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을 준비하는 예비 법조인에게

  • 162호
  • 기사입력 2008.08.14
  • 취재 정동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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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경권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의료법무전담교수 · 법무법인 조율 변호사

변호사 생활을 하다보면 일반인들의 생각과 달리 법조문을 가지고 씨름하는 경우가 아주 많지는 않다. 법조인 또는 법률가라면 응당 법률의 개별 조항이나 법률해석에 정통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나 현실에서는 오히려 법률에 대해 일반인들보다 모르는 경우도 생기게 된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대개 송무(訟務)에서는 법률조항의 해석이나 법리(法理)를 다투기보다는 사실관계를 다투고 이를 입증해야 하는 경우가 많고 전문화의 추세로 인하여 자기 분야의 법률을 섭렵하는데도 시간이 모자라기 때문에 다른 특별법이나 일반법 및 법리에 소홀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이 점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근자(近者)에 법학전문대학원 일명 로스쿨설치법이 통과되어 내년부터 신입생이 입학하게 된다. 비싼 등록금, 학력과잉, 저소득층의 신분상승의 기회박탈이라는 여러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로스쿨제도를 실시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교육적 목적을 제외하고 법조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다양성을 가진 학생들을 법률가로 배출하여 법률서비스의 질을 높이겠다는 것이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그렇다면 법률서비스의 질을 구성하는 것은 무엇일까? 서비스정신, 고객의 요구에 대한 즉각적 반응 등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누가 뭐라 해도 정확한 법률해석과 적용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간과될 수 없는 것은 법률해석을 정확히 하기 위해서는 전제(前提)되는 사실관계를 정확히 파악하고 확정하는 것의 중요성이다.

사실 법조인들에 대한 의뢰인들의 불만은 법률해석에 대한 부분보다는 해석 및 적용의 근거가 되는 사실관계를 잘 알지 못하는 부분에 대한 것이 크다. 즉 많은 돈을 주고 변호사를 선임하였음에도 간단한 대여금이나 보증금과 같은 사안이 아닌 의료, 건축, 환경, 세무, 지적재산권 등과 같은 사건의 경우 의뢰인들이 변호사들에게 사건을 이해시켜 법률을 적용할 수 있도록 자세히 설명을 해 주어야 하는데서 비롯된 것이 크다.

얼마 전에 한 의뢰인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얘기를 들었다. 법원에서 오래 근무하셨던 변호사님의 명성을 믿고 의료사건을 맡겼는데 그 변호사분이 1심 판결이 내려질 때쯤 되자 “아 이제 좀 알겠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적지 않게 당황했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 변호사님의 오랜 실무경력을 믿어 의심하지는 않는다. 사실관계만 정확하게 이해하시면 법률의 해석, 적용은 물론 어느 정도 판결에 대한 예측까지 하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실관계를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변호사가 고생을 하고 의료소송을 포기한다는 점도 엄연한 현실이다. 의대만 졸업하였다고 의료소송을 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였다고 모든 의료소송을 잘 아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남보다 조금 더 나을 뿐인 것이다.

과거에는 변호사의 수가 적어 변호사들이 사건을 처리한 경험을 통해 전문지식을 늘릴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시장의 상황이 달라졌다. 의뢰인들은 이미 많은 경험과 그 분야에 대한 지식을 갖춘 변호사를 분쟁의 발생단계부터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상황에서 로스쿨을 가려는 사람, 로스쿨을 졸업하여 훌륭한 법조인이 되려는 사람들이 명심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다소 이상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로스쿨에 입학하기 위해 학과공부를 게을리하지 말라는 것이다. 로스쿨의 취지 자체가 학부 때의 지식과 경험을 제대로 살리자는 것이므로 이를 등한시하여 로스쿨 입학만을 최우선시한다면 설사 로스쿨에 입학한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끝일 뿐 남과 차별화된 자신만의 무기가 전혀 없게 된다. 변호사를 선발하는 로펌의 입장에서 볼 때 로스쿨 출신자들의 학부가 무엇인지를 당연히 보게 되고 그에 따른 일정 정도의 지식과 경험을 기대할 텐데 이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졸업 후 진로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앞으로 법조일원화가 전면적으로 실시될 경우 변호사 경력이 임관에 중요한 요소가 되기 때문에 어느 분야에서 어떠한 경험을 쌓았는지는 법관이나 검사로 임용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냥 연수원 공부만 죽어라 하는 것은 과거의 이야기다. 그렇다면 전문적 지식을 배양하는 것은 앞으로 임관을 바라는 법조인에게도 최우선의 지상과제가 된다. 반드시 학부를 졸업하자마자 로스쿨에 입학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조금 돌아가는 느낌이 있더라도 미리 준비를 한 후 로스쿨에 입학하는 것이 미래를 위해 더 유익할 수 있다.

로스쿨 3년 동안 이전의 사법시험 합격생들이 기본적으로 학부 3~4년+연수원 2년 동안에 배웠던 모든 법률지식을 배워야 하기 때문에 다른 것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더구나 변호사시험에 합격한다고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변호사로서 성공하기 위해서 아니면 임관을 하기 위해서는 동료 변호사들과 시험이 아닌 실무로 경쟁을 해야 한다. 시험은 지식에 국한되지만 실무는 지식, 경험, 인간관계, 말솜씨를 포함한 한 개인의 모든 능력이 투여된다. 어쩌면 검증의 도구가 객관적이고 정확하다면 가장 좋은 시험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실무의 세계에서 한가하게 전문지식을 습득하고 경험하도록 시간을 제공할 리 만무하다. 따라서 남과 차별되는 자신의 전문적 능력은 사실상 학부 때의 지식과 경험 및 로스쿨 입학 전의 사회경험이 전부가 된다. 이럼에도 로스쿨만을 꿈꾸며 학부의 소중한 시간을 낭비할 것인가? 판례나 외우고 실무 교재의 기재례나 잘 외워서 법관이 되거나 검사가 되는 시대는 지났다.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젊은이라면 바뀐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고 그에 대한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어느 사회나 법률가는 중산층 이상의 지위를 누릴 수 있는 매력적인 직업이다. 우리의 경우에도 법조인은 그 지위가 희소성이라는 경제원칙에 따라 다소 과대포장된 면이 있지만 여전히 사회적 지위와 일정 정도의 경제적 지위를 차지할 수 있는 괜찮은 직업이다. 21세기가 원하는 법조인이 되기 위해서는 법전이나 판례만 열심히 보는 것으로 부족하다. 외국어 습득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남과 차별되는 자신만의 영역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며 그 전제가 현재 자신이 전공하고 있는 학부의 과정을 충실하게 이수하여 지식과 경험을 충분히 쌓는 것이 최고의 준비일 것이다. 하늘의 별들만 쳐다보다 발 앞의 웅덩이를 보지 못해 빠지는 천문학자의 우(愚)를 범하지 말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