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의 사회학, 영화,「타짜」를 보고

  • 118호
  • 기사입력 2006.10.11
  • 취재 도진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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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법학과 김성돈 교수

▣ 도박의 사회학, 영화, ‘타짜’를 보고

 영화, ‘타짜’와 도박 도박을 소재로 한 영화, ‘타짜’의 개봉을 앞두고 원작 만화 ‘타짜’(제1부)를 읽었다. 도박중독자들의 이야기에 깊게 중독 되어 할 일도 못한 채 만화책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만화책을 덮으면서 개봉 될 영화, ‘타짜’의 시나리오를 혼자 상상해 보았다. 영화가 원작을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라면, 적어도 영화에서는 도박의 중독증을 다루든가, 도박에 대한 국가의 이중적 태도까지 다루어 주었으면 하는 기대를 걸어 보았다. 그러면서도 만약 영화를 그렇게 만들면 영화감독에게 ‘도박’이 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영화가 개봉되던 날 나는 마치 도박자가 ‘패’를 ‘쪼는’ 심정으로 영화관을 들어섰다.

도박영화, ‘타짜’

 도박장 ‘바다이야기’의 간판은 소리 소문 없이 하루아침에 사라졌지만, 도박꾼들의 이야기 ‘타짜’는 요란한 소리를 내고 있고 그 포스터나 광고판이 보란 듯이 드높게 올라가고 있다. 사람들은 영화, ‘타짜’를 두고 '진정한 남자들의 세계' 혹은 '남자들의 욕망이 살아 숨쉬는 영화'라고 한다. ‘허황된 욕망이 한낱 부질없는 꿈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화투를 통해 깨닫게 해주는 영화’라는 평가도 눈에 띤다. 하지만 나는 완성된 ‘바다이야기’의 스토리를 듣지 못한 탓인지 몰라도, 영화, ‘타짜’를 보면서 도박의 숨겨진 사회적/경제적/정치적 의미를 찾아내려고 안간힘을 써 보았다. 영화, ‘타짜’를 통해 우리 모두가 도박꾼이 되어 버린 현실, 도박의 사회상을 읽어낼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영화를 보는 내내 대뇌피질의 시냅스를 열심히 활성화시켜 보았다.

 영화, ‘타짜’에는 ‘화투’를 가지고 이루어지는 도박판에서 기회를 찾으려는 인간의 불행이 두드러지게 보인다. 도박판의 주연과 조연은 언제나 타짜(도박을 하면서 기술을 부려서 상대의 돈을 딸 수 있는 사람), 설계자(도박에서 사기 칠 대상을 물색하고 사기 칠 방법을 구상하는 사람), 바람잡이(완벽한 사기가 될 수 있도록 들러리 쓰는 사람), 호구(사기도박에서 사기 칠 대상)로 구성되어 있다. 주인공인 고니는 ‘타짜’로서 바람잡이 고광렬과 함께 설계자 정마담의 준비된 도박판에서 어리숙하지만 나름대로의 욕망을 가진 호구들의 금고를 비워낸다. 여기에 고니의 도박스승 평경장의 죽음과 그에 대한 복수, 화란에 대한 사랑, 도박계의 전설인 ‘아귀’와의 사활을 건 승부 등이 영화의 재미를 더해간다.

▣ 진정한 타짜, ‘국가’

 도박은 일정한 시설(도박장)에서 우연을 의도적으로 사용하여 재화를 재분배하는 게임이다. 이와 같은 의미의 도박을 법학에서는 ‘재물을 걸고 우연에 의하여 재물의 득실을 결정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도박판에서 상대방에게 눈속임 등의 수법을 써서 상대방을 속여서 재물을 취득하면 사기도박행위가 된다. 따라서 미리 공모하여 도박을 하는 타짜와 바람잡이 그리고 설계자는 형법상 사기죄가 된다. 다른 한편 사기도박에는 도박의 요소인 우연성이 인정될 수 없기 때문에 호구는 단순히 피해자에 지나지 않게 된다.

 우연을 통해 게임의 승부를 결정짓고 재물의 득실을 결정하는 것을 도박이라고 한다면 그 장소가 정선 카지노라고 해도 도박이 아닌 것은 아니며, 국가가 주도하여 발매하고 있는 수많은 종류의 복권도 확률 상 우연에 의해 재물의 득실이 결정되는 장치인 이상 복권구매도 도박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그렇다면 국가는 도박이나 복권에 중독 된 자들을 ‘호구’로 삼아 부를 축적하는 타짜이고, 국가와의 합의를 통해 각종 복권을 발행하는 기관은 바람잡이 이며, 이러한 일들을 성사시키기 위해 법안을 통과시키는 여야 국회의원들이나 정치인들을 도박판의 설계자로 몰아붙이는 것은 지나친 비유일까.

▣ 도박, 불법과 합법사이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이 있다. 도박 역시 이러한 이중적 잣대가 완벽하게 작용하는 영역이다. 국가가 운영하는 도박은 ‘합법’이지만 그 외의 도박은 모두 ‘불법’이기 때문이다. 일시오락으로 하는 도박이 아닌 한 도박과 도박개장행위는 형법상 범죄행위로 금지하고 있지만, 정선카지노장에서의 도박과 로또복권구입행위는 합법화하고 있다. 사행성 게임장 ‘바다이야기’가 불거지면서 도박에 대한 형사처벌을 알리는 깃발이 전국에서 펄럭이는 가운데, 검찰수사가 진행 중인 지금도 정부는 여전히 이른바 ‘2006년 전자복권발행계획’을 추진하면서 이른바 인터넷로또를 합법화하고 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러한 국가의 태도는 지극히 모순 된다. 국가가 사실상 독점적으로 운영하는 각종 도박 사업을 국가 재정확충 내지 경기활성화라고 미화하는 일에도 정당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도박에 관한 국가의 모순 된 태도가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호구’들의 단순도박행위의 범죄성에 대해서도 끝없는 의문이 일어난다. 도박이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이유는 도박이 노동과 합리적 경영을 생략한 채, 최소한의 투자로 최대한의 이익을 획득하려고 하는 원리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도박의 원리는 자본주의의 원리와 동일하다. 제도로서의 자본주의는 노동과 합리적 경영이라는 토대위에 서 있다. 그러나 도박은 이러한 토대를 모조리 무시한다. 그리고 따지고 보면 현실의 자본주의도 건전한 노동과 합리적 경영을 필수 요소로 삼고 있지 않는 예가 허다하다. 이렇게 보면 인간의 사행심은 선천적인 인간본능이고 도박은 시간과 지역을 초월한 인류의 공통적 경험이라고 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 도박하는 인간, 도박하는 사회

 게임의 승부를 우연에 의해 결정지우는 도박이 기초하고 있는 전제조건은 ‘불확실성’이다. 불확실성이 인간의 삶에 기본적인 조건이 되어 있는 이상 우리는 언제나 도박자일 수밖에 없다. 비결정성과 변동이 사회적/경제적/개인적 생활에 내재해있으면서 지배적인 한, 인간의 대부분의 행위는 도박의 형태를 띠게 된다. 스포츠경기에서의 내기, 주식투자, 부동산투기, 정치판의 선거, 심지어 최근 핵실험을 둘러싸고 국제사회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북한의 벼랑외교도 도박이나 다름없다. 이렇게 본다면 좁은 의미의 도박과 현실사회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넓은 의미의 도박의 유사성은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다.

 이와 같은 도박의 사회학은 로또복권과 관련하여 들려오는 후일담이나 바다이야기 사건에서 더욱 확연하게 드러났다. 도박에 빠진 사람들은 도박을 부를 늘리는 방편이나 신분상승의 수단으로 삼는 경향이 많다. 우리 사회는 최근 양극화 현상이 더욱 심해짐에 따라 노동에 대한 정상적 보상과 이를 기반으로 한 상식적 삶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실직과 고용불안 등이 일상화되고 있고, 그 과정에서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과 계급 격차는 점점 커지고 있다. 하루아침에 생긴 성인오락실 1만5천이란 숫자는 목욕탕, 이발소, 미용실을 합친 것보다 많은 수라고 한다. 성인오락실의 시장 규모 연간 17조원, '합법적 도박'인 경마, 강원랜드카지노, 로또복권 등 5대 사행산업 매출액 15조원까지 더하면 우리나라 국민은 한 해에 자그마치 30조원을 도박으로 탕진하고 있다고 한다.

▣ 도박을 어떻게 할 것인가

 요컨대 이와 같은 도박의 사회구조적 측면을 무시한 채 전국토의 도박장화라는 우리 사회의 특이현상을 이권청탁과 비리현상 또는 조직폭력의 발호 등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건전한 노동에 대한 보상만으로는 생존이 불가능하리란 불안이 생계형 도박을 확대재생산하고 있다.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불확실성, 예견불가능성이 도박공화국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건전한 노동의 가치를 사회 구조적/제도적으로 보장하고 개인의 내면적 윤리를 확고히 하여 확실성과 예측가능성을 높여가는 방향으로 사회구조가 변화되지 않으면 도박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땀보다는 부동산을 비롯한 비노동적 영역에서 투기적 활동을 통해 부와 재산을 더 효과적으로 획득하고 있는 현실을 바꾸지 않으면 도박장으로 향하는 대열은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투기나 복권, 도박이 인생을 ‘역전’시킬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우리 사회의 불행은 ‘여전’할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단순도박은 형사처벌로 근절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개개인의 욕망을 통제해서 국가의 권위를 높이고 거기서 생긴 이익을 챙기는 행위는 국민을 속이는 행위로써 21세기 문화국가가 취할 도리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도박이 발생시키는 중독 등, 그 후유증을 개인에게 돌려서도 안된다. 중독자의 경우에는 생물학적 관점에서 볼 때 행위자가 선택한 행위라고 볼 수 없기 때문에 사회윤리적인 비난을 전제로 한 형벌 보다는 적절한 치료방법으로 대응해야 한다. 비교법적으로 볼 때에도 프랑스는 도박개장만 처벌하며, 독일은 공개된 도박, 오스트리아는 영업적 도박만을 처벌한다. 도박 영화, ‘타짜’도박의 사회구조적 측면을 보여주는 프리즘의 역할을 하는 동시에 도박자들에 대한 합리적인 대응수단을 찾아가는 길로 이르는 징검다리가 되기를 바라는 것은 지나친 기대일까.


편집 ㅣ 성균웹진 전미린 기자 (wjsalfls@skk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