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조의 여왕' - 보험사기와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의 관계

'내조의 여왕' - 보험사기와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의 관계

  • 177호
  • 기사입력 2009.04.27
  • 취재 황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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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ㅣ 이경권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의료법무전담교수 · 법무법인 조율 변호사

여자의 인생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로 ‘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다’라는 말이 있다. 과거 부모님 세대에서 자주 쓰던 말로 ‘삼종지도(三從之道)’라는 말과 함께 결혼한 여자의 인생은 남편에 따라 달라진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원래 뒤웅박이란 박을 쪼개지 않은 채로 꼭지 부분을 파낸 바가지를 의미한다. 옛날 부자들은 쌀로 뒤웅박을 채웠고 가난한 사람들은 소여물로 채웠다. 즉 여자가 뒤웅박에 쌀을 채워 넣는 집으로 시집을 가느냐 소여물을 채우는 집으로 시집을 가느냐에 따라 그 인생이 달라진다는 의미로 이러한 관용구가 사용되었다.

내조의 여왕에 나오는 주인공 천지애는 남편인 온달수가 능력을 발휘해 뒤웅박에 쌀을 채워 넣기를 바랐으나,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채워 넣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자신이 돕기로 결정한다. 조연이란 주연을 보조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주연이 시원치 않으면 아무리 조연이 노력을 해도 성과를 내기가 어렵다. 암기력이라는 유일한 무기를 가진 온달수는 정글같은 사회생활에서 성공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원칙적으로 주무기가 좋지 않으니 제대로 되는 일이 없다. 이런 남편을 믿고 일생을 살려고 하니 천지애는 힘들다.

어느 날 천지애는 지하주차장에서 허태준과 접촉사고가 발생한다. 천지애는 합의금을 받아내기 위해 목이 아프다며 병원에 입원하겠다고 얘기한다. 실제로도 병원에 형식적으로 입원해 있으면서 본업인 온달수의 내조에 힘쓰다가 허태준이 병원에 온다는 연락을 받으면 급하게 병원으로 돌아가 환자 역할을 하는 행동을 반복하게 된다. 실제로 교통사고 때문에 사람이 다쳤다면 형법상 업무상과실치상죄가 성립해야 한다.

물론 사람을 다치게 할 고의로 차를 몰아 다치게 하였다면 폭행치상 또는 상해죄가 성립하겠지만 대부분은 운전을 하는 과정에서 부주의하여 사고를 일으키고 그로 인하여 같이 탄 사람이나 다른 차의 운전자 또는 동승자를 다치게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렇다면 교통사고를 일으킨 대부분의 사람들은 형법위반을 이유로 형사처벌을 받아야 함에도 주위에서 교통사고를 일으켜 형사처벌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사람은 흔하지 않다. 원칙적으로 일반적인 교통사고의 경우 처벌하지 못하도록 하는 특별법이 있기 때문이다.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이 그것이다. 이 법은 업무상 과실 또는 중대한 과실로 교통사고를 일으킨 운전자에 관한 형사처벌 등의 특례를 정함으로써 교통사고로 인한 피해의 신속한 회복과 국민생활의 편익증진을 위해 1981년에 제정되었다. 이 법에 의하면 소위 뺑소니나 중앙선 침범과 같은 11개의 중대위반사항이 아닌 경우에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표시를 할 경우 사고를 일으킨 자를 처벌할 수 없고, 가해차량의 운전자가 종합보험 등에 가입된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처벌을 할 수 없다.

이러한 규정은 대단히 이례적인 것으로 외국에서도 찾아보기가 어려운 특이한 법률이다. 왜냐하면 민사적으로 보험사에 의하여 피해자에 대한 배상이 이루어지는 것을 전제로 형사책임을 면제하도록 법률로 규정한 것으로 피해자의 처벌요구권, 고소권 행사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막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은 별 것 아니게 생각할 수 있을 수 있으나 법률가입장에서는 대단히 예외적인 것으로 헌법에 위반될 소지도 다분하다. 90년대에 위 법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이유로 위헌법률심판신청이 있었으나 5:4로 위헌판결을 받지 못하였다(헌법재판관 6명 이상이 위헌으로 판단해야 위헌결정이 가능하다). 그러다가 올 해 위 법이 중상해에 까지 고소권을 제한하는 것은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며 헌법재판소가 단순위헌판결을 내렸다.

따라서 이제는 교통사고의 피해자가 다친 정도가 심한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수사기관의 조사를 통하여 기소하여 처벌할 것인지 여부가 결정되게 되었다. 이러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있기 전까지는 종합보험에 가입한 사람이 교통사고를 일으킨 경우 가해자가 형사처벌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보험회사를 상대로 보상금을 얼마나 받아낼 수 있느냐가 피해자의 주된 관심사가 되었다.

불필요하게 병원에 입원하는 소위 ‘나이롱 환자’가 보험제도에서 문제되는 도덕적 해이의 전형으로 언론으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이러한 나이롱 환자가 생기게 된 이유는 병원의 이해관계와 더불어 형사처벌가능성을 통한 가해자에 대한 심리적 압박수단이 사라져버린 것이 부인할 수 없는 하나의 이유다. 우리의 천지애도 경미한 교통사고임에도 보상금을 받아보자는 이유로 불필요하게 병원에 입원한다. 그러나 천지애는 자신의 행위가 형법상 사기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 보지 않은 것 같다.

자동차보험회사로서는 피해자의 정당한 치료비에 대하여는 당연히 지급을 하지만 전혀 입원치료 또는 통원치료가 필요없다고 판단되는 사안에서 피해자가 불필요하게 입원한 후 여러 검사를 받고 많은 보상금을 요구하는 경우 소송을 통하여 다투거나 심한 경우에는 사기죄로 수사기관에 수사의뢰를 하기도 한다. 의외로 많은 분들이 잘못하면 사기죄로 수사기관에서 조사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교통사고를 이유로 쉬면서 보상금을 받자는 목적에 불필요한 입원생활을 자청한다.

주의할 점은 정도가 지나칠 경우 보험회사와 보상금의 범위를 두고 다투는 정도가 아니라 소송의 피고가 되거나 형사소송을 당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우리의 천지애는 가해자인 허태준이 자신의 사정을 알고 있는 줄도 모르고 입원환자 행세를 한다. 이러한 행위는 도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법률적으로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 대하여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천지애처럼 경솔하지 말고 주의하시라. 수사기관에 불려가 사기죄의 피의자로 조사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편집 ㅣ 성균웹진 황경주 기자 (icarus7@skk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