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법 공부는 legal mind를 배양하는 공부

  • 203호
  • 기사입력 2010.05.31
  • 취재 조재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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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노명선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국가가 체제를 정비하고, 형벌권의 행사를 국가가 독점하게 되면서 피해자의 사적인 보복을 금지하게 되었다. 그런 만큼 국민은 수사를 통해 범인을 검거하고, 실체적 진실 을 명백히 하여 범죄자를 엄정히 처벌함으로써 피해자의 아픔을 대신하고, 범죄를 통해 잃어버린 평화를 회복하는 것이 정의라고 일컬어 왔다. 이러한 범죄와 형벌을 규율하 는 기본법이 형법과 형사소송법이다. 필자의 감각으로는 형사법은 아직도 낯설고 딱딱해 보이지만 법률과목 중 여느 과목보다도 논리적이어서 속칭 legal mind를 배양하는 데는 형사법만한 과목이 없는 것 같다.

로-스쿨이 처음 도입되고 특히 비 법학부 출신이 많은 우리 학교에서는 3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법학과목을 이수하고, 변호사 시험에 모두 합격할 수 있을까? 우려하는 목 소리가 높다. 그러한 학생들에게는 형사법 과목에 좀 더 관심을 가져달라고 주문하고 싶다. 형사법은, 우리 곁에서 매일 일어나고 있는 실제 사례를 가지고 법률적 사고를 통 해 사실인정을 하고 쟁점을 발굴하고, 이를 논리적으로 해결해 가는 것이어서 만약 사회일반인의 사고에 비추어 합리적 의심이 남는다면 당사자들이 설복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술에 취한 남자가 어떤 여인으로부터 고소를 당했다. 고소내용은“피고소인으로부터 여관으로 끌려가 강간당했다”는 것이다. 영문을 모른 채 술에 취한 남자 는 여관에서 잠을 자다가 경찰서로 연행되었고, 조사를 받았는데 옆에서 고소인은 울고 있다.

피고소인으로서는 어제 저녁 일을 기억해 보려고 하지만 술에 취해 기억이 없다. 이런 사실이 직장에 알려지면 해고될 것이 뻔한 피고소인의 입장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최 선일까. 1)먼저, 강간죄는 친고죄니까 피해자에게 무조건 잘못했다고 하면서 용서를 빌고 고소취소를 받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2)아니면 범행을 부인하거나 술에 취해 전 혀 기억할 수 없다고 변명해 볼 것인가. 고민 끝에 첫 번째 방법을 택하게 되면 결국 돈은 좀 들겠지만 사건은 조용히 무마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합리적 의심은 여전히 남는다. 정말로 자신이 강간했을까. 고소인은 여관까지 조용히 끌려가고, 여관 주인은 몰랐다는 말인가.

둘째 방법으로 가면 그에 따른 불이익은 감수해야 한다. 고소인은 억울하다고 난리피울 것이고, 그 과정에서 직장에서 해고되고, 가정도 명예도 손상이 클 것이다.

고소사건에 대해 최종적인 결정권자인 검사의 입장에서는 첫째의 경우이건, 둘째의 경우이건 합리적인 의심이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수사를 통해 명확히 하지 않으면 안 된 다. 고소 취소되었다고 하여 합리적인 의심이 남아 있음에도 공소권 없다는 이유로 종결해 버린다면 피고소인이 선뜻 국가기관의 처분을 신뢰하지 못할 것이다.

피의자를 강간죄로 처벌하기 위해서는 그에 필요한 실체법상의 요건 즉, 행위가 형법상 구성요건에 해당하고, 위법한지, 행위자는 행위 당시 책임능력은 있었는지를 순차적 으로 따져보아야 한다. 이를 범죄의 3요소라고 한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서 수사기관에서는 현장을 조사하고, 범행의 도구나 정액 등 객관적인 증거는 물론 목격자라고 할 수 있는 여관 주인이나 종업원을 불러 조사할 의무가 있다. 전자를 규율하는 것이 형법이고, 후자를 규율하는 것이 형사소송법이다.

본 사안에서 검사는 고소인과 피의자의 진술이 엇갈리고 있으므로 누구의 진술이객관적인 상황과 더 일치하는지를 가려 진술의 신빙성을 따져 보아야 하고, 부족하다면 여 관 관계자 등 목격자를 불러 그 들 진술의 진위여부를 명백히 하여야 한다. 만약 목격자인 여관 종업원이 어제 저녁 두 사람은 사이좋게 여관에 들어왔고, 중간에 여자가 시 원한 물까지 달라고 주전자를 가지고 내려 왔다거나 야한 비디오를 틀어 달라고 했고, 남자는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었다고 진술하고 있다면 이러한 객관적인 상황에 반하는 고소인의 진술은 신빙성이 부족하다고 판단된다. 그렇다면 수사관은 고소인과 여관 종업원을 대질조사하면서 고소인의 진술 중 모순되는 부분 하나하나를 지적하고 반문할 것이다. 만약 고소인의 고소가 허위라면 고소인은 무고죄로 처벌되어야 한다. 필자가 울산지검에 검사로 재직하면서 중년 회사원을 상대로 거금을 합의금조로 빼앗아 간 속 칭 꽂뱀(?)사건을 예로 들어 본 것이다.

이와 같이 관계자를 상대로 묻고 답하는 과정에서 논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가는 것이 곧 법적인 사고이고, 이러한 문제풀이에 익숙해가는 것을 legal mind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전 총리의 뇌물수수사건에 대하여 무죄선고 되어 항간의 주목을 받았다. 아직 1심판결에 불과하므로 항소나 상고를 통해 충분히 불복절차가 이루어질 것으로 안다. 판 사와 검사 간의 견해 차이는 있을 수 있다. 일단 1심 무죄가 선고되었다는 이유만으로‘검사가 잘못 기소했다’거나‘입증이 부족했다’고 할 것만은 아니다. 신이 아닌 이상 판사 도 잘 못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한쪽은 뇌물을 주었다고 하고, 다른 한쪽은 뇌물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어느 진술을 믿어 줄 것인가는 신빙성의 문제이고 , 누구의 말에 모순이 있는지, 누구의 말을 더 믿어 줄 것인지는 법관 개인의 양심에 따를 것이 아니고, 법의 양심 곧 상식적인 수준에 의해 판단하여야 한다. 향후 항소심, 상 고심을 통해 법적논쟁이 이루어질 것이지만 legal mind에 입각한 법원의 현명한 판단이 있기를 기대해 본다.

 


편집 ㅣ 성균웹진 조재헌 기자 (jjh954@skk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