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은 단순한 美의 표현이 아니라 知의 발현이다!

  • 34호
  • 기사입력 2003.04.14
  • 취재 이명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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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법학과 김민호 교수


-법 상징을 중심으로-

Ⅰ. 프롤로그

우리는 언젠가부터 저울을 들고 있는 정의의 여신상이 법을 상징하는 것으로 어떠한 의심도 없이 받아들이고 이다. 어느 한편으로 기울어져 있는 저울은 이미 저울로서 기능을 잃게 된다. 항상 균형을 맞추고 있어야 한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저울이 법과 정의를 상징하는 상질물이 되었으리라 짐작은 하면서도 그래도 저울이 법을 상징하게 된 때에는 무언가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에서 자료들을 찾아보았다. 최종고 선생의 ‘법상징학이란 무엇인가?(아카넷, 2000)’라는 책에서 필자의 이러한 의문은 거의 해소되었다.
왜 女神이 법과 정의를 상징하게 되었을까? 고대 이집트의 신화는 진리?질서?정의를 상징하는 마트(Ma\\'at)라는 여신이 있었고, 그리스 신화에는 질서와 계율의 상징으로 테미스(Themis)와 그의 딸 디케(Dike)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오늘날 정의의 여신의 일반적 형태로 자리잡은 저울을 든 여신의 형상적 모습은 고대 로마시대에 여신 디케를 기초로 하여 형상화한 유스티치아(Justitia)이다. 그녀는 칼과 저울을 들고 있다. 그러나 점차 칼은 사라지고 칼을 든 손에는 법전으로 대체된다. 로마의 에퀴타스(Aequitas) 여신상이 지금의 여신상과 가장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이다. 아마도 로마인들은 칼로 상징되는 계율의 통제보다는 형평을 법의 사명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처럼 법을 상징하는 일체의 유형, 무형의 자료를 분석하는 법학방법론을 법상징학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법상징학자들이 정의하고 있는 ‘상징’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최종고 교수는 상징(symbol)이란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직접적 설명을 뜻하는 개념(concept)과도 다르고, 구성원간의 약속을 신호화 또는 도형화한 기호(sign)와도 다르다고 설명한다.(최종고, 앞의 책, 16~19면) 어찌되었든 필자가 이해하기로는 ‘상징’이란 사회 구성원들간의 인식의 공유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러한 인식의 공유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질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누군가의 힘에 의해 유도되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예술사조로서의 상징주의(symbolism)에서는 ‘상징’의 의미를 ‘객관’의 반사적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러한 생각은 필자의 오류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Ⅱ. 상징주의(symbolism)

상징주의는 1880년대 파리를 중심으로 전개된 문학과 미술분야의 사조 중에 하나이다. 필자는 상징주의의 출현을 미술사의 혁명으로 평가한다. 물론 어느 미술사 자료를 찾아보아도 필자와 같은 정의를 한 것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미술사를 운운할 자격도 능력도 없는 법학자인 필자가 감히 상징주의를 이렇게 평가한 것일까?
상징주의가 출현하기 전까지의 미술은 ‘아름다움의 표현’이었다. 표현의 대상이 엄숙한 神의 영역이 아닌 사람냄새가 나는 르네상스, 다소 과장된 표현을 추구했던 바로크나 로코코, 화려한 색채를 통하여 역동적 이미지를 표현한 인상주의 등과 같이 상징주의 출현 전까지의 미술사조는 ‘미적 표현’의 형식적 차이를 나타낼 뿐이었다. 그러나 상징주의의 출현으로 미술은 그저 단순한 ‘美의 표현’이 아니라 미술가의 내면적 인식과 철학을 표현하는 ‘智의 발현’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으며, 이는 미술의 존재가치를 한 단계 격상시킨 혁명적 사건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상징주의자들은 인상주의가 표현할 수 없었던 인간의 내면적 인식의 상태와 정신적 세계를 시각화하려고 시도하였다. 상징주의 문학의 거두 보들레르(Baudelaire)는 ‘미술이란 눈을 만족시키는 것 이상으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환기력이 있는 예술이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물론 초기의 상징주의 화가들은 이러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상징의 형태와 문학적 또는 신화적 주제를 표현하는 정도에 그쳤다. 필자가 상징주의를 미술계의 혁명이라고 표현한 것은 상징주의의 출현을 계기로 이후 큐비즘, 포비즘, 표현주의, 그리고 오늘날의 포스트모던에 이르는 근대 및 현대미술의 방향을 설정하였다는 의미, 다시 말해서 인식과 사고의 대전환을 가져왔다는 것이지 상징주의가 근현대 미술을 대표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상징주의 미술의 대표적 화가로는 모로(Moreau), 샤반느(Chavanes), 르동(Redon) 등을 들 수 있다. 필자는 이들 중에 르동의 작품세계가 상징주의를 가장 잘 대변해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르동은 프랑스 보르도에서 출생하였고, 어릴적부터 심약하고 내성적 성격 탓에 어머니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유년시절을 보냈다. 15살이 되어서 수채화가 골란에게서 그림공부를 시작하였다. 그 후 판화가 브레댕과 식물학자 크라보 등을 만나 예술적 영감을 얻었고 렘브란트의 작품에 심취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는 당시를 풍미하던 인상주의의 외면적 현실묘사에 동조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을 위한 보이는 것의 논리’를 추구하면서 환상적이고 상징적인 표현의 기법을 탐구하였다. 대표적 작품으로는 ‘꿈 속에서’, ‘에드거 앨런 포우 에게’, ‘고야 예찬’, ‘성 앙투안의 유혹’ 등의 석판화집이 있다.(자료출처, 한국인터넷미술협회)
필자가 법상징학에서의 상징의 의미보다는 상징주의 예술사조에서의 상징의 의미에 더욱 관심을 가지는 까닭은 상징이란 타인이나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하여 강요된 인식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저 내면의 인식을 표현하고 그러나 보는 이들은 그러한 내면의 인식을 각자의 인식에 기초하여 해석하는, 다시 말해서 상징에 대한 각자의 인식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상징이라고 생각한다.
기왕에 법의 상징을 이야기 한 차에 이하에서는 우리나라에서 법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는 조형물들에 대해 소개하면서 글을 맺고자 한다.

Ⅲ. 법의 상징

1. 저울

대법원 청사 광장에 설치된 조형물이나, 성균관대학교 법과대학 현관에 설치된 조형물들은 저울을 형상화하고 있다. 저울의 의미는 어느 쪽에도 기울지 않는 ‘법의 형평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2. 정의의 여신상

대법원 대법정 입구 벽면, 사법연수원, 대한변호사협회 회관에 설치된 자유의 여신상이 아마도 법을 상징하는 가장 일반적인 조형물일 것이다. 변호사 협회 회관의 여신상은 오른손에는 저울을 높이 들고 있고 왼손에는 칼을 내려 짚고 있다. 눈을 감고있는 듯한데 아마도 깊은 명상을 하는 모습을 표현하고자 한 것으로 생각된다.
대법정 문 위의 여신상은 한 손에는 저울을 들고 다른 손에는 칼 대신 법전을 들고 앉아있는 모습이다. 특히 의상이 우리나라의 전통의상이라는 것이 특징적이다. 또한 얼굴도 서양의 여인이 아닌 한국인의 모습이다. 마치 불가에서 이야기하는 보살의 이미지 같은 느낌이다.

3. 해태상

서양의 정의의 여신상과 달리 동양에서는 법과 정의의 관계의 중요성이 잘 인식되지 않아서인지 법치주의보다 예치주의, 도덕규범을 더욱 중요시하였다. 그래서 동양에서는 서양에서와 같이 정의가 인격화된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동양의 정의의 상징은 해태(해치)이다. 중국에서 말하는 해태는 외뿔에 기린머리, 양의 발톱, 푸른 비늘과 두툼한 꼬리가 달린 환상적 짐승으로 옳고 그름의 곡직을 판별하여 사악한 자나 부정한 자에게 대들어 물어뜯는다 하여 법수(法獸)라고 불렀다. 중국의 ‘이물지(異物志)’라는 책에서는 해태가 사람들이 싸우는 것을 보면 반드시 그 사악한 쪽에 대들어 물어뜯는다고 되어있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초나라때부터 행정과 사법의 이상적인 상징으로 해태를 궁문이나 관문 앞에 세워두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해치부장이란 벼슬이 있었으며 어사의 별칭을 ‘해치’라 불렀다고 한다.(자료출처, 여수대학교 홈페이지 http://webserver.yosu.ac.kr)


글 | 법학과 김민호 교수
편집| 스큐진 이명우 기자(imssi200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