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제인간의 현실화,「아일랜드」를 보고

  • 123호
  • 기사입력 2007.01.28
  • 취재 이수경 기자
  • 조회수 6802


글 | 법학과 김성돈 교수

■ 인간복제란 무엇인가

복제인간에 관한 문화적 상상력의 역사는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 서유기의 손오공, 메트릭스의 스미스 등은 우리에게 복제인간의 탄생을 예고한다. 우리나라 조선시대 옹고집전에도 이미 복제 옹고집이 등장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오해하고 있듯이 인간(개체)복제란 한 성인 개체로부터 그와 똑같은 성인 개체를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한명의 성인과 생물학적으로 동일한 유전자를 가진 아기가 ‘태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인간복제란 체세포복제배아를 착상시켜 약 10개월간의 임신기간을 거쳐 정상적으로 출산시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원본인간과 복제되어 낳은 인간 사이의 관계를 ‘서로 연령이 다른 일란성 쌍둥이’와 유사한 것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과학기술시대에 만들어진 최근의 영화, ‘아일랜드’에 등장하는 복제인간도 이러한 인간복제 개념을 전제로 깔고 있다. 복제인간의 인권문제를 다룬 영화, ‘아일랜드’는 나에게 ‘내가 만약 복제인간이라면’ 이라고 상상의 나래를 펼칠 기회를 주었다.

■ 영화, ‘아일랜드’와 인간복제 금지론의 대두

영화, ‘아일랜드’에서 복제인간은 원본인간에게 장기와 신체부위를 제공하기 위해 생존하고 있고, 희망의 땅으로 지칭되는 ‘아일랜드’로 추첨되어 뽑혀 간다는 것은 바로 자신의 원본인간에게 신체부위를 제공하기 위해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아일랜드의 허구성과 복제인간의 운명을 알게 된 링컨6(이완 맥그리거)와 조던2(스칼렛 요한슨)가 통제시설로부터 탈출을 시도하는 데서 영화, ‘아일랜드’는 시작된다.

영화, ‘아일랜드’가 복제인간의 인권문제를 다루면서 복제인간 금지론의 선봉에 서고 있는 듯하지만, 실제 인간복제 금지론의 전개는 이보다 훨씬 앞선다. 1997년 복제 양 ‘돌리’의 탄생이 발표된 이후 ‘인간 돌리’의 탄생을 막으려는 태도가 대대적인 반격을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통령, 유럽의회의 의원들, 세계보건기구(WHO)의 사무총장, 유네스코의 사무총장, 그리고 최근 국제연합의 총회의 법분과위원회는 인간의 복제를 위하여 복제기술을 사용하는 것은 인간성과 도덕성에 반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손상시키는 것이라는 태도를 표방했다. 이 때문에 오늘날 인간복제를 허용하는 법안을 가지고 있는 나라는 없다. 심지어 프랑스는 인간복제를 민족(집단)살해와 유사한 행위로 보아 30년까지의 징역형을 부과할 수 있는 세계 최강의 생명윤리법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 인간복제허용론의 반론

그러나 윤리학자들 뿐 아니라 생명과학자들 간에도 인간복제에 대한 찬반논의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국제사회에서는 전면적인 금지를 선언하는 ‘코스타리카 안’과 치료적 인간복제는 허용하도록 하는 ‘벨기에 안’이 목하 경합 중이다. 인간복제허용론을 주장하는 이들은 복제를 할 개인의 ‘권리’나 학문의 ‘자유’를 거론하기도 하고, 불임부부에게 생물학적 친자를 가질 수 있는 생식의 자율권 또는 희귀병이나 난치병의 치료라는 차원에서 인간복제기술의 유용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또 인간복제금지법안의 기초가 된 보호가치있는 법익으로서 가장 일반적으로 언급되고 있는 인간의 존엄성개념이나 인권개념의 모호성에 대한 비판도 없지 않다. 뿐만 아니라 인간이 수단으로 사용되어서는 안된다는 칸트의 공식도 노예제 배격에는 도움이 되었을지언정, 공리주의적 태도를 널리 수용해야 할 의학이나 생명과학의 문제에서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인식도 점점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태도를 취하는 입장에서는 인간의 도구화금지논거를 원칙대로 사용한다면 수혈 또는 산모를 살리기 위한 낙태도 금지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변한다. 더 나아가 도구화라는 개념 자체가 오늘날 대부분의 상업적 관계에서 이치에 닿지 않는 경우가 많을 뿐 아니라, 복잡한 동기와 의도를 가지고 행동하는 인간의 본성과도 조화를 이룰 수 없다는 지적도 설득력을 더해가고 있다. 이에 따르면 자신의 유전자를 존속시키기 위해, 아들이자 상속자를 만들기 위해, 노인이 되었을 때 의지하기 위해, 자신의 종족 혹은 인류의 멸종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자식을 가진다고 해도 그 태어난 자식을 수단으로 취급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 민주국가의 윤리적 근본원리

문제는 인간복제가 국제적 결의와 규제를 등에 업고 전 세계적으로 강력한 금지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그러한 결의와 규제가 지적인 지지와 기반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인간복제를 허용했을 때 인간존엄에 대한 도전이 될 수 있고, 인간의 도구화될 수 있는 위험을 경고하는 금지론의 목소리에 납득할 만한 근거를 찾아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인간복제 금지론에 혹시라도 도덕적 감성 내지 본능적 반응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마저 든다. 감각 내지 직관적 도덕철학이 나쁜 논증을 만들어내고 그 논증이 다시 인간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데 사용된다면, 그것 자체로 인간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공격행위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의 권리와 자유가 어떤 이들의 변덕에 따라 아니면 그들의 거북함이나 혐오감을 달래기 위해, 혹은 이미 편견이나 편협함을 지닌 그들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 제한될 수는 없다. 따라서 나는 법학도로서 합리적 이유가 제시되지 않는 한 인간의 자유는 축소될 수 없다는 것이 모든 민주국가의 윤리적 근본원리라는 점을 인간복제 영역에서도 예외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 불일치 영역과 이성적 법정책

따지고 보면 인간복제에 관한 윤리는 인간 배아의 생성 혹은 사용에 따라 결정될 성질의 것이다. 인간복제의 기술은 불법적인 배아의 복제를 초래할 것이며 수많은 배아의 낭비를 가져올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제 논쟁은 인간배아의 윤리적 지위에 관한 것이고, 칸트적 원리의 적용은 그 논쟁의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 오늘날 인간 배아의 윤리적 지위에 관한 문제와 관련하여 국제사회는 물론이고 우리 사회에서도 여전히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불일치는 잘못된 논증을 사용하였거나, 선입견이나 오해가 있거나 혹은 정확하지 않은 논거를 사용한 탓에 있는 것이 아니다. 세계관과 인생관의 차이, 가치의 다원성, 다양한 가치관의 갈등 때문이기도 하고, 가치가 가지는 추상성으로 인해 그것을 구체적인 상황에서 이해하고 해석하는 방식이 다르거나 다른 문화와 교육방식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금지되는 체세포배아복제를 경우에 따라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것이 전반적인 추세이듯이, 인간개체복제도 경우에 따라 허용될 수 있는 예외의 길을 열어둘 필요가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인간복제기술을 사용하고 그 의미를 가다듬기 위해서는 관련된 실천적·사회적·윤리적 문제에 대해 더욱 천착할 필요가 있다. 특히 개인이나 사회 또는 정책결정자들은 고찰할 필요가 있는 문제들을 명료하게 만들고 정의해야 한다. 특히 국가는 생식방법에 관한 그것을 금지할 절박한 이유가 없는 한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권과 결정권을 부여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국가가 그러한 절박한 이유를 제시하려면 대다수가 그 생각을 역겹고 혐오스러운 것으로 본다는 점을 제시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며, 그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걸려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 내가 만약 복제인간이라면

영화, ‘아일랜드’를 보고나면 십중팔구 인간복제 금지론자가 될 것이다. 그러나 내가 만약 복제인간이라면 인간복제 금지론자들의 목소리는 나의 마음에 크나큰 상처로 남을 것이다. 그들은 복제된 나의 정체성(개체성)에 물음표를 던지기도 하고, 자율적 의지가 결여되어 있다고 믿고 싶어 할 것이다. 하지만 일란성 쌍둥이인 다른 내 친구들이 그러한 지적에 대해 느끼듯이 나 역시 나에 대한 지나친 발언에 고약한 인종차별을 받는 것 같이 심한 모욕감을 느낄 것이다. 나 복제인간은 비록 원본인간과 유전자가 동일하긴 하지만 미토콘드리아 유전자, 자궁내의 영향, 그리고 성장기의 환경이 미치는 효과 등 때문에 신체모양 뿐 아니라 유전적 정체성이 원본인간과 전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제되어 태어난 나는 앞서 인생을 살아 간 원본인간의 존재로 인해 심리적으로 상당한 부담을 안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나도 그렇지만 나 이외 나의 원본인간을 아는 이들은 끊임없이 나와 ‘그’를 비교할 것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내게 난자제공자, 핵 제공자 그리고 복제된 배아를 자궁 속에서 키운 자가 있었다면 이들 중 진정한 나의 유전적 부모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도 심각한 고민에 빠질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나는 언젠가는 나이 원본인간의 요구에 따라 ‘아일랜드’로 이동해야 할 날이 점점 가까이 오고 있다는 생각에 밤잠을 설칠지도 모를 것이다. 더구나 나는 원본인간과 복제인간 사이에 뿐 아니라 인간세상 도처에 목적/수단관계가 널려있음을 깨달아 가면서 이 땅을 ‘절망’의 나락으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취재 ㅣ 성균웹진 전미린 기자 (wjsalfls@skk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