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 - 상호권의 법적 문제

  • 23호
  • 기사입력 2002.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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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의 마을에는 눈이 내리지 않았다.

Ⅰ. 프롤로그

어려울 때 같이 공부한 동학들을 만났다. 거나하게 저녁 겸 술을 한 잔 하고, 헤어지기 못내 서운해 굳이 마셔야 할 이유도 없는 커피숍을 찾았다. 특별히 요란하게 인테리어가 되어 있는 것도 아닌데 얼어 있던 몸이 따뜻해지는 포근함을 느끼게 하는 집이었다.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 커피숍 간판치고는 조금 거창한 것같다. 꽤나 유명한 집이란다. 체인점도 여럿 있다고 동료가 넌지시 일러주었다. 메뉴판에 체인점들을 나열해 두고 마지막에 큼지막한 글씨로 ‘등록된 상호이니 무단으로 사용할 수 없으며, 혹시 무단으로 사용하고 있는 곳이 있으면 알려달라’는 경고문이 써 있다.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 전혀 낯설지 않은 이름이다. 친구들의 잡담을 건성으로 들으면서 기억을 더듬으니 김춘수 시인의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이 떠오른다.
“샤갈의 마을에는 3월의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靜脈)이 바르르 떤다...........” 대충 첫 구절만 기억이 난다. 학창시절 외웠던 시 구절 때문에 이 이름이 정겨운 것인가? 좀더 다른 이유도 있을 것같아 기억을 짜내 보니, 역시 나의 기억을 자극했던 것은 김춘수의 시가 아니라 소설가 박상우의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이었다. 정치적 관심사라는 동질감으로 똘똘 뭉쳐 지내던 세칭 '386세대'인 ‘우리 여섯’이 이념과 열정이 지배하던 1980년대를 보내고 1990년대라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면서 자신들만의 전유물로 여겼던 열정을 다음 세대에게 넘겨주어야 하는 허탈감을 김빠진 맥주처럼 묘사했던 소설인 것으로 기억된다. 소설 속의 여섯 친구들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필자의 뇌리에 강하게 남아 있는 분위기가 오늘 우연히 맞아 떨어졌던 것이다.

그런데 전혀 엉뚱하게도 필자는 김춘수의 시나 박상우의 소설에 대한 감상에서 벗어나, 샤갈의 마을과 눈은 무슨 관계가 있고,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이 타인의 사용을 배제할 정도로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상호인가에 호기심이 발동했다.

Ⅱ. 샤갈과 ‘나의 마을’

샤갈(Marc Chagall)은 1887년 러시아의 비테프스크에서 출생하였다. 유대인인 그는 비교적 차분한 유년시절을 보내고 20살이 되던 해에 페테르스부르크에서 미술공부를 시작한다. 다른 화가들처럼 자신의 꿈을 펼치기 위해 1910년 프랑스 파리로 건너간다. 당시 프랑스 화풍을 지배하던 큐비즘 기법을 익힌 그는 이를 보다 더 과감하게 표현하는 표현주의 작품들을 선보이면서 25세의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베를린에서 첫 개인전을 열어 크게 성공시킨다. 결혼을 위하여 잠시 귀국하였으나 때마침 제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혁명이 발발하면서 그는 러시아에 머무른다. 그러나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환멸을 느끼고 1923년 다시 파리로 돌아와 왕성한 작품활동을 한다. 유대인 박해를 피해 한때 미국에서 지내다가 1950년부터 프랑스 남부의 방스에 터를 잡고 안정적인 작품활동을 하게 된다.

샤갈의 그림들을 살펴보면, 왜 그를 큐비스트나 포비스트라고 하지 않고 표현주의(Expressionismus) 거장이라고 하는 지를 쉽게 알 수 있다. 눈으로 보이는 사물의 현상을 부정하고 작가의 주관적 마음의 눈에 보이는 이미지를 형상화하였다는 점에서는 큐비즘, 포비즘, 초현실주의 등과 맥을 같이 하고 있으나, 사물의 구성체 또는 색채를 기하학적으로 완전히 분해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큐비즘이나 포비즘과 다르며, 또한 현상을 완전히 부정하고 있지는 않은 점에서 초현실주의와 구별된다.
샤갈은 감동적인 동화의 세계, 고향의 정겨웠던 풍광, 사랑에 겨워하는 연인들의 이야기들을 마치 자신이 조물주인 것처럼 자유롭게 표현하고 있다. 사실보다도 더 감동적으로, 또는 보다 더 정겹고 사랑스럽게 표현하는 그의 독특한 매력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샤갈의 그림을 좋아하는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런데 샤갈의 작품들에 관한 자료를 아무리 찾아보아도 ‘눈 내리는 마을’에 관한 그림을 발견할 수 없었다. 법학자인 필자의 한계인지, 아니면 정말 없는 것인지는 확신하기가 어렵다. 아무튼 샤갈의 그림 중에 ‘나의 마을’이라는 작품은 있다. 샤갈의 작품 ‘나와 마을’은 초현실주의(surrealism) 작품이다. 농부와 젊은 처자, 양젖을 짜는 소녀, 소의 머리와 사람의 얼굴, 마을의 정겨운 집들을 꿈의 세계처럼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이 마을에도 눈은 내리지 않았다. 그런데 왜 샤갈의 마을에는 눈이 내리는 것일까? 아직도 그 의문은 해결하지 못하였다. 독자 제위께서 혹시 알고 있으면 우매한 필자에게 알려주었으면 고맙겠다.

Ⅲ.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과 상호권(商號權)

다른 사람들은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커피숍을 할 수는 없는 것인가? 결국 ‘상호권’이라는 법적 문제를 검토해 보아야 한다.
상호권과 관련한 것으로 유명한 사건이 있다. 어떤 사람이 ‘촌집보쌈’이라는 상호로 오랫동안 영업을 했는데, 그 집에서 일하던 종업원이 ‘촌집보쌈’이라는 상호를 ‘서비스표 등록’ 하고는 원래 촌집보쌈 주인에게 그 상호를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 일이 있었다. 결국 소송이 제기되고, 대법원은 ‘종래의 주인이 자신의 상호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그 이름을 도용한 종업원의 상호권도 유효하므로 양쪽이 함께 사용할 수 있으며, 상호권은 종업원에게 있다’고 판시하였다(출처 한길국제특허법률사무소).

상식적으로 볼 때, 종래의 주인 입장에서는 참으로 황당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법은 사람이 사회생활을 함에 있어서 있을 지도 모를 분쟁을 미연에 방지하여 사회질서를 유지하려는 것을 그 첫째의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지키지 못한 때에는 법적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법은 자신의 권리를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 둠과 동시에, 다른 사람에게도 자신의 권리를 알려줌으로써 다른 사람이 그 권리로 인하여 피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제도적 장치를 두는 것이 일반적이다. 상호에 관한 권리 역시 마찬가지이다.

상법 제23조에서는 ‘누구든지 부정한 목적으로 타인의 영업으로 오인할 수 있는 상호를 사용하지 못한다’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타인이 자신의 상호를 부정하게 사용하면 상대방에게 상호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거나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구제를 받기 위해서는 ①자기가 이 상호를 처음부터 정당하게 사용하였다는 것 ②상대방이 자기의 영업과 오인할 수 있는 상호를 사용하였다는 점 ③상대방이 부정한 목적으로 그것을 사용하였다는 점 ④그로 인하여 자기의 영업에 손해를 받을 염려가 있다는 점 등을 입증해야만 보호를 받을 수 있다. 물론 자신의 상호를 미리 ‘등기’해 두면 이러한 입증을 하기가 훨씬 쉬워질 수 있다. 그러나 등기의 효력은 등기를 해둔 소재지에서만 미치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서 동일한 상호를 사용하고 있는 상대방에게는 그 효력을 주장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가장 확실한 방법은 상호를 ‘상표’ 또는 ‘서비스표’로 특허청에 등록하는 것이다. 이처럼 등록을 해 두면 이러한 상호는 자신만이 독점적으로 사용할 수 있고, 그 효력의 범위도 전국에 미치기 때문에 확실한 보호를 받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상표권’ ‘서비스표권’은 자신의 재산권이 되기 때문에 타인에게 빌려주거나 매매할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이 ‘상표’나 ‘서비스표’로 등록이 되어 있다면 어느 누구도 이러한 상호를 내걸고 영업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메뉴에 자신있게 ‘타인의 사용을 금지한다’라는 경고문을 써 놓은 것을 보니 아마도 상표등록이 되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호기롭게 커피 값을 지불하고 나니 모처럼 두툼했던 지갑이 다시 얇아져버렸다. 비싼 커피로 애써 데워놓은 속이 찬 공기로 금새 식어짐을 느끼면서 필자는 눈이 내리지 않는 나의 마을로 발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