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검사와 영화 '공공의 적2'

  • 79호
  • 기사입력 2005.03.03
  • 조회수 15952


글 | 법학과 김성돈 교수

‘검판사’와 ‘판검사’

‘판검사’라는 말과 ‘검판사’라는 말의 차이를 아는가? 요즈음은 출세의 잣대로 인정되어 오던 직업군을 지칭할 때 일반적으로 ‘판검사’라는 말을 쓴다. 하지만 검사가 위로는 독재 권력의 수족역할을 충실하게 하면서도 아래로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시대에는 한 남자의 성공여부를 측정하는 직업군을 지칭할 때 ‘검판사’라는 말이 널리 회자되었다. 판사와 검사라는 직종 가운데 선호도가 검사에게 주어져 있었던 시대에 있었던 사람들의 우리의 의식의 반영이었다. 검사 하면 흔히들 힘과 권력, 야망과 성공 그리고 정의라는 단어들을 연상한다. 이러한 검사관련 이미지 가운데 영화 ‘공공의 적2’는 특히 정의의 화신으로 맹활약하는 한 검사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영화 속의 대한민국 검사


그러나 불과 몇 해 전만 하더라도 현실속의 검사는 정의의 총을 뽑아드는 의로운 검사가 아니었다. 따라서 ‘공공의 적2’가 몇 년 전에 우리 앞에 나타났더라면 이 영화에 대해 사람들은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을지 모른다. 영화 속에 그려지고 있는 검사의 이미지가 실제로 사람들이 검사에 대해 새겨왔던 각인과 우리나라 현실에서 보여준 검사의 실제 모습과 너무나 큰 격차가 있었기 때문이다. ‘공공의 적2’는 비록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수사와는 거리가 멀지만, 정의감으로 뭉쳐진 한 검사가 세상의 거악(巨惡)에 어떻게 맞서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는 범죄자를 ‘그냥 나쁜놈’과 ‘공공의 적’으로 구분한다. 이 영화는 검사는 그냥 ‘나쁜놈’과 대결하는 자가 아니라 ‘최소한의 요구인 법’을 짓밟는 ‘공공의 적’과 대결해야 하는 자로 그려낸다. 가슴 미어지는 절절한 사연도 없고, 전혀 모르고 있었던 사실을 재생산해내어 우리를 아연질색케 하는 내용도 없지만, 정의는 승리한다는 평범한 사회적인 메세지 하나만을 자신만만하게 내세우고 있다. 비교적 단순한 줄거리를 가지고 있지만, 평소의 다른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검사의 일하는 현장 속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우리나라에 영화 속의 검사 ‘강철중’과 같이 정의감에 불타는 검사가 10명만 있으면 우리나라는 부패공화국의 오명을 벗어던질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


검사 이야기

우리나라에서 검사에 대한 평가는 헌정사의 굴곡에 따라 확연하게 달랐다. 정의의 보루로 우뚝 선 시기도 없지 않았지만, 불과 몇 해 전만 하더라도 독재정권의 하수인과 진배없는 취급을 받아왔다. 그러나 최근 사람들은 우리나라 검사와 검찰에게 희망과 신뢰의 눈길을 주기 시작하고 있다. ‘공공의 적2’에서 ‘대한민국 검사 강철중’에 대해 관객들이 보내고 있는 박수는 우리나라 검사와 검찰에 대해 보이고 있는 세간의 평가가 이처럼 달라지고 있기에 비로소 가능해진 것인지 모른다.
우리나라에서 검사는 누구나 될 수 있지만 아무나 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일정한 수험생활을 거친 후 사법시험이라는 치열한 경쟁에 이기기 위해 자기와의 싸움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그 후 2년의 사법연수원에서 실무수습을 하면서 다시 숨막히는 수험생활을 하여 몇차례의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얻어 상위그룹에 랭킹되어야 한다. 그러나 오랜 기간 성실함과 극기를 통해 걸머지게 되는 검사라는 타이틀은 기울인 노력의 질과 양에 걸맞는 대가를 지불해 준다.

사법시험에 합격하는 즉시 출신 마을 어귀에는 현수막이 나부끼고, 돼지를 잡아 벌이는 동네잔치에는 군수까지도 축하주를 마시기 위해 왕림한다. 숫자가 많이 늘었지만 아직도 사업하는 사람들은 검사를 사윗감 후보 1위로 생각한다. 이 모든 기대와 결속은 우리나라에서 검사만큼 많은 막강한 권한과 많은 역할을 하는 직업이 드물기 때문이다.

검사는 우선 범죄를 수사하여 유죄의 혐의가 있는 사건에 대해 증거를 수집하여 법원에 대해 공소를 제기하는 권한을 독점해서 가지고 있다(기소독점주의). 이러한 직무를 행함에 있어서 경찰을 지휘하고 감독하는 권한도 가지고 있다(수사의 주재자). 여기서 사람이 구속되느냐 마느냐를 결정할 1차적인 권한도 검사가 행사한다. 뿐만 아니라 검사는 혐의가 있는 것이 분명한 경우에도 재판에 회부하지 않고 공소를 보류하는 권한도 가지고 있다(기소편의주의).

법으로 인정되어 있는 이 같은 검사의 기소유예권한 때문에 검사는 ‘판사 앞의 판사’로 군림할 정도이다. 또 유죄판결을 내리는 것은 판사이지만 그 집행 및 집행의 감독은 검사가 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검사는 국가를 당사자 또는 참가인으로 하는 소송을 수행하는 역할도 한다. 이 외에 검사는 법무부에서 검찰인사 뿐만 아니라 법령의 개정작업을 주도하는 역할도 한다.

이렇게 막강한 권한을 가진 검사와 검찰은 무섭지만 결코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대상이었다. 검찰과 검사에 대해서는 ‘검찰파쇼’, ‘권력의 해바라기’ 혹은 ‘정권의 시녀’ 등 오명이 씌여져 있었다. 심지어 검사가 바로 공공의 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의 국가가 ‘괴물’(리비이어탄)의 모습에서 점차 ‘인간’의 모습으로 바뀌어 가고 있음에 따라 종래의 검사와 검찰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도 바뀌어가기 시작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많은 성역들이 사라지면서 검찰이라는 폐쇄회로가 개방을 요구하는 외부의 열기를 감지하기 시작했다. 막강한 검찰의 권한을 스스로 축소해가는 제도개혁의 방안들이 내부에서도 봇물처럼 터져나오면서 검찰본연의 임무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때 ‘검사스럽다’는 신조어까지 나돌아 다닐 만큼의 분위기가 반전되어 검찰에 거는 기대와 희망이 우리 헌정사 반세기 이후 최고조를 달하고 있는 것 같다.

판타지속의 검사와 현실속의 검사

‘공공의 적2’는 ‘검찰공화국’이 ‘민주공화국’시대로 바뀌어가는 환경변화를 더 빨리 재촉하고 더 확실하게 다지고 싶은 우리의 바램을 담은 판타지 영화이다. 영화를 보고 돌아오는 차안에서 공적자금 비리에 관한 검찰의 수사결과를 발표하는 뉴스를 들었다. 정경유착의 비리의 핵심에서 국민의 혈세를 빼돌린 공공의 적들이 무려 55명이나 기소된다고 한다. 그 중에는 전 국회의원이었으며 대기업의 총수도 있고, 대한민국의 권력의 심장부였던 전 안기부장과 전직 대통력의 친인척도 있다. 판타지 영화 ‘공공의 적2’에서 돈을 위해 공권력과 결탁한 사학재단 이사장 ‘한상우’를 잡아들이는 가공의 인물 ‘강철중’ 검사와 현실의 공간에서 공공의적들이 행한 범죄 사실들을 찾아낸 이름 모를 대한민국의 검사들이 머릿속에서 오버랩되고 있다.

검사스러운 검사

사람들은 말한다. 그 사람이 입은 옷이 그 사람을 변화시킨다고. 검사 친구를 가진 사람들은 누구나 경험한다. 검사가 되기 전의 친구와 검사가 된 후의 친구가 얼마나 달라지는지를. 그리고 그의 인간관과 세계관이 얼마나 달라지는지를. 우리나라에서 검사는 검사가 되기 전부터 시작해서 검사가 된 후로도 앞만 보고 달린다. 우등생이자 모범생으로, 무한정 주어지는 자유를 유보한 채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웅크린 자로서, 임용된 후에도 개인과 사회의 어두운 면의 척결에 매진하면서 좌우를 돌아볼 여유를 갖지 못한다. 항상 정도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반듯하게 행동해야 했고 방종과 방황은 타인의 일에 불과했다. 궤도에서 벗어났다고 생각되는 자는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생각하며 단죄 작업을 실제로 진두지휘한다.

그에 따라 검사의 인간관과 세계관은 일정하게 패턴화되기 시작한다. 검사는 생각한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선인과 악인으로 구별할 수 있고, 악인에게는 반드시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하여 악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켜야 하는데, 그 역할의 선봉장 역할은 검사가 해야 한다고. 법과 제도는 그의 교회가 되고, 대한민국이라는 체제유지는 그의 푯대가 되며, 정의와 공공의 이익은 그의 신이 된다. 경험과 경력이 쌓여가고 직책이 올라갈수록 그러한 확신은 커져가고 자신감은 더욱 공고해 진다. 경험과 직관을 사람을 평가하는 주된 수단으로 삼는다. 이렇게 하여 ‘대한민국의 검사와 검찰은 하지 못할 일이 없다’는 의식이 내면화된다.

인간다운 검사

그러나 그렇지 않다. 사람과 세상은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안경만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다양하고 복잡하며 알 수 없는 일투성이다.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 수 있고, 드러난 범인 보다는 은폐되어 있는 범인(암수)들이 훨씬 많다. 따라서 검사라도 자신의 능력에 한계를 느끼며 자신의 직관과 확신이 틀릴 수 있다는 점을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범인을 찾아내어 처벌받게 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수단을 사용해서라도 무방하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그 때문에 ‘열사람의 범인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한사람의 억울한 자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법언은 언제나 새겨들어야 할 의미를 가지고 있다.

최근 검찰이 재판과정에서 수사기록을 법원에 내놓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어서 다시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이러한 검찰의 태도는 수사기록을 중심으로 하던 재판방식이 법정에서의 직접적인 공방을 통해 유무죄를 가리는 형태로 바뀌고 있는 만큼 검찰의 공판대책도 바뀌어야 한다는 견지에서 나온 듯하다. 형사재판형태가 검찰이 범죄사실을 입증하기에 어렵게 바뀌어 진다고 해서 범죄자에게 법망을 빠져나갈 기회를 허용해서는 안 될 것이지만, 검찰은 변화된 사회와 신장된 인권의식의 수준에 맞는 새로운 수사방법을 통해 유죄입증의 증거수집에 최선을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검찰이 수사기관에 대해 거짓말을 하는 참고인 등에 대한 사법방해죄를 신설하거나 중요 참고인등을 수사기관에 강제로 구인하는 제도를 도입하려는 태도도 새로운 변화에 맞추어 진실캐기의 방식들을 개발하려는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공공의 적2’를 관람한 영화팬들은 검사에게서 기계와 같은 차디찬 이성과 카리스마만을 보기를 원하지 않는다. 실체 진실을 찾아가는 검사가 자신의 눈이 잘못일 수 있고, 자신의 생각이 틀릴 수 있으며, 자신의 논리와 판단에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시인하지 않으면 그는 인간이 아니라 머신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온전한 사회통제가 검찰권의 행사를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검찰권은 수많은 유무형의 사회통제장치의 하나에 불과한 것이고 그러한 검찰권의 행사 ‘사람의 일’임을 인정하는 검사가 많아질 때 ‘공공의 적2’의 영화팬들은 ‘검찰팬’으로도 남을 수 있을 것이다.


편집 ㅣ 스큐진 황예진 학생기자 (ooohyj@skk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