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군인의 자화상, ‘용서받지 못한 자’

  • 97호
  • 기사입력 2005.12.27
  • 취재 백선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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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법학과 김성돈 교수

용서받지 못할 범인을 찾아서

 2005년 부산영화제 4개 부문을 수상한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를 보러 대학로에 있는 한 영화관에 갔다. 전쟁영화가 아니면서도 군대영화인 대한민국 최초의 영화로 평가되는 이 영화는 남자 세 사람이 일행일 경우 관람료 할인혜택을 부여한 최초의 영화이기도 했다. 이 영화가 일반 사회인에게 열려져 있지 않은 군대의 문호를 개방하는 영화로 오인한 상태에서 나는 마치 견학을 위해 군부대의 입구에 서 있는 자들처럼 군대의 문이 활짝 열어 젖혀지는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열려진 문 안을 수색하여 과연 누가 ‘용서받지 못한 자\\'인지를 밝혀내려는 수사관처럼 비장한 각오까지 하면서.

  한국사회에서 굳게 닫혀 있었던 군대의 문은 군사정권이 무너진 이래 조금씩이나마 열려왔다. 최근에는 군부대의 가혹행위, 진급비리, 총기난동사건 등 굵직한 문제들이 불거져 나오면서  군대안의 내밀한 일들에 대한 베일이 벗겨져가고 있다. 의문사진상조사위원회도 과거사조사위원회도 접근금지구역인 군대를 접근 가능한 구역으로 변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진행되어 온 현실적인 차원의 진실규명이 군대라는 ‘구조\\'의 실체에 관련된 것이었던 반면, ‘용서받지 못한 자\\'는 그 구조의 무게를 온몸으로 떠안으면서 구조화되어 가는 ‘군인\\'의 내부 심리를 파헤쳐 들어가고 있다.

군대속의 생존기계가 살아남는 법

  군인은 정신교육을 통해서 군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신체적 훈육을 통해서 정신적으로 군인이 된다. 몸의 훈육을 통해서 기율을 익힘에 따라 행동이 바뀌고 말투가 달라지고 마침내  구조의 프로그램을 실천하는 내부의식을 가지게 된다. 군인이 되기 전에 형성되어 있었던 내부 프로그램은 구조가 바라고 요구하는 새로운 프로그램과 일시적인 충돌을 일으킨다. 그러나 생존기계인 인간은 군대라는 환경 속에서도 살아남기 위한 본능적 적응을 통해 진화과정을 겪는다. 그 결과 이 땅의 많은 군인들은 사회생물학적 의미의 진화과정을 거쳐 명실상부한 군인으로 거듭난다. 적응하지 못하는 기계는 불량기계(고문관)로 평가받거나 수리에 맡겨지거나(탈영 후 영창) 스스로 작동을 멈추고 만다(자살). 2어년 동안의 의식화를 통해 해방 후 50여년 이상 군대는 수많은 군인들을 바깥세상으로 군사문화를 전파하는 사역을 담당하게 했다. 군사정권이 사라진 후에도 군사문화는 일반사회를 군대사회와 동일한 실내장식을 갖추게 만들었고, 한번 군인이었던 자는 영원한 군인이 되어 우리 사회 전체를 늙은 군인들로 득실거리는 병영으로 만들었다. 한 대학생이 졸업 작품으로 만든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는 우리 사회의 남성들이 겪게 되는 진화과정을 섬세하게 묘사함으로써 ‘용서받지 못한 자\\'론을 전개하고 있다.

 

용서받지 못한 자가 용서받을 길

  영화관을 나오면서 나는 잠시나마 수사보고서 작성에 열중하는 성실한 수사관이 되어 보았다. 나의 수사보고서는 이러했다. ‘용서받지 못할 범인은 건국 후 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용서받지 못한 자\\'를 양산해 낸 우리 사회이다. 범인은 찾은 이상 범인에 대해 부과할 대응책과 범죄예방책을 찾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그 길은 용서받지 못한 자인 우리 사회가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은 용서받지 못한 자의 수를 하나라도 줄여가는 길이다. 용서받지 못한 자의 수를 줄여나가는 방법 중의 하나는 이른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선별해 내어 그들만이라도 군대라는 거대 구조 속으로 들어가지 않게 하는 일이다.\\' 

  양심적 병역거부란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는 것으로, 헌법에서 말하는 양심의 자유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는 기본적인 인권으로 천명하고 있지만, 2005년 4월 현재 문명국가를 자처하는 한국의 감옥에는 무려 1천명이 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수감되어 있다. 이는 1948년 정부수립 이후 약 8천여 명을 병역거부라는 죄목으로 전과자로 만들었고, 지금도 매년 5백 명 이상에 대해 3년간의 징역형이 부과되고 있다. 정치적 신념에 따라 양심적 병역거부를 택하는 극소수의 사람도 있지만, 현재 양심적 병역거부를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기독교내의 소수종파에 소속되어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권의 전개과정

 

 양심적 병역거부문제는 징병제국가에서만 문제된다. 1998년부터 징병제를 일시 중단한 프랑스는 가톨릭과 군사주의 전통이 강한 탓에 1963년에야 양심적 병역거부가 법제화되었지만, 유럽에서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부정하는 나라는 터키뿐이라고 한다. 러시아마저도 복무기간이 24개월이지만 양심적 병역거부는 인정하고 있다. 미국은 1673년 로드아일랜드 주법에서 일반 시민이 종교적 신념에 따라 무기사용을 거부할 수 있다는 내용을 가진 양심적 병역거부가제도가 최초로 인정되었다. 다른 주에서도 1740년대 이후 일정한 범위 내에서 양심적 병역거부가 인정되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면서 1940년에 제정된 선발징병법은 양심적 병역거부를 특정한 종파에 관계없이 ‘종교적 교육 및 신앙을 이유\\'로 하여 참전을 거부한 자에게 신청할 수 있게 하여 그 범위가 넓어졌다. 1965년 시거판결에서 “신에 대한 정통적인 신앙만이 아니라 시민의 반전 신조가 성실하고 그 신조가 당해 시민의 생활신조나 방법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한, 양심적 병역거부는 인정되어야 한다” 고 함으로써 1940년 법에서 확인된 양심적 병역거부권의 범위확대를 재확인하였다.

  비록 1심법원의 판결이었지만 2004년 5월 우리나라 법원에서도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최초로 무죄판결이 내려지면서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문제가 본격적으로 사회에 알려졌다. 항소심과 대법원에서는 ‘양심의 자유 보다 국방의 의무가 우선한다\\' 는 이유에서 유죄판결이 내려졌지만, 이러한 대법원 판결은 1969년, 1985년, 1992년 대법원 판결에서 ‘종교의 교리를 내에서 법률이 규정한 병역의 의무를 거부하는 것은 헌법에서 보장된 종교와 양심의 자유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라고 판시한 것에 비하면 양심적 병역거부를 양심의 자유영역으로 보았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측면도 있다. 더 나아가 한명의 대법관은 반대의견을 내었고, 대법관 12명 가운데 6명이 대체복무제의 도입의 필요성을 보충의견으로 제시하였다.

한국의 주류기독교와 이단 컴플렉스

 서구에서 일찍이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법제화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기독교의 평화주의 사상이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우리나라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대체복무제도의 도입에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 중에 하나가 한국의 주류 기독교 세력(한국기독교총연합)이다. 이웃사랑을 내세우는 한국 기독교가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보이고 있는 심한 적대감의 바탕에는 ‘이단\\' 확산에 대한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다. 대체복무 제도를 인정하면 젊은이들이 잘못된 교리를 가진 이단으로 몰려들어 이단의 확산에 이를 수 있고, 이단의 확산으로 인해 나라 전체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질게 분명하다는 것이다.

 

양심의 자유와 관용의 정신

  양심의 자유는 인격적으로 완성된 고상한 마음의 자유가 아니고, 있는 그대로의 마음의 자유이다. 평화를 사랑하는 기독교도로서 병역을 거부하는 마음도 그 자체로 인정받고 존중되어야 한다. 따라서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을 범죄자로 만드는 우리나라 병역법은 다른 것을 같게 만드는 의미에서 고쳐져야 할 차별법이다. 병역에 대해 다른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서 대체복무 제도를 위시해서 다르게 대응하는 방법은 이미 여러 나라들이 수백 년 전부터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가 우리와 다른 사람들에게 숨 쉴 공간을 마련해 주지 않고 그들을 전체 구조 속으로 밀쳐 넣으려고만 한다면 결국 그들 소수자들을 질식사케 하는 살인자나 다름없다.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다르게 취급하지 않거나 관용의 정신을 베풀지 않는 한 우리 사회는 그 자체 닫힌사회이고 전 구성원을 구조의 틀 속에 가두는 군대화된 사회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사회는 용서받지 못한다.


편집 ㅣ 성균웹진 권해봄 기자 (salorbom@skk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