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과 성의식

  • 54호
  • 기사입력 2004.02.20
  • 취재 이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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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법학과 김성돈 교수]
최근 서울행정법원의 판결하나가 성희롱에 관한 사회적 논란의 불을 당기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학교 회식자리에서 교감이 여교사에게 술을 따라 드리라고 강요한 데서 일어났다고 한다. 이에 대해 서울행정법원은 '교감이 회식자리에서 건배를 제의한 교장의 잔에 술을 따르라고 여교사를 강권한 것은 사회통념상 용인되는 행위로서 성희롱이 아니다'라는 취지의 판결을 하였고, 이 판결에 대해 전교조와 여성단체들은 종래 피해자의 주관적 관점을 중시해 온 성희롱판단의 관행과 상치된다고 하면서 '남성중심의 어처구니 없는 판결'이라고 비판·강력 대응할 것을 선언하고 나섰다. 특히 2001년 4월 여성부가 고시하고 있는 남녀차별금지기준 제17조 제2호에서는 성희롱의 대표적 유형의 하나로서 '회식자리 등에서 술을 따르도록 강요하는 행위 등'으로 명시되어 있어서 이 판결에 대한 사회적 파장에 대한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성희롱문제에 관한 한 1993년 서울대 모교수의 성희롱사건을 빼놓고 이야기 할 수 없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성희롱의 문제성이 본격적으로 공론화되었기 때문이다. 성희롱사건의 진원지가 대학인 명성에 걸맞게 대학은 여전히 성희롱사건의 다발지역으로 그 악명을 잃지 않지 않고 있지만, 성희롱에 대한 사회적 시각은 그간 가히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무색할 만큼 변모하였다고 할 수 있다. 성희롱 시비는 사회 곳곳에서 끊이지 않고 있고, 이에 따라 성희롱을 금지하고 성희롱피해자를 구제하는 법률들이 속속 입안되어 시행되었다. 법률의 규정으로 직장이나 공공기관에서 성희롱예방교육을 실시하지 않으면 500만원이하의 과태료처분을 받을 수도 있다. 양성평등 후발주자였던 우리사회에서 성희롱에 관한 문제는 더 이상 희화화되지 않은 지 오래다.

무엇보다도 남녀차별금지및구제등에관한법률 제7조 제3항에서는 '성희롱은 남녀차별로 본다'라는 규정을 두고 있는데, 이는 성희롱의 문제를 양성평등의 실현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 양성평등이 법제도의 차원에서 실현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처는 행위무능력자로서 처의 재산에 대한 권리도 남편에게 있었고, 아내의 부정행위만 간통죄로 처벌되었다. 오랫동안 남성중심사회에서 여성은 남성에 비해 신체적, 정신적 약자 또는 열등한 자로서 육아와 가사노동에 적합한 자로서의 특질을 가지는 것으로 사회적으로 인식되어 왔다. 이러한 특질 때문에 여성은 고용이나 정치부문과 같은 사회적 영역에서 열등성과 부적합성을 보이는 존재로 취급되어 왔으며 이에 따라 남녀차별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어 왔고 기껏해야 온정의 대상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고용 기타 다양한 사회영역에 여성의 참여가 늘어나면서 여성의 역할과 능력에 대한 가치관과 남녀간의 역학관계가 변화되어 갔고 이에 따라 종래의 여성특질론에 대한 수정이 급격하게 요구되었다. 그것은 종래의 "남성은 일, 여성은 가정", "남성은 가족부양책임, 여성은 피부양자" 등과 같이 집약적으로 표현되는 전통적 성별역할론에 대한 수정이었다. 이러한 수정은 종래의 성별역할론이 가부장적 자본주의체제하에서 가정내의 남녀위계화를 초래할 뿐 아니라 고용, 정치, 정책 기타 사회적, 공적 영역에서 여성의 참여를 저해하고 여성의 주변화, 과소대표성, 소외를 초래한다는 경험과 인식이 확산에 기인한다. 특히 노동시장에서 성별역할분업관은 고용기회와 직무와 직급, 직종, 임금을 남녀로 분리시켜서 남녀간의 위계질서를 형성하며, 여성으로 하여금 강제적 또는 자발적으로 조기퇴직하게 하거나 시간제, 임시직, 하위직 등 주변적 노동에 머물게 하여 고용상의 성차별을 받게 하는 주요한 요인이 된다는 비판이 많이 제기되었다. 그러다가 1980년대에 들어서서는 민주화운동과 진보적 여성운동의 영향력하에서 여성인력에 대한 사회인식의 변화와 수요가 증대하는 한편, 국제사회의 여성인권존중추세에 영향을 받으면서 남녀차별과 폭력을 철폐하여 여성인권을 실현하기 위한 법제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크게 발전하였다.

성희롱은 이러한 사회의 변화과정에 적응하지 못한 가부장적 남성들이 과거의 박제화된 된 성의식을 버리지 못해 생겨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가정에서 아니면 퇴근 후 술집에서 여성을 만나는 경험밖에 하지 못한 남성들은 공적영역에서 만나는 여성을 사적영역의 연장선상에서 대하기가 일쑤였다. 공적영역에서 여성을 부하직원이나 동료 혹은 친구로서 관계 맺어 본 경험이 없는 남성들이 여성을 언제나 '여자'로만 대하는 결과 보이는 양태가 바로 성희롱인 것이다. '너는 내타입이야', '술을 따르라, 애교를 부려라' 등등 여성에 대한 사회적 고정관념을 버리지 못한 남성들에 쉽게 주어지는 타이틀이 성희롱가해자이다. 자신의 행위에 대한 의미도 모르고 악의도 없지만 그냥 '귀여워서' '허물없이 친한 사이니까' '누이동생 같아서', '우리직장의 꽃이다'는 등등의 동상이몽의 꿈이 양산하는 잘못된 의사소통구조가 우리 사회의 수많은 성희롱피해자를 양산하고 있다.

성희롱과 관련한 우리나라의 법에서 성희롱이란 '업무, 고용 기타 관계에서 공공기관의 종사자,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그 지위를 이용하거나 업무 등과 관련하여 성적 언동 등으로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거나 성적 언동 기타 요구 등에 대한 불응을 이유로 고용상의 불이익을 주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성희롱은 여성이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법상 남성간 혹은 여성간에는 성희롱이 인정되지 않고, 직장내 혹은 업무연관성이 없는 사적 관계에서도 성희롱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희롱은 상대방이 원하지 않고 굴욕감이나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성적 언동을 함으로써 상대방의 정신적, 신체적, 심리적 위축과 피해를 초래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점과 피해자가 실제로 대부분 여성이라는 점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성희롱은 성폭력과는 구별되는 개념이다. 성폭력이라 함은 형법에 규정되어 있는 성범죄유형(대표적으로 강간죄와 강제추행죄)과 성폭력범죄의처벌및피해자보호등특별법에 의해 새롭게 성폭력 범죄로 규정된 유형을 지칭하는 개념이다. 성희롱과 성폭력은 ▲ 행위와 피해의 정도에 있어 성폭력이 성희롱보다 비교적 심하다는 점, ▲ 성폭력은 성폭력특별법에서 범죄행위로서 수사와 처벌의 대상이 되는 반면 성희롱은 남녀차별관련법에서 남녀차별로 규제되고 형벌부과의 대상은 되지 않고 있는 점, ▲ 성폭력은 성희롱보다 성립요건이 구체적이고 엄격하게 규정되어 있다는 점 등에서 차이가 있다. 그러나 직장내에서 사업주가 성희롱예방교육을 실시하지 않거나, 성희롱가해자에 대해 응분의 조치를 취하지 않거나 성희롱피해자에 고용상의 불이익한 조치를 취하는 경우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해당하는 범죄행위로 인정되고 있다.

성희롱성희롱을 남녀차별로 보는 것은 성희롱이 특정 성 특히 여성을 주된 대상으로 하여 발생하며 성적인 언동을 하여 그 수용을 거부하면 불이익을 주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특히 직장내 성희롱의 경우는 특정 성에게 노동력과는 상관없는 성적인 언동의 수용을 요구하고 그 수용여부로써 여성의 채용이나 대우를 결정하는 기준으로 삼고 성적 굴욕감을 주는 성적 언동으로 여성의 존엄과 근무의욕 기타 고용환경을 해치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로 고용에 있어서의 성희롱은 남녀간에 불평등하고 불균형한 위계구조나 인원수의 차이에서 초래되고 그러한 관계를 지속시킨다. 남성위주의 가부장적 의식구조가 온존하고 있고, 현실의 불평등이 곳곳에서 게릴라처럼 준동하는 전장에서 여성들은 차이는 인정하되 차별에는 과감하게 맞서야 한다.

어느 여성학자는 '남성은 사람이기 때문에 모든 남성명사에는 인(人)이 붙지만, 우리말 여성형 지칭에서 유일하게 인(人)자가 붙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미망인(未亡人), 즉 남편을 따라 죽지 않은 여자'를 부르는 경우 뿐임을 신랄하게 비꼬고 있다. 여성에게 절대로 불평등한 호주제를 폐지하는 법안이 국회에 상정되었지만 남성위주의 우리 국회는 아직 심의조차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법제도는 자연 내지 사물의 본성을 있는 그대로 투사하여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와 환경의 요청의 산물이다. 처음부터 그리고 오랫동안 남성진영에 절대적으로 기울어져 있던 양성평등이라는 시소(seesaw)를 형평상태로 바꾸기 위해서는 무게중심을 중심으로 이동시키는 처방으로는 부족하다. 먼저 여성진영쪽으로 보다 많은 무게를 실어야 기울어진 시소가 비로소 형평을 맞추어 갈 수 있다.

술자리에서 교감이 교장에게 술을 따르라고 교사를 강권한 것이 성희롱인가 아닌가에 관한 판단은 "피해자의 주관적 사정을 고려하되, 사회통념상 합리적인 사람이 피해자의 입장이라면 문제가 되는 행동에 대하여 어떻게 판단하고 대응하였을 것인가를 함께 고려하여야 한다"(남녀고용평등법시행규칙). 우리의 "사회통념"은 어떻게 구체화할 수 있는가? 성희롱판단의 척도인인 "합리적인 사람"은 도대체 누구인가? 우리의 사회통념이 아직도 기울어진 시소의 양성평등을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사회의 합리적인 사람이 남성중심적이고 여성의 경험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 사람은 아닌지에 대해 최근의 성희롱사건의 진상과는 무관하게 되새겨 본다. 한국사회에서 뿌리를 내린 내 안의 편견과 고정된 관념을 들여다보고, 장차 나의 성의식을 어떻게 예민하게 가다듬어야 할 지를 가늠해 보노라면 고개를 떨구지 않을 수 없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