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만원 돈봉투의 진실게임

  • 244호
  • 기사입력 2012.01.16
  • 취재 이해오름 기자
  • 조회수 4488

글 : 노명선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최근 뉴스에 의하면 한나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300만원이 든 돈 봉투를 받았다가 돌려줬다는 某의원의 폭로가 기폭제가 되어 검찰수사가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돈 봉투를 돌린 사람으로 지목된 상대방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어서 결국 진위여부는 수사를 통해 밝혀지겠지만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이러한 공개적인 폭로도 수사기관의 수사의 착수 근거가 된다는 점이다.

이 처럼 수사착수의 근거가 되는 것을 전문용어로 수사의 단서(端緖)라고 하는 데 이러한 단서에는 별도의 형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대개는 피해자가 제기하는 고소장이나 국가기관의 고발장, 변사체의 검시결과나 현행범의 발견 등이 수사의 단서가 될 것이다. 그렇지만 언론을 통한 폭로전이나 잡지에 게재된 기사내용, 항간의 소문이나 근거도 없는 풍문도 때로는 좋은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일간신문이나 잡지의 광고 중에 ‘평잔, 00만원’이라는 광고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여기서 ‘평잔’이라 함은 은행계좌의 평균잔고를 의미하고, 당좌계정을 개설하려는 사람에게 은행은 일정한 정도의 평균 거래실적과 잔고를 요구하고 있다. 예금주가 수표를 발행하더라도 결제할 능력이 있는지 그 신용력을 평가함에 있어서 일응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것이 이러한 평잔인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사체업자가 허위로 만들어 준다면 은행을 속이는 행위가 되는 것이고, 결국 예금주의 악의적인 수표 부도행위를 도와주는 꼴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필자는 이러한 사채업자의 평잔 쌓아 주는 행위를 수표 부도의 방조죄로 단속한 적이 있다.

기업의 내부고발이 꾸준히 늘어 가고 있다. 이러한 내부 고발은 대다수 회사로부터 불이익을 받거나 개인적인 불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회사의 부적절한 거래나 비자금조성 행위를 수사기관에 슬쩍 흘려주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대형호텔에서 직영하는 캬바레의 종업원이 일일 매출 장부를 가지고 나와 오너 사장의 탈세사실을 폭로한 사례도 있었다. 필자는 퇴직한 사장으로부터 근무했던 골프장의 비자금 조성 자료를 건네받아 수사를 한 적이 있다.

「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제66조와 같은 특례조항에 의해 이러한 내부 고발자 자신의 가담 행위에 대해서는 정책적으로 용서해 주고 있다. 나아가 형법이나 형사소송법으로도 타인의 범죄에 대해 사법기관에 정보를 제공하는 등으로 도움을 주게 되면 자신의 형벌을 감경 또는 면제해 주자는 개정 법안이 국회에 상정되어 있다. 이를 사법협조자형벌감면제(司法協助者刑罰減免制)라고 한다.

실무상 검사는, 거악을 척결하기 위해 범죄자와 본의 아니게 협상(?)을 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조직의 중간보스로부터 수괴에 대한 범행일체를 제공받고 중간보스를 불 입건하는 사례는 많다.

그러나 말단회사원이나 경리부장에게 ‘너를 입건하지 않을 테니 오너사장이 지시했다고 자백해라’고 요구하거나 ‘회사의 비자금 조성을 눈감아 줄 테니 그 돈을 공무원에게 뇌물로 주었다고 자백해라’고 요구하면 어떻게 될까. 그런 경우 자신이 구속되지 않기 위해서 또는 회사를 살리기 위해 허위로 자백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자백은 임의성이 없는 진술로서 증거로서의 자격 즉, 증거능력(證據能力)을 배제하고 있는 것이 우리 형사소송법의 기본원칙이다.

이러한 자백 배제에 대비해서 수사관은 좀 더 결정적인 물증을 요구하겠지만 이러한 물증 또한 잘못된 자백에 의한 파생증거라는 이유로 증거능력이 부정될 수 있다. 이를 독수독과(毒樹毒果)원칙이라고 한다. 독 나무에 열리는 독 열매는 예외적인 경우가 아닌 한 독이 있어서 먹을 수 없듯이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필자는 재직시절 신용카드를 할인해 준다는 광고를 단서로 삼아 신용카드가맹점을 압수수색한 결과 압수한 장부로부터 구청 공무원에 대한 거액의 뇌물이 건너간 정황을 잡고 그에 대해 진술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신용카드 할인행위에 대해서는 양형기준이하로 선처해 준 적이 있다. 이는 형사소송법 제247조에 의해 검사의 합리적인 재량의 범위 내에 있다고 판단하였다. 그 이후 그 가맹점 주인은 끝내 자신의 뇌물공여 사실에 대해서 자백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뇌물 공여행위에 대해서 결정적인 자료를 제공함으로써 톡톡히 보답을 해 주었고, 20년이 지난 지금도 만나면 서로 반갑게 인사하고 있다.

수사기관에게 범죄의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을 속칭 ‘끄나풀’이라고 하고, 이러한 정보원은 특별히 관리되기도 한다. 알고 보면 이러한 끄나풀은 전문적(?)인 범죄꾼인 경우가 많다. 자신이 마약을 취급하면서도 다른 조직의 마약 판매사실을 정보제공이라는 명목으로 흘려주고 있다. 유명학원가의 족집게 강사보다 더 정확히 찍어 주기 때문에 수사관은 간단히 실적을 한건 올리고, 정보원은 수사관의 백(back)을 믿고 자신의 마약을 당당하게(?) 판매한다. 한마디로 정보원과 수사관은 상호 공생관계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부적절한 관계가 지나치면 수사관과 정보원이 짜고 하는 함정수사가 되고, 이는 위법한 수사가 되어 결국 검사의 공소제기자체가 위법하게 될 것이다. 이 경우 법원은 공소를 기각하고 있다. 검사에게는 수사관들의 이러한 위법행위를 정확히 판단할 줄 아는 혜안(慧眼)이 요구되는 국면이다.

범죄의 정보는 대개의 경우 기업이나 범죄조직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하여 공식적으로 찾아내고 있다. 그러나 소수이지만 쓰레기통 같은 지저분한 곳에서 흘러나오기도 한다. 필자가 처음 검사생활을 시작할 당시 범죄꾼으로부터 정보제공을 받고 수사를 개시할 것인지 여부를 고민하고 있을 때 선배 검사로부터‘원래 정보는 쓰레기통에서 나온다’는 고언(苦言)을 들은 적이 있다. 비록 진흙탕과 같은 검은 세계의 범죄정보라도 검사가 잘 요리하면 수면 위로 부각시켜 큰 사건으로 화려하게 부활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총선을 앞 둔 미묘한 시점에서, 몇 년 전의 돈 봉투사건을 폭로한 것에 대해 그 동기나 배후를 둘러싸고 말들이 많다. 동기가 의심스럽다는 지적도 있고, 용감한 폭로라는 시각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수사를 개시한 검사로서는 전당대회를 앞두고 돈 봉투가 과연 살포되었는지, 누구에 의해 살포 되었는 지라는 정당법(政黨法)상의 위법사실 여부 그 fact만을 바라보고 수사하면 된다. 수사의 단서가 무엇이든 일단 수사를 개시한 이상 그 사건의 해결은 검찰의 몫이고, 국민은 그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 잘만하면 차제에 정치판의 선거풍토를 새롭게 하는 시금석이 될 수도 있다.

편집 | 이해오름 기자 (lhor70@skk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