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나는 사건들

  • 189호
  • 기사입력 2009.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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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ㅣ 배병호 성균관대 법대법학전문대학원 교수

1988년 2월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선배 변호사 사무실, 국회도서관의 입법자료분석실을 거쳐 1991년 10월부터는 서초동에서 변호사로 활동했다. 현재는 2007년 9월부터 모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데 성균 웹진으로부터 원고 청탁을 받아 보니 생각나는 사건들이 있다. 주변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므로 불행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교훈이 될 수 있으면 한다.

20년 가까이 변호사 업무를 하면서 많은 사건을 처리하였다. 어느 당사자는 너무 고마워 큰 절을 올리려고 사무실로 왔는데 정작 만나니 쑥스럽다고 하였고, 어느 피고인은 구치소에서 국선사건변론에 대한 감사의 편지를 보내기도 하였다. 또 당사자나 가족이 결과를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서운함을 감추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 중에서 개인사무실을 연 후 맨 처음 맡은 이사용 곤돌라사건과 어렵게 수행한 ‘아리랑치기’사건을 차례대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991년 여름 서울 부근 큰 도시의 어느 고층 아파트에서 이사 짐을 실은 곤돌라와 그 집 남편이 함께 땅바닥으로 추락하여 사망한 사고가 발생하였다. 친척이 안타까운 사고 경위를 말하며 변호사를 추천하여 달라고 하여 사고발생지에서 개업하고 있는 유능한 동기 변호사를 추천하였다. 남쪽지방에 살고 있던 가족들이 그 변호사를 만나고 상담하였으나, 당시 그 변호사가 시의원 출마로 정신이 없고 손해배상사건 자체가 잔손이 많이 가는 일이라 유족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유족들이 변호사 개업을 준비하던 본인에게 일을 맡아달라고 하고 이를 거절하지 못하여 첫 사건이 되었다.

요즘과 달리 곤돌라로 이사 짐을 실어 내리던 시절이었기에 곤돌라를 옥상에 있는 고정시설에 안전하게 고정시켜야 했는데, 이를 제대로 하지 않고 이삿짐센터 직원이 곤돌라에 이사 짐을 싣는 도중에 곤돌라가 흔들리자 마침 옆에서 작업을 도와주던 망인이 이를 잡았으나 망인도 곤돌라와 함께 추락하였던 것이다. 인부와 망인이 사망하자 이삿짐센터 사장과 아파트관리업체대표도 산업안전보건법위반으로 처벌되었다.

사고 현장을 보기 위해 사고발생 아파트까지 갔고 거기서 망인의 처를 만났다. 망인의 처는 그 사고로 이사도 못가고 그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다. 처로부터 다시 한 번 사고 경위를 듣고 남편이 노후를 대비하여 취득한 자격증 등도 챙겼다. 민사상의 손해배상사건의 핵심은 손해배상책임의 발생과 손해배상범위가 요체인데, 사고 발생책임에서 망인의 과실유무와 정도가 쟁점이었다. 다행히 1심법원과 항소법원 모두 위 망인의 과실이 없음을 인정하여 유족들의 고통을 들어주었다. 황당한 사고로 남편을 잃은 망인의 처가 어린 자식들을 잘 기르고 있고, 이사 도우미로 왔다가 사고를 목격한 망인의 친구가 보살펴주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리랑치기사건은 서울지방변호사회 회관에서 무료법률상담을 하던 중 인근의 시의원이 주민과 함께 찾아와 맡게 된 것이다. 서울시 소재 어느 시장 부근에서 술에 취한 남자가 이른바 ‘아리랑치기’ 또는 ‘퍽치기’를 당하였고 주위 사람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위 피해자를 부근에 있는 시립병원에 입원시켰으나 피해자가 그 다음날 병원에서 사망한 것이다.

1심법원에서 피해자의 유족들은 가해자로 지목된 피고들(여러 사건으로 실형 복역 중이며 변제능력이 없음)에게는 승소하였으나 시립병원에 파견 나온 담당 의사들과 시립병원을 운영하던 대학병원 및 시는 책임이 없다고 하여 패소하였다. 이에 항소하였으나 항소심을 맡은 변호사가 사임을 한다고 하여 법률 상담을 하러 온 것이었다.

망인의 처가 가지고 온 1심판결문을 읽어 보니 흠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시립병원의 의사들이 의사로서 최선의 진료를 하였으므로 망인의 사망에 대한 책임이 없다는 것이었다. 의사들의 과실을 추궁해야 하는 의료사고로서 이를 입증하기가 만만치 않고 더욱이 항소심을 수행하던 변호사마저 사임계를 내었다고 하니 경력이 일천한 본인도 할 말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시의원과 망인의 처가 살고 있는 지역의 변호사들에게 먼저 상담하였으나 서울로 가라고 하였고, 서울 변호사들에게 의뢰하니 그들도 마찬가지라고 하여 변호사회관까지 왔다고 하였다. 더욱 엄두가 나지 않아 정중하게 선임을 거절하니, 그들은 적지만 착수금을 주는 사건을 변호사가 거절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호소를 하였다.

이에 느낀 바가 있어 사건을 수임하여 재판기록을 복사하고 검토하였다. 해독하기 힘든 의료일지 등을 군의관으로 근무하던 선배에게 찾아가 한글로 받아쓰고 의사로서의 견해를 물었다. 그러자 시립병원에 행려병자가 많아 의사와 간호사들이 치료를 소홀히 한 것 같다는 말을 하고 증언은 할 수 없다고 하였다. 이에 자신감을 가지고 연구를 하고 2번에 걸친 감정 등으로 의료과실을 입증하여 어렵게 승소하였다. 대법원도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을 그대로 인정하였다.

15년도 넘는 과거 사건들에 관한 법률이야기이나 그 시절 느꼈던 긴장은 지금도 새롭다.




편집 ㅣ 성균웹진 황경주 기자 (icarus7@skk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