, 17세기의 바로크미술은 이러한 조화의 고의적 해체를 시도하면서도 여전히 전체적인 균형을 유지하였으며, 18세기의 로코코미술은 이를 보다 철저하게 해체하여 사물을 감각적으로 표현한 미술思潮라고 이해하면 전체적인 화풍의 변화를 조망할 수 있을 것이다.
1610년에 그려진 '십자가를 세움'이라는 그림은 루벤스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데 가장 커다란 도움이 된다. 예수를 매단 무거운 십자가를 장정들이 일으켜 세우는 장면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그림이다. 쓰러질 것 같은 십자가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온 힘을 쏟는 장정들의 몸에서 솟아 나온 근육과 힘줄은 보는 이로 하여금 십자가의 무거움을 함께 느끼게 한다. 예수는 장정들보다 밝게 처리하여 당시의 처절했던 상황과 예수의 숭고성을 더욱 빛나게 한다. 그러나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과장되게 표현된 장정들의 근육이다. 가장 루벤스다운 작품이며, 바로크적 기법이라고 생각된다.
필자의 생각과는 달리 대부분의 미술평론가들은 루벤스의 대표작으로 '마리 드 메디시스 벽화'를 소개한다. 1615년에 앙리 4세의 두 번째 왕비인 마리 드 메디시스를 위하여 지은 파리의 뤽상부르 궁전의 21개 벽면에 루벤스는 '마리 드 메디시스의 생애'를 그린 것이다.
세속의 일상을 벗어버리고 '스텐'이라는 곳의 별장에 묻혀버린 루벤스는 말년까지 50여점 이상의 풍경화를 그렸다고 한다. 이들 풍경화는 밝고 화사한 색체와 자연스러운 명암을 사용하여 원근법을 시원하게 구사하고 있다. 이는 훗날 인상파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필자는 추측한다.

Ⅳ. 초상권이란 무엇인가?

이제 미술이야기는 접어두고 법률이야기를 해 보자. 루벤스는 왕실의 명을 받아 토마스 파의 초상화를 그렸고, 올드파 위스키 회사는 이를 상표로 사용하였다. 물론 초상화가 그려진 시점과 상표로 사용된 시점 사이에는 오랜 시간적 간격이 있기 때문에 법률적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만약 이러한 일이 오늘날동시에 발생하였다면 어떠한 법률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자는 것이다.
법적으로 영국 왕실은 초상화의 소유권자이며, 루벤스는 저작자이다. 그리고 토마스 파는 초상권자이다. 이들의 권리를 올드파 회사가 침해하였다고 가정해 보자. 다시 말하면 이 초상화를 무단으로 이용하였다고 가정해 보자는 것이다.
미술저작물 역시 저작권이므로, 저작자는 자신의 미술저작물에 대하여 전시, 복제, 이용 등에 대하여 독점적 권리를 가진다. 그런데 미술작품의 경우에는 저작자와 소유권자가 서로 다른 경우가 많다. 특히 초상화의 경우에는 촉탁에 의하여 그려지는 경우가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는 저작권과 소유권이 충돌할 수가 있다. 그래서 현행 저작권법 제32조에서는 '미술저작품의 소유자의 동의를 얻어서 전시 등을 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여, 원칙적으로 이런 경우에는 소유권자에게 전시권을 주고 있다. 다만 길거리나 공원 등과 같이 개방된 장소에서 전시를 할 경우에는 반드시 저작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미술 저작물을 단순히 전시하는 것과는 달리 상표 등으로 이용하기 위해서는 저작자의 허락을 얻어야 한다. 만약 허락 없이 무단 사용한 경우에는 저작권을 침해한 것이 된다. 저작권 침해에 대해서는 사용정지청구, 손해배상청구, 부당이득반환청구 등과 같은 민사적 구제와 권리침해죄, 부정발행 등의 죄, 출처명시위반죄 등과 같은 형사적 처벌이 가능하다. 참고로 저작권은 저작자가 생존하는 동안, 그리고 죽은 후 50년간 보호된다.
다음은 초상권에 대해 알아보자. 초상권이란 사람이 자기의 얼굴 기타 사회통념상 특정인임을 식별할 수 있는 신체적 특징에 관하여 함부로 촬영되어 공표되지 아니하며 광고 등에 영리적으로 이용되지 아니하는 법적인 권리를 말한다. 결국 초상권이란 재산적 권리가 아니라 인격적 권리이며, 이를 침해당한 경우에는 초상의 사용중지청구, 명예회복청구,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청구 등이 가능하다. 이와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개념으로 이른바 퍼블리시티(publicity)권이라는 것이 있다. 이는 '사람의 초상, 성명, 목소리, 특이한 몸짓 등과 같이 그 사람 자체를 가리키는 것을 광고, 상품 등에 상업적으로 이용하여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토마스 파의 초상을 당사자 동의 없이 위스키의 상표로 사용한 경우, 우선은 인격적 권리인 초상권이 침해된 것이고, 만약 그의 명성을 이용하기 위하여 그의 초상을 상표로 사용한 경우에는 퍼블리시티권도 침해한 것이 된다. 퍼블리시티권은 재산적 권리이기 때문에 경제적 손실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부당이득반환청구 등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최진실 요리백과'라는 책이름과 책표지에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에요' 라는 문구를 삽입하여 요리책을 출판하였다면 이는 퍼블리시티권을 침해한 것이 된다.
매우 생소하고 어려운 개념인 저작권, 초상권, 퍼블리시티권 등과 법률적 문제를 소개한 것이 오히려 여러분들에게 법을 더욱 어렵게만 느끼게 하지는 않았는지 걱정스럽다. 그러나 이러한 권리들도 양심에 따라 서로가 양보하고 타협하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상식적 문제이지 결코 복잡한 이론적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애써 강조하면서 글을 맺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