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배심제도란 무엇인가

  • 239호
  • 기사입력 2011.11.28
  • 취재 최예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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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노명선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최근 국회에서는 검찰의 공소권에 대한 국민적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견지에서 미국의 대배심 제도에 대한 관심이 높아 가고 있다. 관련해서 김학재 의원 등 야당의원들은 가칭 「검찰시민위원회법(안)」을 의원입법의 형태로 국회에 상정한 바 있다.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정치적 사건이나 고위공직자 등 주요인사에 대한 정치자금법 위반이나 뇌물죄에 대해 법원의 무죄선고가 연이어 터지자 이를 검찰의 공소권 남용으로 규정짓고, 형사재판에 배심원 제도(소배심)가 도입 되었듯이 검찰 수사과정에도 기소여부를 심사하는 국민적 합의기구(대배심)를 만들자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러한 대배심 제도는 영국의 ‘권리장전(the Magna Carta)'에서 기원을 두고 있는데, 초창기 부당한 기소로부터 시민을 보호하는 기능을 다해 왔으며, 특히 미국으로 건너와서는 영국 지배계급의 강권통치, 사법제도 장악과 부당한 기소로부터 시민을 보호할 수 있는 ’방패‘로서의 기능이 강조되었다.

  1791년 채택된 미국 수정헌법 제5조와 많은 주의 헌법에서는 대배심에 의한 기소를 거치지 않고는 누구도 중죄에 대해 형사소추 되지 않는다는 규정을 명문화하고 있다. 연방과 컬롬비아 특별구 등 20개주에서는 사형 또는 1년을 초과하는 구금형에 처해지는 중범죄에 대해서는 대배심에 의한 정식기소를 필요적인 절차로 하고 있다.

  대배심 절차는 기본적으로 수사절차라는 점에서 재판 절차인 소배심 제도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래서 대배심 절차에서는 비공개로 진행되며, 공판절차에서 인정되는 전문법칙 등 다양한 증거법칙도 적용되지 않고, 피의자는 증인으로 소환되지 않는 한 절차에 참여할 권리가 없으며 원칙적으로 증인의 변호인도 절차에 참여할 수 없다.

  대배심의 배심원 선발절차는 두 가지가 있는데, 연방의 경우 선거인단명부 등에서의 무작위 추출 방식에 의하고 있고, 일부 주에서는 배심원선정위원회에서 위원들의 추천에 의해 선발되는 ‘keyman system' 을 인정하고 있다. 매 사건마다 새 멤버를 구성하는 소배심과 대배심원은 통상 18개월의 임기제로 운영하고 있고, 그 인원도 소배심이 12명인데 비해, 대배심은 연방의 경우 16명에서 23명으로 구성하고 있다.

  이러한 대배심은 전통적으로 검사의 기소안(bill of indictment)에 대한 승인을 통하여 피의자에 대한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권한과 검사의 기소안과 무관하게 독자적으로 범죄혐의자를 기소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전자가 대배심의 전형적인 기능으로서 대배심은 이를 통하여 검사의 기소권한에 대한 적절한 통제를 가할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한편, 대배심 절차는 원래 검사의 기소승인 신청과는 무관하게 독자적으로 범죄혐의자에 대한 증언확보 및 증거수집을 거쳐 피의자를 기소할 수 있는 권한도 인정되었다. 미국의 식민시대 초기에는 영국 식민 관리들의 부패범죄 등에 대하여 영국 경찰이 수사를 태만히 하는데 대한 견제수단으로서 미국 내 영국군인 등 관리들의 범죄에 대하여 대배심의 독자적인 기소권한이 광범위하게 활용되었다.

  통상 증인소환은 대배심의 소환장(subpoena)에 의하는데, 검사의 신청에 의한 법원의 소환장 이행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법정모독(contempt)으로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는 점에서 강력한 수사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을 정도이다.

  현재 미국에서 대배심 절차에 대한 논의는 대배심 절차가 갖는 이러한 수사기능으로서의 장점 이외에 검사에 의한 대배심 주도 현상에 대한 비판이 일고 있다. 대배심 절차가 부당한 기소로부터 피의자를 보호할 수 있는 “방패”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게 되어 더 이상 검사의 기소권한에 대한 통제수단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대배심 절차가 효용성을 가장 크게 발휘하고 있는 조직범죄 등 화이트칼라 범죄의 경우에도 사안이 복잡하고 관련된 쟁점에 대해 일반 시민으로서 이해가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또한, 대배심 절차가 갖고 있는 각종 강제수단에 의하여 피의자나 용의자의 성격을 갖는 증인의 절차적 권리가 제대로 보장될 수 없다는 단점도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비판을 단초로, 1859년 Michigan 주를 시작으로 범죄에 대한 기소를 대배심에 의한 정식기소(indictment)로 할 것인지 또는 검사에 의한 기소(information)로 할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주가 늘어나고 있고, 대배심의 원조인 영국에서는 1933년에 이르러 대배심 제도 자체를 폐지하게 되었다.

이러한 대배심 제도를 우리나라에도 도입하기 위해서는 대배심제도가 갖는 장점이 무엇인지, 이를 도입한다면 어떠한 문제점이 있는지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검찰은 유죄에 대한 확신이 없는 한 기소하지 않고 있다. 국가의 형벌권은 신중히 행사되어야 하며, 이는 검사의 준사법관적 지위나 객관의무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보면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통상재판사건에 대한 무죄율이 급증하고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10% 미만으로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사법 선진국가에 비해 월등히 낮은 수준이다. 오히려 피해자의 재판청구권이나 국가형벌권 실현이 방해받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지적도 있을 정도이다.

검찰권의 행사도 진정한 의미에서 국민으로부터 주어진 권한인 만큼 더 이상 국민적 통제로부터 예외일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하여 현행 형사사법 시스템을 전폭적으로 뒤흔들 수도 있는 대배심 제도와 같은 제도를 갑작스럽게 도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검사의 기소는 법원의 유무죄 재판을 통해 사법통제를 받고 있다. 정치인에 대한 몇 사건, 법률적인 견해 차이에 의한 몇 개의 무죄 사건을 이유로 검사의 기소를 통제하려 한다면 검사의 공소권 행사는 더욱 위축될 수 밖에 없다.

차라리 검사장에 대한 주민 선거제도나 검찰총장에 대한 신임제도를 통한 검사의 인사제도의 개편 등과 같은 방법으로 사법의 주권재민을 실현할 수는 없을까 고민해 본다.

편집 | 최예림 기자 (cheyeerim@skk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