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올로기와 그림, 그리고 법

  • 32호
  • 기사입력 2003.03.14
  • 취재 이명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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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법학과 김민호 교수

전후 미국 화가들은 왜 추상표현주의를 선택하였나?

- 이데올로기와 그림, 그리고 법 -

Ⅰ. 프롤로그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를 넘어 이제 참여정부가 출범하였다. 어느덧 우리의 기억 속에는 먼 옛날 이야기가 되어 버렸지만 불과 20여년전 까지만 해도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인하여 미술가들이 고뇌하던 시절이 있었다. 실지로 ‘반고문전 전시탄압’ ‘호헌철폐 미술인 237인 선언’ ‘최민화의 이한열열사 부활도 탈취사건’ ‘통일전 출품작가에 국가보안법 적용’ ‘송만규 걸개그림 탈취사건’ 등 미술계 탄압사례들이 부지기수였다.
미술가 역시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회의 일원이므로 이들에게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무관심한 채 미의 창조만을 강요하기는 힘들다. 필자는 우연히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미술에 관한 글을 읽다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국 화단에서도 우리가 1980년대에 경험했던 고뇌의 시기가 있었다는 사실과 아이러니하게도 이로 인하여 오히려 추상표현주의가 당시 미국 화단을 풍미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우둔한 필자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전후 미국 화가들은 무엇 때문에 추상표현주의에 매료되었던가? 매료된 것이 아니라 강요된 것은 아닌가? 매료되었든 아니면 강요되었든, 당시의 정치적, 사회적 배경때문이었을 것이다. 또한 추상표현주의란 어떠한 예술 양식인가?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현행법상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표현한 미술작품과 관련하여 어떠한 법적 문제가 있을 수 있는가?

Ⅱ. 전후 미국 미술계의 사정

심각한 경제공황 속에서 미국 정부는 일자리 창출을 모색하였고, 이러한 정책의 일환으로 이른바 '연방예술사업'(Federal Art Project)을 전개한다. 예술가들을 대규모로 고용하여 벽화, 회화, 조각, 인쇄, 미술교육을 담당하게 했던 것이다. 이 때의 미술가들은 유럽의 아방가르드 양식보다는 미국적 정서 또는 사회주의 리얼리즘 양식을 추구했다.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는 고용인 신분이었다는 점을 상기해볼 때 어쩌면 이러한 현상은 당연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다른 분야의 지식인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미술가들 역시 마르크시즘에 한때 매료되었으나 소련의 정치적 불안과 스탈린의 야심적 행보로 인하여 마르크시즘에 대한 동경은 점차 환멸로 바뀌어 갔다. 그러나 미국의 또 다른 일부에서는 훗날 매카시즘을 탄생시킨 우파주의자들이 당시의 미술계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급기야 Art Project를 상설화하려는 법안이 의회에 제출되자 우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가담한 미술가들에 대하여 일제히 공세를 시작하였다. 공산주의자를 색출한 이른바 ‘빨갱이 사냥’에서도 미술가들은 자신의 정치적 신념에 대하여 조사를 받았고 공산당에 가입하지 않겠다는 선서를 강요받기도 하였다. 이러한 정치적 상황과 냉전의 심화로 인하여 좌파 지식인들은 마르크시즘을 거부하고 점차 탈정치화 경향을 띠게 된다. 미술계도 ‘자유롭고 진보적인 미술의 번영’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현대회화·조각가연맹’(Federation of Modern Painters and Sculptors)을 결성하면서 미술의 탈정치화를 선언한다. 그런데 비평가들은 당시 이 연맹의 결성에 무언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고 의심한다. 정부의 보조가 끊어진 상황에서 미술가들은 생존의 위협을 느꼈기 때문에 자신이 특정 정치집단으로 분류되어 매몰되는 것보다는 미술시장의 수요에 부응할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결국 리얼리즘을 포기하고 자신의 신념을 자신만이 이해하는 난해한 메시지로 전달하는 추상표현주의로 미국의 미술가들은 떠밀려갔다는 것이 비평가들의 주장이다. 다시 말해서 전후 추상표현주의가 미국의 미술계를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의 형식사적 우월성 때문이 아니라 ‘자유’와 ‘냉전’의 확실한 금긋기를 강요받던 미술가들이 추상표현주의의 보호막 속에 자신을 숨겨버린 것이다(이상의 내용은 “양희정, 냉전 이데올로기와 미국 미술계;1940년대 ‘추상표현주의’의 등장배경을 중심으로, 진보평론 2001년 여름호”를 많이 참조하였다).

Ⅲ. 추상표현주의

추상표현주의(abstract expressionism) 양식은 추상적인 요소와 표현적 요소를 모두 포함하고 있음을 특징으로 하는 미술 사조라고 필자는 이해하고 있다. 1929년 러시아 화가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가 미국에서 전시회를 열었는데 이 작품을 보고서 미술평론가 알프레드 바(Alfred Barr)가 "그 형식은 추상적이지만 내용은 표현적"이라고 평가한 데서 추상표현주의라는 용어가 유래되었다고 한다.
추상표현주의는 작가의 내적인 영감을 직관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점에서는 초현실주의와 유사하지만, 이미지의 형상화를 통하여 표현적 요소를 강조하였다는 점에서 양자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추상표현주의의 대표적인 화가로는 잭슨 폴록, 윌 렘 드쿠닝, 샘 프란시스, 프란츠 클라인, 마크 로드코, 클리포드 스틸 등이 있는데, 이들은 이른바 액션페인팅(Action Painting) 계열과 색-면추상(Color-Field Abstract) 계열로 나누어지면서 미세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액션페인팅은 그 용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action’ 즉 순간적인 행동(붓 놀림이나 물감의 분사 등)을 통하여 작가의 내면적 직감이 우연성의 이미지로 형상화되는 것을 추구한 미술양식이라 할 수 있다. 폴록과 드크닝 등이 주로 이러한 계열에 속하는 미술가들이다. 한편 색-면추상계열은 색과 면의 분할을 통하여 자신의 내면적 이미지를 형상화하려는 시도로 액션페인팅 계열에 비해서는 다소 기획적 요소를 강조하고 있다. 바넷 뉴먼(Barnet Newman), 마크 로스코(Mark Rothko) 등이 대표적인 화가에 속한다.

Ⅳ. 이데올로기와 그림, 그리고 법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나라에서도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소재로 한 리얼리즘 벽화나 걸개그림에 대하여 한때는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였던 적이 있었다. 현재도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표현한 그림에 대하여 법적 제재를 가할 수 있는 법령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국가보안법 제7조 제5항은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 또는 이에 동조하거나 국가변란을 선전·선동하려는 목적으로 문서·도화 기타의 표현물을 제작·수입·복사·소지·운반·반포·판매 또는 취득한 자는 그 각 항에 정한 형에 처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른바 이적표현물죄가 현행법상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국가보안법이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한 위헌법률이라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고, 또한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사를 제기한 적도 있었지만 어찌되었든 현재까지 이적표현물죄는 현행법상 범죄로 규정되어 있다. 다만, 이적성에 대한 판단의 범위가 과거에 비하여 상당히 완화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른바 ‘이적성’에 대한 기준이 명확히 설정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수사당국이 이적성을 문제삼아 형사소추를 한다면 미술가는 법원의 판단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필자는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우리나라의 미술가에게 허락된 창조의 영역은 어디까지 인가? 법학자 입장에서는 아마도 ‘음란성’과 ‘이적성’을 넘지 않는 범위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음란성’과 ‘이적성’이라는 것이 그 얼마나 애매하고 추상적인 것인가? 필자는 다른 글에서도 여러 차례 밝힌 것처럼 예술에 대해서는 전혀 문외한이다. 우둔한 필자이지만 그래도 예술이란 고도의 자유로운 사고 속에서 창조의 에너지가 분출되는 것이라는 것쯤은 이해하고 있다. 이 땅에 사는 예술인들이 정말 자유로움 속에서 마음껏 창조의 날갯짓을 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여건들이 성숙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글을 맺는다.


편집 | 스큐진 이명우 기자(imssi200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