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키아의 낙서

  • 37호
  • 기사입력 2003.06.02
  • 취재 이명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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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프롤로그

미국 사회의 또 다른 단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 뉴욕의 브루클린. 울리 에델(Ulrich Edel)감독의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Last Exit To Brooklyn)’는 브루클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너무나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노동조합의 선전부장이면서 호모였던 해리와 창녀 트랄랄라의 힘겹고 우울한 삶은 브루클린의 칙칙함과 어우러져 보는 이로 하여금 허탈감마저 들게 만들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영화의 배경이 되었던 1950년대를 훌쩍 뛰어 넘어 1970년대 브루클린 그 곳에는 청년 바스키아가 있었다.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브루클린 거리와 지하철 벽면에 스프레이 낙서를 하던 장 미셀 바스키아. 27세의 어린 나이에 생을 마친 낙서쟁이 바스키아를 사람들은 왜 ‘검은 피카소’라 했을까? 공공장소에 그려진 낙서를 법적으로는 어떻게 이해하여야할 것인가?
바스키아의 짧은 생애와 그의 작품세계, 그리고 팝아트에 대한 이야기와, 타인 소유의 건물이나 공공장소에 낙서를 한 경우의 법적 책임 문제들에 대해 알아보자.

Ⅱ. 장 미셀 바스키아

바스키아는 1960년 뉴욕의 브루클린에서 태어났다. 후미진 뒷골목에서 다른 흑인아이들과 마찬가지로 그저 그렇게 어린 시절을 보내던 바스키아는 생활이 더욱 어려워져 어머니의 고향인 푸에르토리코로 이사를 가게 된다. 그러나 그는 예술적 감성과 뉴욕에 대한 향수를 이기지 못해 17세의 어린 나이에 무작정 가출을 하여 뉴욕 브루클린으로 돌아온다.
친구들과 어울려 뉴욕 거리의 후미진 담벼락과 지하철에 스프레이 낙서를 하면서 예술적 열정을 표출한다. 잠잘 곳도 작업실도 없었던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창작 작업이었던 것이다. “흔해 빠진 똥”이라는 뜻의 욕설인 ‘Same Old Shit’의 약어 SAMO를 자신의 예명으로 사용한 것을 보아도 당시의 바스키아는 뉴욕의 뒷골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낙서쟁이 흑인아이들의 정서를 그대로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리 저리 떠돌던 바스키아는 친구들의 도움으로 담벼락이 아닌 화폭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20살의 청년 바스키아는 그의 첫 그룹전에서 천재성을 인정받는다. 그 이듬해부터 바스키아는 “뉴욕 뉴 웨이브 展”, 독일의 “카셀 국제전” 등에 초대화가로 초청되었고, 이탈리아와 뉴욕에서 개인전을 갖는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한다. 1985년 2월 10일자 뉴욕 타임즈는 바스키아를 “흑인으로서 최초로 성공한 천재 아티스트, 검은 피카소”라고 극찬을 하였다. 그러나 그의 자유분방한 생활과 마약으로 27세의 어린 나이에 생을 마감한다.
바스키아의 작품세계는 팝아트의 일반적 경향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다만 미국 사회에서 흑인이 겪어야 하는 차별에 대한 저항이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행크 아론이나 루이 암스트롱과 같이 운동선수나 재즈 음악가 등으로 성공한 흑인 영웅들의 그림을 즐겨 그렸다는 점과 인체의 해부?만화 속의 주인공 등에 매료되었다는 점이 특이하다.

Ⅲ. 팝아트

Pop이라는 단어가 암시하고 있듯이 팝아트는 대중적이고 통속적인 것을 예술의 세계로 포용하려는 움직임을 일컫는 말이다. 팝아트는 현대산업사회의 속성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려하였기 때문에 기계적?대량적 생산양식과 찰라적이고 성적인 사회문화양식을 그 특징으로 한다. 팝아트의 거장 ‘워홀’은 피카소가 평생 4,000여점의 작품을 남겼다는 신문기사를 읽고, “나는 내 생산방식으로 단 하루면 그것들을 다 만들 수 있는데...”라고 독백하였다고 한다.(조이한, 위험한 그림의 미술사, 웅진닷컴, 2003, 256면) 이는 팝아트의 속성을 가장 적나라하게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워홀은 실지로 1달러짜리 지폐를 여러 장 붙여 만든 작품(192개의 1달러 지폐)이나 모나리자를 여러 개 붙여 만든 작품(Thirty are better than One)을 선보이기도 하였다. 일상의 상업적 소재들을 예술의 영역 속으로 편입함으로써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이라는 이분법적 구조를 깨고 예술을 특정 계급의 전유물이 아닌 대중적인 것으로 확대하려는 노력은 돋보이지만, 현대산업사회의 병폐를 비판하고 경고하려는 본래의 의도를 벗어나서 오히려 퇴폐적 소비문화에 무기력하게 순응해버린 것은 아닌가라는 비판도 있다.

Ⅳ. 낙서에 대한 법적 책임

필자가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매우 인상적으로 느낀 것은 거리의 모든 건물벽면에 약간의 빈 공간도 없이 온갖 스프레이 낙서가 그려져 있다는 것이었다. 건물주들은 낙서를 지워보았자 또 다시 낙서를 하기 때문에 아예 낙서를 지울 생각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뉴욕의 경우에는 이탈리아 정도는 아니지만 맨하탄의 할램이나 전철역의 담벼락에는 스프레이 낙서들이 많이 그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를 모방하여 후미진 벽면에 스프레이 낙서들이 그려져 있는 것을 종종 보게된다. 그것이 낙서인지 아니면 예술작품인지를 떠나서 타인 소유의 건물벽면이나 담벼락에 낙서를 하였다면 법적으로는 어떠한 책임이 발생할 수 있을까?
우선 형법적으로 어떠한 죄를 물을 수 있는 지에 대해서 알아보자. 형법 제366조는 “타인의 재물, 문서 또는 전자기록등 특수매체기록을 손괴 또는 은닉 기타 방법으로 기 효용을 해한 자는 3년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원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른바 재물손괴죄라는 것이다. 만약 벽면이나 담에 낙서를 하여 미관을 해친 것이 그 건물이나 담의 효용을 해하는 것으로 인정되면 재물손괴죄가 성립될 수 있다. 형법학자들은 자동차 타이어를 손상시키지 않고 다만 바람만 뺀 경우, 동물에게 사료를 주지 않아 굶어 죽게한 경우, 타인의 건물이나 담에 광고전단을 붙여서 미관을 해친 경우에도 재물손괴죄를 인정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타인소유의 건물이나 담벼락에 낙서를 하여 미관을 해한 경우에도 재물손괴죄가 성립되는 것으로 보아야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경범죄처벌법 제1조 제13호는 “다른 사람 또는 단체의 집이나 그 밖의 공작물에 함부로 광고물 등을 붙이거나 걸거나 또는 글씨나 그림을 쓰거나 그리거나 새기는 행위 등을 한 사람”을, 그리고 제20호는 “공원?명승지?유원지 그 밖의 녹지구역 또는 풍치구역에서 바위?나무 등에 글씨를 새기거나 하여 자연을 해친 사람”을 경범죄로 처벌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형법상 재물손괴죄가 되거나 만약 재물손괴에 까지는 해당하지 않더라도 경범죄는 성립한다는 것이다. 경범죄는 검사의 공소제기에 의한 형사소송법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경찰서장이 직접 벌금에 해당하는 금액의 납부를 명하는데 이를 “통고처분”이라고 하며, 이 때에 납부해야하는 금액을 “범칙금”이라고 한다.
다음은 민법상 책임문제를 알아보자. 민법적으로는 건물이나 담의 주인이 낙서를 한 자에게 직접 낙서를 지우고 원상태를 회복해 달라는 원상회복청구를 하거나, 원상회복에 필요한 비용이나 낙서로 인하여 건물의 가치가 하락한 만큼의 금전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청구에 대하여 낙서를 한자가 그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에는 민사소송을 통하여 구제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글 | 법학과 김민호 교수
편집 | 스큐진 이명우 기자(imssi200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