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절차둘러보기 - 두번째 이야기

  • 45호
  • 기사입력 2003.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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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김성돈

Ⅰ. 동성애: 성지향성

어떤 법제도도 그 시대와 그 사회의 가치와 의식을 뛰어넘을 수 없습니다. 무신론자가 극형에 처해졌고, 거지가 범죄자로 취급받았으며 게으름을 이유로 사형이 선고된 시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법은 무신론자나 거지 혹은 게으름 피우는 자에 대해 더 이상 억압과 금기의 칼을 들이대지 않습니다. 최근에 우리는 우리 사회의 가치와 의식변화에 따른 법의 태도 변화를 '동성애'의 예에서 목도할 수 있습니다.

동성애자란 자신과 같은 성의 사람에게 정서적으로나 성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끌리는 성 지향성을 지닌 사람들을 말합니다. 반대로 이성애자는 자신의 성과는 반대되는 성의 사람에게 끌리는 성 지향성(sexual orientation)을 가진 사람들을 뜻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성 지향성의 결정요인과 관련해서는 유전이나 생물학적 요인에 의해 선천적으로 타고난다고 설명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개인이 자라난 환경적 요인에 의해 후천적으로 형성된다고 설명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혹자는 이 두 요소의 상호작용설을 주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느 태도든 정설로 굳어진 것은 없습니다. 다만, 개인의 성 지향성은 아주 어릴 때 자신도 인식하기 전에 확립된다고 보고 있고, 개인의 의지나 선택과는 상관없이 주어지는 것이라고 보는 태도가 일반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Ⅱ. 동성애: 관용에서 억압으로

사회학적으로 억압적 의미에서 고안된 동성애란 말이 생겨 난 것은 19세기 후반의 일이라고 합니다. 그 이전에는 동성애와 이성애는 현재처럼 완전히 분리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성애와 동성애는 모두 에로스라 통칭되었으며, 일부 시대와 사회에서 동성애적 행위에 대한 제재가 있었다면 그것은 그 사회가 총체적으로 성애적 행위를 억압하는 가운데 포함된 부분이었습니다(중세 기독교 사회). 따라서 19세기 이전의 사회에서는 동성애에 대해 관용적 분위기가 지배적이었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회에서는 동성애는 성인이 되기 위한 필수 조건(뉴기니의 부족)이나 특권으로 받아들여 지기도 했습니다. 사회적으로 자신이 살고자하는 성(젠더)의 선택도 자유롭기도 했습니다(아메리카 인디언 버다취). 그리이스 시대의 동성애는 너무 보편적 현상이라 따로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입니다. 어떤 정치 지도자는 자신의 동성애 상대에게 충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편추방 되기도 했으며, 소크라테스의 투옥도 그를 짝사랑한 어느 정치지도자의 음모란 견해도 있습니다. 동양에서도 아주 많은 고전 문학 작품과 민담등에서 아주 자연스러운 행위로서 동성애는 등장합니다. 홍명희의 대하소설 '임꺽정' 심지어 박지원의 '열하일기'에도 동성애적 행위는 비난과 억압의 대상으로 다루어지고 있지 않습니다.

동성애에 대한 본격적인 억압이 시작되었던 19세기는 성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던 시기입니다. 특히 성적 소수 집단에 대한 연구가 많이 이루어졌으며, 이 연구들의 목적은 그러한 성향들이 비정상(혹은 정신병자)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일과 그들에 대한 치료였습니다(물론 1973년 미국 정신과 의사협회를 필두로, 오늘날 모든 사회에서는 더 이상 동성애를 정신질환으로 분류하진 않고 있습니다). 19세기에 시작된 산업화와 자본주의체제의 등장 역시 동성애 억압을 더욱 가속화하는 기제였습니다. 산업화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력의 가장 확실한 공급원이자, 교육장인 가족제도에 대한 암적 존재로 동성애자를 파악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지배논리의 가장 손쉬운 교육장인, 가족제도가 흔들리면 자본주의 사회와 산업화 사회는 그 근본이 흔들린다는 인식에서 출발합니다.

물론 당시에도 그리고 그 이후에도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에 저항하는 움직임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특히 60년대 노동자 운동이 활발해진 시대 상황을 기반으로 미국에서는 동성애자들의 집단적 항거인 스톤월항쟁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터지게 되었고, 이를 기점으로 동성애자 인권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이후부터는 동성애자들의 투쟁의 열기도 수그러들었으며, 동성애 진영은 분리주의와 낙관론 속에서 문화·경제 운동으로 방향전환을 모색하였습니다. 그러나 1980년대 레이건/대처로 대표되는 신보수주의는 동성애자들을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의 주범으로 몰면서 다시 탄압을 시작하였고, 여기에 위기를 겪은 많은 나라의 동성애자들은 집단적 행동을 취하면서 본격적인 인권운동을 전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Ⅲ. 동성애: 차별과 차이의 사이에서

오늘날 동성애자들은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는 세상'의 도래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고, 그에 따라 많은 성과물을 얻어내고 있습니다. 캐나다 정부는 지난 6월 17일 각료 회의를 열어 수 개월 내로 하원의 의결을 거쳐 동성 간 결혼을 합법화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에 앞서 캐나다의 온타리오주 법원은 지난 10일 동성간의 결혼을 금지하는 현 연방혼인법은 위헌이라고 판결했고, 오타와의 항소법원도 동성간 결혼을 법적으로 인정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동성간의 혼인권을 인정하는 국가는 네덜란드와 벨기에에 이어 동성간 혼인권을 인정하는 3번째 국가가 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미국의 연방대법원은 최근 동성간 성행위를 처벌하도록 한 텍사주의 '소도미'(Sodomy)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렸습니다. 6월 28일에는 '게이 퍼레이드'가 유럽 주요 도시에서 펼쳐졌고, 이 퍼레이드는 특히 차별 철폐를 요구하는 정치적 시위의 성격이 두드러졌으며 동성애자 차별금지법의 조속한 제정, 동성애 혐오행위를 범죄로 규정하는 법률을 제정할 것의 요구 및 동성애자에게 부모가 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기 위한 헌법적 조치 등을 촉구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동성애자들을 인정하기 위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90년대 이후 많은 변화를 겪어오면서 민주적인 절차들이 중요시되었고, 다양한 의견들과 생각들이 나름의 가치를 인정 받아가고 있습니다. 인권이라는 개념은 보다 보편적 개념이 되었고 어느 누구도 보편적 개념의 인권을 침해 받아서는 안된다는 생각들이 자리잡아가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서울에서 한국최초의 동성애 영화축제인 '퀴어영화제(Queer Film & Video Festival)'라는 것이 열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몇년 전부터 여러 대학캠퍼스에서는 동성애 써클이 생겨났고, 통신을 통해 동성애 소식지 배포는 물론이고 동성애 잡지 '버디(BUDDY)'도 발행되고 있습니다. 캠퍼스끼리 연합활동이 전개되고 있어서 해마다 '성축제'라는 것도 열리고 있고, 국제적인 연대를 도모한다고도 합니다. 그리고 일부 텔레비전 드라마나 PD수첩 등에서도 이를 공적으로 다루는 등, 미처 동성애에 대한 도덕적 사회적 논란을 그칠 겨를도 없이 젊은이들 사이에는 새로운 형태의 성문화로 인식되고 있는 형편입니다. 2001년 4월 제정된 국가인권위법 제31조에서는 “성적지향을 이유로 차별해선 안 된다”고 명시하기까지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성적소수자들의 존재를 왜곡시키고 비하하고 있는 현상은 여전히 존재하고, 동성애자들에 대한 법적인 차별은 온존하고 있습니다. 국가는 청소년보호법과 정보통신윤리위원회법에 따라 동성애자들의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던 인터넷 사이트 '엑스존'도 유해매체물로 판정되었고 그 외 수많은 커뮤니티가 폐쇄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커밍아웃한 동성애자들은 직장에서 해고됐으며, 이성애와 가부장적인 결혼을 강요하는 한국의 가족제도 역시 성적소수자들의 존재를 배제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현행 호주제도는 가부장주의를 유지·강화시킬 뿐만 아니라 가족법에 근거하는 가족을 구성할 수 없는 많은 사회구성원들에게 차별적 불이익을 주고 있습니다. 동성애자는 실질적으로 삶의 반려자라 하더라도 어떤 종류의 사회적·법적 복지를 얻어낼 수가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Ⅳ. 동성애: 차별없는 법의 태도

어떤 행위자의 행위에 대해 법적인 비난을 가할 경우에는 그 행위가 그 행위자의 의지나 선택의 결과일 때에만 그럴 수 있다는 것이 근대법의 근간으로 확립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인간에게는 - 실제로 입증된 것은 아니지만 - 자신의 행위를 선택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자유(의사자유)가 있다는 '가정'하에 그 자유를 남용하였음을 이유로 법적으로 책임을 부여하고 법적인 비난을 가하는 근거로 삼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각도에서 보면 동성애자들의 의지나 선택의 결과가 아닌 동성애 자체에 대해서 법적인 비난을 가하거나 억압을 가하는 것은 분명히 이성적인 태도가 아니라고 할 것입니다. 동성애자들이 성적 소수자로서 그들의 권리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다음과 같은 법적 조치가 먼저 취해져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첫째, 동성간의 혼인이 합법화되어야 합니다. 이성애 제도에 입각한 가족 제도만이 불변의 절대적인 제도라는 견해는 다양성을 생명으로 하는 현대 사회에서 모든 사회 구성원을 포용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 한계의 극복을 위해서는 동성애 가족제도도 인정하여야 할 것입니다. 동성간의 혼인권의 인정을 위해서 우리나라에서는 먼저 헌법을 개정해야 할 것입니다. 헌법 제36조에 의하면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라고 되어 있으므로, 우리나라의 혼인과 가족생활에 '동성'의 혼인이 드러설 여지는 봉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이성애중심 가족제도로 인해 고통 받아 온 한국 동성애자들에게 혼인할 권리가 인정되기 전에도 먼저 호주제가 폐지됨으로써 현 가족제도의 폐단이 시정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호주제 폐지 이후의 대안으로‘개인별 신분등록제’가 도입이 바람직한 대안으로 생각됩니다.

셋째, 동성애 사이트인 엑스존을 청소년들에게 유해한 매체라고 결정 내리도록 만든 청소년보호법이 개정되어야 합니다. 이에 따라 청소년 동성애자들이 자신의 삶의 방향과 정체성에 관한 정보들을 얻을 수 있는 인터넷 공간이 합법화되어야 합니다. 현재의 청소년보호법과 교육 현장은 청소년 동성애자들의 성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성장을 막고 학교 부적응자로 만들어 학교 밖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청소년 동성애자들이 성매매의 유혹에 내몰리지 말고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보해 나갈 수 있도록 국가가 도움을 줄 수 있는 복지국가적 정책을 내놓아야 할 것입니다.

Ⅴ. 동성애: 차이를 인정하되 차별하지 말기

동성애자들을 단지 소수자라는 이유만 가지고 차별과 무시로 일관하던 시절은 지나가고 있습니다. 최근 프랑스의 르 몽드지가 발표한 여론조사의 결과에 의하면 자녀가 동성애자임을 알았을 때 이를 인정하는 비율이 지난 95년에는 41%에서 이번 조사에서는 61%로 증가했고, 자녀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에 대해 거부 반응을 일으킬 것이라는 응답은 56%에서 36%로 감소하는 등 동성애를 용인하는 경향이 증대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동성애가 그 개인의 의지나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고 한다면, 그에 대한 법적인 대응에서 동성애자들을 비난하거나 불이익을 주어서는 안됩니다. 법제도가 인간의 본성 및 인간의 행동의 본질과 불일치되게 만들어진다면, 그것은 이미 인간의 법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는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들에게 결혼할 권리, 아이를 입양할 권리, 양육할 권리를 인정해주지 않으면서, 한편으론 성소수자들이 결혼하거나 아이를 낳아 키우지 않는다는 이유로 차별합니다. 또한 법이 결혼을 국민의 의무로 규정하고 있지 않는데도 비혼을 택한 남녀에겐‘일탈’낙인이 찍힙니다. 비혼모와 그 자녀는 대한민국 국민이라기보다는 죄인에 가까운 취급을 받습니다. 또한 가족 단위로 편성된 복지제도는 정작 인권의 사각지대에 있는 다양한 가족들, 소수자들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동성애는 이성애와 성지향성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므로 법적인 차별을 두어서는 안됩니다. 우리 사회가 다양한 가치를 인정하는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동성애자들에게 진정한 의미의 인권을 보장하고, 현실적인 법적 권리를 부여해야 할 것입니다. 동성애자간의 혼인을 허용하더라도 가족제도의 붕괴가 초래되지도 않을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다수의 이성애자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글 | 법과대학 김성돈 교수
편집 | 스큐진 이명우 기자(imssi200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