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 오필리의 흑인 마리아

  • 21호
  • 기사입력 2002.10.01
  • 취재 김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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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프롤로그

1999년 10월 'sensation'이란 주제로 미국 뉴욕의 브루클린예술박물관(the Brooklyn Museum of Art)에서 영국의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었다. 그런데 이들 작품 중에 크리스 오필리(Chris Ofili)의 '거룩한 동정녀 마리아'라는 작품 때문에 커다란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작품은 성모 마리아를 흑인으로 묘사하고 포르노 잡지에서 오린 남성 성기 사진과 코끼리의 똥으로 배경을 장식하고 있다. 박물관을 지원하고 있는 뉴욕시장은 문제의 작품을 철거하지 않을 경우 박물관을 시유 건물에서 퇴거시키고 박물관에 대한 보조금도 동결하겠다고 하였으며, 박물관측은 이러한 조치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양측이 팽팽하게 맞서게 되었다.

결국은 박물관측이 시장을 상대로 보조금지원중단결정은 위법하다는 취지의 소송을 제기하였고 법원은 박물관측의 손을 들어 주었다. 그러나 데니스 하이너(Dennis Heiner)라는 퇴직교사가 이 작품에 흰 물감을 뿌리고 낙서를 한 죄로 형사기소되고, 정치권에서는 전시의 찬반 양론을 놓고 심각한 대치까지 하는 등 파장은 점차 확대되어만 갔다.

필자는 이 기회에 크리스 오필리, 데미안 허스트(Demian Hirst) 등 영국의 3, 40대 젊은 화가들이 주축이 되어 포스트모던의 장르를 펼치고 있는 'sensational art'에 대한 이야기와, 만약 국공립미술관에서 작품의 표현을 이유로 대관을 거부하는 경우에 어떠한 법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가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하였다.

Ⅱ. Sensational Art

근래에 들어 우리 주변에서 심심지 않게 사용되고 있는 용어 중에 하나가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이다. 그러나 그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이해하기란 어렵다. 철학자와 예술평론가들의 글을 읽어보아도 무지에 대한 갈증을 시원하게 풀어주지는 못하는 것 같다. 필자의 우매함이 가장 큰 원인이겠지만 필자의 어리석음만을 탓하기에는 이들의 글이 너무 어렵다.

필자가 이해하고 있는 수준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포스트모더니즘이란 용어는 문학, 예술, 건축, 철학, 사회이론, 매스컴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다. 그것은 하나의 현상이 아닌, 여러 현상을 나타낸다. 따라서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통일된 정의가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거나 모순되고 혼란스런 현상을 포스트모던으로 이해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그 실체가 완전히 드러난 것이 아니라 아직도 형성 과정에 있다. 따라서 포스트모더니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모더니즘을 설명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필자는 생각으로는 포스트모더니즘을 모더니즘의 해체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을 역사의 주인공으로, 이성을 진리의 척도로 간주하는 모더니즘의 특징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첫째 이성에 대한 무한한 신뢰, 둘째 물질과 정신 또는 현상과 실제 등과 같이 세계관을 이원론적으로 바라보는 시각, 셋째 미래는 진보에 의하여 나아질 것이라는 확신 등이 모더니즘의 핵심적 사상이다. 그렇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은 이러한 모더니즘의 해체를 그 중심 사상으로 한다. 이를 문학이나 예술적 측면에서 정리하면 다음과 같은 몇 가지의 공통적인 유형을 발견할 수 있다. 패러디, 대중문화의 적극적 활용, 테크놀로지의 활용, 비판적 역사주의, 페미니즘 등이 바로 그것이다.

크리스 오필리의 '흑인 마리아'는 마리아의 신성성을 부정하기보다는 마리아의 순결성과 하얀 피부색을 진리인양 무의식적으로 연결하고 있는 기존의 편견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코끼리 똥이나 남성 성기 사진 역시 이러한 관점으로 파악된다.

그의 또 다른 작품 'Upstairs Chapel'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패러디 하여 예수의 12제자를 모두 다양한 색깔의 원숭이로 표현하였다. 센세이셔널 아트의 대표적 인물인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은 더욱 가관이다. 토막난 신체가 들어있다고 써있는 검은색 비닐 봉투에 방향제를 올려놓은 작품, 유리로 된 수조 속에 수술도구 의자 등 부인과용 의료기기와 컴퓨터 물고기 등을 넣은 작품, 비닐을 씌운 남녀의 시체와 힘줄과 내장 등이 담긴 통 등과 같이 부검실을 재현해 놓은 작품, 스테인레스 칼 수십 개를 꼽아놓고 공기를 이용해 공중에 공을 띄워놓은 작품 등 그의 작품은 센세이션의 차원을 넘어 혐오감 마저 준다. 물론 그는 이들 작품을 통하여 보는 이들에게 강렬한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한다. 아니면 세간의 관심을 끌고자 하는 사기일 수도 있다.
미술평론가들은 그의 작품을 '정신병자의 미술(morbid art)'라고 평가한다. 필자는 미술에 조회가 깊지 않은 탓에 이들 작품의 작품성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센세이션 아트는 그 자체가 센세이션함으로써 그 목적을 다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것이 메시지이든 아니면 치졸한 사기이든 이미 센세이션을 일으켰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Ⅲ. 대관거부에 대한 법적 문제

브루클린박물관 사건은 박물관측과 시당국간의 분쟁이었지만, 만약 화가가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고자 하는 경우 미술관측이 작가의 작품성을 이유로 대관을 거부하는 경우 어떠한 법률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일까? 우선 경우를 나누어 생각해 보아야 한다. 개인소유의 미술관인 경우에는 화가와 미술관은 임대차계약의 당사자이기 때문에 계약자유의 원칙상 미술관측이 작품의 전시를 거부하면 계약이 성립되지 않으므로 화가는 다른 미술관을 찾아 보아야할 것이다.

그러나 미술관이 국립 또는 공립인 경우에는 법적인 문제가 달라진다. 국·공립미술관은 넓은 의미의 행정기관이기 때문에 행정기관의 어떠한 조치(처분)로 인하여 권익을 침해당한 국민은 행정심판 또는 행정소송을 통하여 그 권리를 구제 받을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국·공립미술관의 대관거부로 인하여 화가의 권익이 침해당하였다면 그 화가는 미술관을 상대로 대관거부처분에 대한 취소를 청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대관신청에 대하여 미술관이 반드시 대관을 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전시가능 일시, 화가의 경력, 작품이 사회상규에 반하지 않는지의 여부, 작품전시회가 미술관의 설립목적에 부합하는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미술관측은 대관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이를 행정법적 용어로는 재량행위라고 한다.

그러나 비록 재량행위라 하여도 재량에 대한 행정청의 판단이 그 한계를 벗어나면 국민은 행정심판 이나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다른 요건을 모두 충족하였는데 작가의 작품성에 대한 미술관장의 주관적 편견으로 대관을 거부하는 것은 재량권을 남용하였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에 미술관대관거부처분에 대한 취소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아직까지는 이러한 사건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도 포스트모더니즘이 유행처럼 번져가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장담하기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