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절차둘러보기 - 첫번째 이야기

  • 45호
  • 기사입력 2003.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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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어디 누구 아는 사람 없나


오늘날 어느 누구도 자신이 형사사건과 무관하다고 단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회사의 대표이사라도 뜻하지 않게 부도사태를 맞게 되면 하루아침에 부정수표단속법위반사범으로 몰릴 수 있습니다. 매일같이 벌어지는 수많은 교통사고도 형사사건으로 비화될 수 있습니다. 예기치 않게 가족이나 친척 혹은 이웃 중에 누군가가 형사사건의 혐의를 받고 경찰서나 검찰에 불려갈 수도 있습니다.

일단 이러한 일들이 벌어지면, 그가 진정 유죄이냐 무죄이냐 와는 상관없이 본인이나 그 가족 전체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게 됩니다. 아무리 세월이 좋아졌다고 하여도,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졌다고 해도, 경찰에서 혹은 검찰에서 진실을 확연히 밝혀 주리라고는 쉽게 기대할 수가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경찰이 그를 구속이라도 하는 날이면, 이제 그의 온 가족은 청천벽력이라도 떨어진 듯 충격에 휩싸이게 됩니다. 구속이 유죄판결인 것으로 착각하여 이제 전과자가 되었다고 속단하기도 하고,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을 되뇌이며 분별력을 잃고 억울함을 곳곳에 하소연하기도 합니다.
도대체 어떤 행위가 형사사건으로서 형사절차에서 처리되며, 형사사건에 연루되면 그 자신 혹은 그의 가족들이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는가에 대해 일반시민은 거의 아는 바가 없습니다. 무턱대고 아는 줄을 찾아 매달리는 일은 장려할 바가 못됩니다. 이로 인해 또 다른 억울한 자가 나올 것이며, 우리 사회를 비리의 온상으로 만들었던 그런 일을 우리가 또 다시 저지르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Ⅱ. 범죄와 형벌

우선 형사사건이 될 수 있으려면 문제의 행위가 국민의 대의기구인 국회를 통과한 법률(형법)에 '형벌'부과의 대상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형법 제41조에서 형벌로 규정되어 있는 형사제재로는 사형, 징역, 금고, 자격상실, 자격정지, 벌금, 구류, 과료, 몰수 등 9가지의 종류가 있는데, 이 중의 어느 하나 혹은 둘 이상의 형벌종류로 처벌되는 대상만이 범죄가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9가지의 형벌외의 국가제재수단이 부과되어 있는 행위는 범죄가 아니므로 형사사건으로 처리되지 않습니다.

예컨대 손해배상이나 과태료등은 그 액수가 벌금액 보다 훨씬 많더라도 범죄행위에 대해 부과되는 형사제재수단이 아닙니다.
범죄와 그에 대해 형벌이 부과되는 메카니즘에서 반드시 지켜져야 할 철칙이 있습니다. 어떤 행위가 범죄가 되기 위해서는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는 행위유형과 그에 대해 부과될 수 있는 형벌의 종류 및 범위가 그 행위의 발생전에 미리 '성문의 법률'로써 규정되어 있어야 합니다(성문법원칙). 따라서 어떤 행위후에 그 행위에 대해 형벌을 부과하는 법률을 새로 만드는 것은 소급입법이 되어서 당해 사건에 적용할 수 없습니다(소급금지원칙).

다시 말해 형법은 형법이 만들어진 이후의 행위만을 규율대상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범죄와 형벌을 규정하고 있는 형법은 누구나 그 처벌의 범위를 예견할 수 있도록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어야 하고(명확성원칙), 그 형법의 규율대상이 되는 사실관계와 유사한 사실관계를 내용으로 하는 사건에 대해 그 형법규정을 적용하는 것이 행위자에게 불리한 경우에는 그 형법규정을 적용해서는 안됩니다(유추금지원칙). 더 나아가 형벌의 양도 그 범죄의 중요성을 고려하여 적정범위내에서 부과될 수 있어야 하므로 과도한 형벌을 규정한 형법도 형법으로서 적용될 수 없습니다(적정성의 원칙). 이와 같이 범죄여부에 대한 판단 및 형벌법규의 적용과 관련한 몇가지 원칙은 오늘날 '죄형법정주의'라고 불리고 있으며 근대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형법적용의 대원칙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Ⅲ. 형사절차 스케치

형사절차는 형법에 형벌부과의 대상이 되어 있는 행위가 행해진 경우에만 개시될 수 있습니다. 형사절차에서는 실제로 행해진 어떤 행위가 형법에 규정된 범죄의 성립요건을 충족시키는지, 누가 그 범행의 진범인지를 밝히게 됩니다. 예컨대 어떤 행위자가 타인을 구타하여 상해를 입힌 경우에 그 행위자를 상대로 치료비 등 물적인 피해변상을 구하는 절차를 민사절차를 통해 진행할 수도 있지만, 형사절차는 민사절차와는 별도로 국가에 대해 그 행위자를 처벌할 수 있는지 여부를 검토하는 절차입니다.

형사절차는 크게 경찰 또는 검찰의 '수사'와 검찰의 '공소제기' 그리고 법원에서 진행되는 '형사재판'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수사기관인 경찰이나 검찰이 범인으로 지목된 자가 실제로 범인임을 증명할 수 있는 물적 인적 자료를 모아서 재판에 회부하면(공소제기), 법원이라는 재판기관에서 이에 대한 사실확정을 한 뒤, 그 사실이 형법상의 범죄를 구성하는가를 검토하여 형벌을 부과합니다.

중요한 살인사건이나 공안사건 혹은 대형금융비리 혹은 정치적 사건 등의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일상적인 형사사건에 대해서는 검찰이 아닌 경찰이 먼저 수사에 착수합니다. 경찰이 수사에 착수하게 되는 수사의 단서는 매우 다양합니다. 범인의 자수, 현행법의 체포, 목격자의 신고나 제보, 피해자의 고소·고발, 신문의 보도, 풍문이나 소문, 변사체의 발견, 경찰의 내사 등에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이 중에 수사의 개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시민의 신고 및 고소·고발입니다.

경찰이 범죄사건을 수리하고 본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하였을 경우에는 범죄사실과 범죄혐의를 받고 있는 사람을 경찰내부의 범죄사건 접수부에 올리게 되는데(booking)하게 되는데, 이를 실무상 '입건(立件)'이라고 합니다. 이때부터 단순한 용의자 내지 혐의자는 '피의자'로 불리게 됩니다. 입건된 피의자에 대해서는 피의자를 포함한 관계자를 조사하고 증거를 수집하고, 도주중 이거나 행방을 감춘 피의자를 찾아내는 등 피의자의 신변을 확보하는 것이 수사의 핵심입니다.

경찰이 수사를 종결하게 되면 반드시 수사기록과 증거물일체를 수사지휘권자인 검찰청의 검사에게 보내야 합니다. 이를 실무상 '송치(送致)'라고 합니다. 경찰이 사건을 검찰청에 송치할 때에는 수사결과에 대한 (기소 또는 불기소 등) 경찰의 의견을 첨부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검찰도 수사의 단서가 있으면 독자적으로 수사에 착수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형사사건에서 검찰은 경찰에 대해 수사지휘권을 행사하는데 그칩니다. 특히 피의자의 구속여부, 사건의 송치에 대해서는 반드시 검사의 지휘를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최근 경찰이 검사의 지휘를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수사를 진행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려는 노력이 '경찰수사독립권논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수사결과 범죄혐의가 인정되고 증거가 충분하며 처벌의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검사는 피의자를 제1심 법원에 공판청구, 즉 공소제기를 하게 되는데, 이를 '기소(起訴)'라고 합니다. 피의자를 기소할 수 있는 권한은 검사가 독점하고 있습니다. 이를 '기소독점주의'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검찰기소독점주의의 예외로서 10만원의 이하의 벌금 및 구류사건에 대해 즉결심판을 청구할 수 있는 권한이 경찰서장에게 부여되어 있습니다. 이외의 사건에서는 검사가 독자적으로 수사한 사건이나 경찰로부터 송치받은 사건을 수사한 결과 기소결정을 내릴 수도 있고, 기소를 하지 않는다는 불기소결정을 내릴 수도 있습니다.

불기소결정에는 '죄가 안됨', '무혐의', '공소권없음', '기소유예', '기소중지' 등의 결정이 있는데, 특히 '기소유예'란 범죄는 성립되고 증거도 충분하나 정상을 참작하여 기소를 보류하는 처분이고, '기소중지'는 피의자가 검거되지 않거나 중요한 참고인의 소환이 되지 않아 수사를 계속할 수 없는 경우에 수사를 일시 중지하는 잠정적인 처분을 말합니다. 우리나라의 검찰은 특히 범죄혐의가 인정되는 사건에 대해서도 기소하지 않을 수 있는 재량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많은 정치적 영향을 받아 독립적인 검찰권을 행사하지 못한 전례가 많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기소유예제도를 근간으로 하는 기소편의주의의 폐단을 비판하면서 그 대신에 범죄혐의가 있으면 원칙적으로 반드시 기소를 하여야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독일과 같은 유럽국가처럼 기소법정주의를 채택하자는 견해도 나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형사재판은 검사의 기소가 있어야 비로소 시작됩니다. 이때부터 피의자는 피고인(被告人)으로 불리게 되며 검사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변호인선임권, 증거신청권 등 형사소송법이 부여하고 있는 각종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형사재판은 검사에 의해 기소된 범죄사실을 중심으로 하여 피고인의 유죄를 증명하려는 검사의 공격과 이에 자신을 방어하려는 피고인 및 그가 선임한 변호인의 방어가 이루어지는 공개된 법정에서 구두로 이루어지는 공판절차가 원칙입니다. 이때 법원의 법관은 중립적인 위치에서 심판관처럼 재판을 주재해 나갑니다. 이 과정에서 증거조사, 현장검증, 감정 등이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검사가 기소하면서 처음부터 벌금형이나 과료 등 재산형이 예상되는 경우에 공개된 재판없이 서류상으로만 재판할 것을 법원에 청구할 수 있는데 이를 '약식재판'이라고 합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검사가 기소한 사건의 대부분은 피고인이 유죄를 인정하는 경우인데, 피고인이 공판절차에서 유죄임을 인정하면 여러 가지 복잡한 절차가 생략된 채 절차가 진행되는데 이를 '간이공판절차'라고 합니다. 따라서 현실의 형사재판에서 유·무죄의 공방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예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법정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는 것과 같은 극적인 장면을 우리나라의 형사재판에서 보기란 매우 드문 것입니다.

재판이 종결되면 법원의 판결이 있게 됩니다. 판결은 유죄의 판결, 무죄의 판결로 대별되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소송조건이 갖추어지지 못한 것이 밝혀진 때 등에는 공소기각의 판결이 내려질 경우도 있습니다. 유죄판결을 하는 경우에도 법관은 정상을 참작하여 집행유예, 선고유예, 벌금형의 선고로 피고인을 석방시키는 조치를 할 수도 있습니다. 법관의 판결에 대해서는 피고인이 상급법원에 상소할 수 있습니다. 제2심법원에 대해 하는 상소를 항소(抗訴)라고 하며, 대법원에 대해 하는 상소를 상고(上告)라고 합니다. 상소가 없거나 상소했어도 상급법원이 이를 기각한 경우에 형이 확정되었다고 합니다.

재판결과 피고인이 무죄판결을 받은 경우에는 국가에 대해 형사보상청구나 국가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유죄판결을 받게 되면 선고된 형벌이 집행되는데, 형의 집행은 법원이 아니라 법무부에서 담당합니다. 유죄판결을 받은 자는 전과자가 되지만, 형의 실효에 관한 법률에 의하여 3년을 초과하는 징역 또는 금고는 10년, 3년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는 5년, 벌금은 2년, 구류나 과료는 형의 집행을 종료하거나 그 집행이 면제된 즉시 전과기록에서 말소되게 됩니다.

-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

글| 법과대학 김성돈 교수
편집| 스큐진 이명우 기자(imssi200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