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초를 말한다 - 영화 '오! 그레이스'

  • 75호
  • 기사입력 2005.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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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ㅣ 법학과 김성돈 교수

오! 그레이스에는 대마초가 나온다

범죄의 원인을 밝히는 이론 가운데 하나인 아노미 이론에 의하면 사람은 목표달성에 이르는 합법적 수단이 결여되어 있을 경우 불법적 수단을 선택하는 태도로 나올 수가 있다고 한다. 그 불법적 수단이 도덕적으로 범죄시 될만한 무게를 가지고 있지도 않고 타인에 대한 손해를 야기하지도 않아서 보는 관점에 따라 범죄로 보여지지도 않을 경우에는 더욱더 그러한 수단을 선택할 유혹에 빠지기 쉽다. 빈곤과 역경의 나락에서 탈출구를 찾을 길이 전무한 상태에 빠진 사람이라면 그러한 불법적 수단을 선택하는 자신의 태도를 합리화하기까지 할 것이다.

영화, 오! 그레이스(원제: Saving Grace)는 갑작스런 남편의 죽음과 남편의 사업실패가 남긴 감당할 수 없는 채무를 떠안게 된 중년의 부인 ‘그레이스’가 불법한 수단을 선택하여 암담한 처지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영화이다. ‘그레이스’가 선택한 길은 평소의 자신의 정원을 유지하기 위해 갈고 닦은 실력(화초기르기)을 대마초재배라는 역할로 탈바꿈 시킨 것이었다. 대마초 재배 그 자체가 범죄행위인 점에서는 영화를 제작한 영국이나 우리나라에서 별반 차이는 없었다. 그러나 그 영화를 수입한 우리나라의 법의 태도는 사뭇 달랐다.

영화가 등급보류 판정을 받은 이유

2001년 6월에 우리나라에서 상영된 영화 오! 그레이스는 2000년 선댄스 영화제와 뮌헨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했고, 미국에서는 서른개의 상영관에서 시작되어 단숨에 8백75개의 상영관으로 확대개봉되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수입되자 마자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등급보류 판정을 받은 영화이다. ‘마약 복용 장면의 과다한 묘사’가 문제였다.


등급보류판정이 범죄행위장면 때문이라면 모든 영화가 등급보류판정을 받아야 할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 범죄행위가 나오지 않는 영화가 거의 드물기 때문이다. 대마초 보다 훨씬 강도가 높은 마약을 흡입하는 영화도 등급보류판정없이 그 장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영화도 많다. 트레인스포팅, 트래픽 등이 그 대표적인 영화이다. 오! 그레이스가 다른 마약관련 영화와 다른 점이 있다면 마약흡입의 폐해를 지적하는 금지지향성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 뿐이다. 영화 오!그레이스는 우리나라의 일반인의 생각이나 법의 태도처럼 대마를 환각이나 환청을 유발하는 끔찍하고도 무시무시한 마약류로 다루고 있는 대신에 대마가 위기에 빠진 한 미망인을 구해줄 수 있는 수단이자 그를 둘러싼 모든 주변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기쁨의 묘약으로 묘사되고 있기 때문이다.

등급보류판정을 받은 지 3개월 후 영화수입사가 자체 필름에 손질을 가해 모두 2분 28초간의 장면을 삭제하고 다시 심의에 넣었다. 마침내 2001년 6월 23일에 극장가에서 상영되었지만 이 영화가 미국이나 영국에서와 같이 한국 관객들의 사랑을 받지는 못하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당시 극장가를 강타한 초블록버스터(대표적으로 한가지만 들면 ‘친구’)의 폭력장면에 몰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영화가 대마합법화가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최근에 개봉되었더라면 사정이 달라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대마초 금지의 역사와 대마초 합법화의 추세

그 이유는 2004년 말부터 우리나라에서도 대마초합법화 논의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마초 흡연으로 기소된 한 여배우가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이 행복추구권침해라는 이유로 위헌이라는 헌법소원까지 내었다. 뒤이어 박찬욱, 김기덕, 지진희, 홍석천, 등 영화감독과 배우들은 ‘대마 합법화 및 문화적 권리 확대를 위한 문화예술인’ 모임을 결성하면서 우리나라 대마초에 관한 법정책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에 의하면 대마초에 환각효과가 있긴 해도 중독성이나 폐해가 오히려 담배보다도 약하므로 마약으로 취급해 처벌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대마가 지구상에서 금기시된 것은 불과 100년전부터라고 한다. 1만여년전부터 인류와 함께 해온 대마는 신비의 약초이자 식품으로 대접받았고, 종이와 범선의 돛과 로프의 원료이기도 했다. 그러나 19세기 중반 석유화학기술의 등장 이후 대마의 수난이 시작된다. 1937년 12월 세계 최초로 미국에서 대마금지법(마리화나 세금법)이 공포되었는데 이 법은 당시 대마 박피기와 추수의 자동화가 이뤄지면서 대마산업의 발전에 위협을 느낀 섬유업계와 제지업계의 ‘냄새나는 결탁’의 산물이라고 지적되고 있다[이에 관해서는 유현, 대마를 위한 변명, 실천문학사(2004)를 요약하였음]. 석유화학자본의 소유주인 듀퐁과 제지공장을 소유하고 있던 신문왕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가 ‘대마초를 저급한 인종들이 사용하는 미치광이의 약물’이라는 캠페인을 펼치자, 대마초세금법 공포로 이어지고, 농가들이 대마 재배를 포기하면서 대마산업은 침몰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자는 20대에 철도 조사원으로 시작해서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스파이 생활을 시작하면서 출세의 기반을 다진 후 마침내 1931년 신설된 연방마약관리국 국장으로 임명되어 1937년의 마약금지법의 제정을 주도하고, 뒤에서 살펴보게 될 ‘관문이론’을 만들었으며, 1961년 물러날 때 까지 30년 동안 미국에서 대마와의 전쟁에 앞장섰던 헨리 인스링거(Herny Anslinger)라는 인물이었다.

베트남전쟁과 반전시위로 궁지에 몰린 70년대의 닉슨정부 역시 신좌익 운동세력에 대한 탄압을 대마초금지와 연결시키면서 돌파구를 찾아갔다. 그 이후 지난 30여년 동안 계속된 미국의 마약과의 전쟁은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고 그때마다 격렬한 저항에 부딪혀왔지만 지금도 여전히 미국은 특히 대마초관련 사범에 대한 처벌은 세계 최고의 기록보유국으로 인정되고 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미국이 벌이고 있는 마약과의 전쟁에서 주적이 된 대마초는 진보와 혁명, 반전과 평화의 상징으로서 그 합법화운동이 폭넓은 지지를 얻어가기 시작하였다.

반면에 유럽은 일찌감치 1976년 네덜란드의 아편법 개정을 신호탄으로 하여 대마초합법화가 실험대에 올랐다. 1990년 11월의 ‘프랑크푸르트결의문’(부제: 금지를 반대하는 유럽 도시 운동의 성명서)이 계기가 되어 1998년 예방과 치료, 폐해감소를 앞세우는 약물정책의 실현을 위한 ‘약물정책에 대한 유럽도시 회의’를 결성하고 20개 이상의 유럽도시가 이에 서명하는 등 대마초 합법화가 뚜렷한 성과를 거두기 시작하였다. 2001년 1월 벨기에정부는 대마초의 개인적 사용을 합법화 하는 데 동의했고, 새로운 시행령에 따라 개인적 용도의 대마재배와 대마초의 사용을 허가했다. 프랑스는 1999년 6월 법무부가 검찰에 경마약사범에 대해서는 기소하지 말 것을 지시한 이후 대마초소지로 체포된 혐의자의 95퍼센트를 기소하지 않고 있다. 2001년에는 룩셈부르크가 대마초를 카테고리 B에 포함시켜 대마초 소지자에 대해서는 가벼운 벌금형만 부과하도록 하였고, 포르투갈도 대마초 소지를 형사범이 아니라 행정위반사범으로 취급하게 되었다. 2001년 스위스 상원도 18세이상의 성인의 대마재배와 소지 및 합법화하는 법령을 승인했고, 영국정부는 2003년 ‘약물남용에 대한 의회 자문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대마초의 약물등급을 클래스 C로 완화시켜 대마초소지만으로는 혐의자를 체포할 수 없게 되었다. 그 밖에 그리스, 핀란드 등도 대마초의 개인적 소지와 사용에 대해 징역형을 구형하지 않고 있으며 독일, 스페인, 오스트리아 등에서도 현실적으로 대마초에 대해 온정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대마초의 합법화기류는 대마초금지를 전세계에 확산시킨 장본인인 미국에서도 피해갈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지난 1996년 캘리포니아에서는 ‘의약적 용도의 대마초 합법화’법안이 통과되었고, 현재 9개 주가 유사법안을 통과시켜 적용 중이다. 캘리포니아주 대법원은 2002년 7월 19일 의료용 대마초 법을 강력히 지지하는 결정을 했다. 심지어 미국의 뒤뜰인 캐나다에서 대마초합법화의 물결이 밀려와 2002년 9월에는 불법약물에 대한 상원위원회는 의회에 대해 대마초의 소지에 대한 범죄기록을 삭제할 것과 대마초를 술과 마찬가지로 취급할 것을 권고하는 6백쪽 분량의 보고서를 위원회 만장일치로 제출했다. 2003년 5월 캐나다 입법부는 한정된 양의 대마초 소지와 사용에 대한 처벌을 경감하는 법령을 제정했다.

대마초에 관한 객관적 진실

대마초의 합법화가 이렇게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되어가고 있는 데에는 대마초에 대한 과학적 분석의 결과가 가장 큰 영향력을 미쳤다. 오늘날 대마초에 관한 객관적 데이터들의 대부분은 대마초가 담배와 술에 비해 그 중독성이나 의존성 또는 사회성이 훨씬 적은 것이며 대마초가 치명적인 마약이라는 생각은 오도된 편견에 불과하다고 한다. 1994년 뉴욕타임즈에 보도된 필립 힐츠의 미국립약물중독연구소(NIDA)의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된 여섯가지 약물중 니코틴이 가장 강력한 물질이었고 가장 약한 물질이 대마초로 밝혀졌다. 1997년 독일 클레이버 연구, 1998년 프랑스로퀘스트 보고서, 1999년 미국의학연구소의 보고서 등도 대마초의 잠재적인 의존성은 일반적으로 술보다 낮았으며 담배에 비해서는 현저히 낮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연구프로젝트의 보고서인 1995년 세계보건기구와 미국의약협회의 보고서를 취합하여 약물의 위험성을 수치화한 미국립약물중독연구소의 잭 헤닝필드가 작성한 도표에 의하더라도 니코틴은 술과 헤로인에 뒤이어 세 번째로 끊기 어려운 약물이고 대마초는 금단성, 강화성, 내성, 의존성 등에서 술과 담배에 비해서도 훨씬 위험성이 낮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니코틴 헤로인 코카인 알코올 카페인 대마초
의존성 6 5 4 4 2 1
금단성 4 5 3 6 2 1
내성 5 6 3 4 2 1
강화성 4 5 5 4 1 2
독성 3 6 4 6 1 3

[필립 힐츠의 NIDA 보고서의 약물비교(높은 숫자=높은 효과)]

대마초 금지(관문이론)의 허구성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세계적으로 대마초 금지의 근거가 되고 있는 유일한 이론은 1951년 헨리 안스링거에 의해 만들어진 관문이론(Gateway Theory)이다. 이 이론에 의하면 ‘마리화나가 그 자체 위험한 것은 아니지만 헤로인에 중독된 젊은이들의 50퍼센트 이상이 마리화나를 사용했기에 마리화나가 헤로인에 손을 대게 되는 관문’이기 때문에 금지해야 한다고 한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2004년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이 이론은 대마초 합법화논의를 잠재우려는 유일한 논거로서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관문이론은 오늘날 현실과 맞지 않는 허구로 평가되고 있다. 현재 미국에서 대마초를 한번이라도 사용해 본 인구가 8천2백만을 넘고 있지만 미국의 헤로인 중독자 수는 1백만을 넘고 있지 않다. 뿐만 아니라 헤로인등 불법약물 사용자의 중에서는 담배나 알코올 사용 전력을 가진 자가 각각 41.1퍼센트와 66.7퍼센트에 달하고 있다는 조사(2000년 미 보건국이 실시한 전국가정 약물중독실태조사)가 있느니 만큼, 오히려 담배와 술이 불법마약류로 이르는 관문이 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대마초의 사용을 허용하고 있는 네덜란드의 경우는 인구 10만명당 헤로인 중독자 수가 미국이 430명인 반면 160명에 그치고 있어 관문이론의 허구성이 실증되고 있다. 특히 2003년 1월 미국의약협의의 저널에 발표된 논문에는 ‘대마초의 사용이 오히려 다른 마약에 대해 방어막의 역할을 하고, 오히려 대마초 금지가 다른 마약의 사용을 조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연구결과는 대마초를 헤로인 등 강력한 마약과 동급으로 분류해서 높은 법정형을 부과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실정에서 보면 대마초의 불법화가 차라리 보다 효과가 강한 다른 마약사용을 조장하는 측면도 없지 않다는 측면을 시사해 주고 있다.

우리나라 대마초에 관한 법정책의 이데올로기성

70년대에 제정된 대마관리법을 대체한 우리나라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은 대마초를 금지하면서도 서구의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중한 형벌로 대응하고 있다(상습적으로 대마의 수출 또는 수입 혹은 소지한 자에 대해서는 살인죄 보다 더 무거운 10년이상의 징역과 사형 또는 무기징역). 법집행기관 역시 대마초금지의 상징적 효과를 노리고 있는 탓인지 주로 연예인(2003년 마약관련 단속대상 통계자료를 보면 연예인 직업군은 7명으로 전체의 0.1퍼센트에 불과)을 희생양으로 삼아 대대적인 여론몰이를 하고 있는 측면이 있다. 1951년 미국의 정치상황에서 탄생한 관문이론의 어두운 그림자는 우리 사회에서 대마초에 관한 강력한 국가적 통제에 대해 암묵적 합의를 이끌어내고 있는 것도 이러한 억압과 통제기제가 여전히 먹혀들어가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사실상 우리나라에서도 70년대 중반까지 대마 흡연에 대한 일반의 시각은 다른 나라와 별로 다를 것이 없는 수준이었으며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까지 용인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른바 ‘대마초 연예인 파동'후 대마초가 혹독한 시련을 맞게 되었는데, 이 시기가 공교롭게도 김민기의 ‘아침 이슬’이 공식적인 금지곡이 된 시기이자 사회적으로는 75년 4월 긴급조치 4호, 민청학련 사건, 5월 긴급조치 9호, 유신헌법 찬반 투표실시 등 독재정권의 체제 유지를 위한 각종 극약처방이 다양하게 동원되는 시기와 겹쳤다. 이러한 시기의 일치성을 보면 대마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나 법정책의 배후에는 상당부분 이데올로기적인 측면이 들어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국가의 안보나 경제개발이 독재정권의 정당화도구가 되었던 시대에 60년대 히피즘의 영향을 받은 록 음악은 혹세무민하는 외국의 저질문화로 치부되었고, 한편으로 밤낮없이 새마을 운동에 전투적으로 매진해야 할 시골 사람을 술취한 듯 나른하게 만들어버리는 대마초 역시 조국 근대화라는 지상과제에 장애물로 간주되었다. 왕성한 창작력과 연주활동을 보이던 신중현은 이 사건을 계기로 '대마초 왕초'가 되었고 이장희, 윤형주, 김세환, 김추자, 조용필 및 이장호 감독 등 많은 사람들이 구속되거나 활동을 정지 당했다. 대마초파동은 80년대에도 90년대에도 그리고 새천년에 와서도 계속되어 오고 있다.

대마초 연예인 구속, 그리고 거기에 보조를 맞출 수 밖에 없는 각 언론의 태도 때문에 대마초의 객관적 데이터가 차단되었던 일반 국민들은 대마초에 대한 오도된 편견을 가지게 되었다. 그에 따라 ‘대마초는 강력한 환각작용을 일으키고 필로폰이나 헤로인과 같은 강력한 약물로 이어지며 뇌세포를 파괴하고, 기억력과 인지력을 감퇴시키며 교통사고를 유발하고 폐질환을 일으며 인체의 면역력을 약화시킨다’는 등의 고정관념으로 형성되었다. 이러한 고정관념은 대마초를 가까이 했다가는 패가망신한다는 처벌에 대한 두려움이 상승작용을 일으켜 대마초의 이미지는 점차 아편을 능가하는 심각하고 치명적인 마약으로 각인되게 되었다.

불확실한 것은 불확실하게 취급하라

우리가 살아가면서 마주치는 많는 문제들 가운데 무엇이 옳고 그른지, 뭐가 득이고 뭐가 해인지 엄정하게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어렵고도 힘든 일이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객관적 판단기준은 존재하지 않고 그때 그때 만들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나라에서는 행정명령위반 수준의 경범죄로 취급받고 있는 대마초 흡연자들을 ‘흉악한 죄인'으로 만들면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자존심을 꺾어 버리는 우리사회의 대마관련법과 우리 시대의 대마정책은 대마 흡연의 폐해보다 더 큰 사회적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오늘날 개인의 행위를 금지할 것인가 말것인가는 법이 정하는 일이고 금지와 허용에 관한 법의 태도를 결정하는 일차적인 기준은 문제의 행위가 외부(개인이나 사회 혹은 더 나아가 국가)에 일정한 해를 끼치는가 하는 점이다. 술을 마시는 행위나 담배를 피우는 행위가 허용되고 있는 것(최근 간접흡연의 폐해가 과학적으로 입증됨에 따라 공공장소에서 담배피우는 행위가 금지되는 추세에 있는 것은 별론으로 하면)도 바로 그 행위에 의한 외부 폐해가 기준이 된 탓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논리에 따른다면 술이나 담배와 마찬가지로 외부폐해를 야기하지 않으면서도 더 나아가 술과 담배보다도 개인에게 해롭지도 않는 어떤 물질이 있다면 그 물질을 취식하는 행위에 대해 국가가 형벌이라는 수단을 가지고 금지령을 발동하는 것은 지극히 형평에 어긋나는 법의 태도일 것이다. 만약 그것이 그 행위자 개인에 대해 일정한 해악을 미친다고 할 때 국가가 후견인적 입장에서 개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국가후견사상 역시 철저한 과학적 근거지움에 의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고, 성인으로서 책임있는 개인의 자율성에 우위를 두면서 개입의 최소화를 유지해야 할 것이다. 더욱이 그러한 국가후견사상의 발동의 근거가 되는 과학적 사실이 ‘아직’ 규명되지 않았을 경우에는 더더욱 국가의 개입은 자제되고 후퇴되어야 한다.

금지와 허용사이에는 ‘법으로부터 자유로운 영역’도 있고, 불법과 합법사이에는 ‘반합법(semi-legal)의 영역’도 있을 수 있다. 불확실한 것은 불확실하게 다루어야 한다. 불확실한 부분에 대해서 어렴풋한 추측과 관성적인 편견에 지배받아 잘못된 금기를 만들기 보다는 좀 더 객관적인 지식과 중립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하고, 그를 위해서는 먼저 개인의 선택과 판단에 최대한 많은 것을 일임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바라고 추구하는 열린 사회와 열린 국가의 참모습은 문제를 성급하게 이데올로기화 하거나 감정적인 터부로 묶어 두기 보다는 민주적이고 발전적인 토론의 기회를 만들어 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름을 인정하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는 대마초카페까지 성업중이다. 10년후면 유럽국가에서 대마는 합법화될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최근 마약범죄학회에는 “대마초와 관련해서는 일반 약물중독에서 빚어지는 범죄와 달리 반사회적 행동에 관한 명확한 자료를 찾아볼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되었고, 이에 따라 마약학회는 대정부 건의문을 통해 “대마초는 마약이 아닌 만큼 마약법에서 분리해 별도 법률을 제정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제적인 상황이나 객관적인 자료들을 통해 볼 때, 대마초에 대한 우리나라의 법정책과 법집행의 태도에도 변화가 있어야 할 수준이 되었다. 인간의 정신은 외부적인 약물 - 술, 담배 포함 - 의 도움 없이도 얼마든지 높은 성취를 이뤄낼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외부적인 약물에 의존하지 않고도 더 큰 기쁨과 행복을 맞볼 수 있는 계기는 얼마든지 많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그러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거나 그렇게 하고 싶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개방되고 다원화된 민주사회는 그러한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도 존중해 주어야 한다.

극장가에서 상영된 영화와는 달리 비디오에는 △주인공 그레이스가 해변에서 처음 대마초를 피는 장면 1분34초 △마을 의사가 대마초를 피우고 취해서 눈이 커진 장면 15초 △그레이스 재배한 대마초를 모두 태우자 그 연기에 마을 사람과 경찰관이 취해 춤을 추는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 39초 등 삭제된 모든 장면을 볼 수 있다. 필자는 대마초흡연이 어떠한 기쁨과 행복감을 주는지 경험해 보지 못했지만 대마초에 관한 영화, 오! 그레이스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오랜시간 동안 기쁨과 행복감을 만끽할 수 있었다.


편집 | 스큐진 황예진 학생기자 (ooohyj@skk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