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사범이 선처되는 사례(?)

성폭력사범이 선처되는 사례(?)

  • 262호
  • 기사입력 2012.10.16
  • 취재 이해오름 기자
  • 조회수 5193
무제 문서
: 노명선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최근 성폭력범죄가 극성을 부리고 사회치안이 불안하다는 여론이 비등하다. 그 이면에는 법관의 온정적인 양형도 도마 위에 올라 있다. 강간사범에 대해 초범이라는 이유로 석방하거나 재범인 경우에도 너무 낮은 형을 선고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폭력 사범의 경우에는 형법범에 비해 법정형을 대폭 상향조정하고, 일정한 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등 처벌상의 특례를 정한 「성폭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을 마련하고 있다. 동 법률에 의하면 타인의 주거에 침입하여 부녀를 강간하면 5년 이상의 징역 또는 무기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동 법률 제3조제1항). 미성년자나 정신장애자를 상대로 한 강간범에 대해서는 특히 7년 이상의 징역 또는 무기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동 제6조제1항). 성폭력범죄의 피해자가 미성년인 경우에는 당해 피해자가 성년에 달한 날부터 공소시효가 진행한다거나(동 법률 제20조제1항), 13세 미만의 여자 및 신체적인 또는 정신적인 장애가 있는 여자에 대한 강간 등 성폭력 사범에 대해서는 아예 공소시효를 폐지하고 있다(동 제3항). 성폭력 사범에 대해서는 엄정한 형의 선고와 집행이 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사회적인 합치가 이루어진 셈이다. 그런데 많은 경우 판사들의 생각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법률에 정한 형량을 감경하는 사유로는 형법상 자수(형법제52조제1항)나 미수범(동 제25조제2항) 등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사유가 없음에도 판사가 재량껏 감경할 수 있는 조항이 있다. 즉, 형법 제53조는 “정상을 참작할 사유가 있으면 형을 감경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 데, 이것을 작량감경(酌量減輕) 규정이라고 한다. 피고인에게 ‘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다고 판단하면 법정형을 감경할 수 있다는 것이다. 판사가 재판하다보면 불쌍한 피고인도 있고, 선처해 주고 싶은 사안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법률 상 아무런 기준이 없고, 감경사유를 판결문에 기재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니(대법원 판결) 위 규정을 적용하는 기준은 더욱 모호해 지고 있다는 것이다. 작량 감경할 것인지, 아니면 정해진 법정형대로 선고할 것인지는 오로지 판사의 의중에 따라 판단되기 때문에 피고인들은 마지막까지 판사의 입만 쳐다보고 있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이러한 성폭력사범을 석방하는 방법으로 이 규정이 남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형법은 징역형을 선고하면서도 형의 집행을 유예하고, 바로 석방하는 집행유예 제도를 두고 있다. 다만 이러한 집행유예는 3년 이하의 징역형을 선고하는 경우에 한해서 가능하다(형법 제62조). 그래서 법정형이 5년 이상이거나 7년 이상인 이러한 성폭력 사범에 대해서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집행유예가 불가능하다.

그런데 대법원종합법률사이트에 게재된 판례(2011. 12. 30. 기준) 중 작량 감경을 적용한 사안 약 500여건 중, 법정형의 하한을 낮추어 집행유예로 석방한 경우가 약 200여건이었다. 작량감경 사례 중 약 40%가 집행유예가 불가능한 범죄를 감경하여 석방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다는 결론이다(나머지 300여건 약 60%는 법정형 이하로 낮추어 실형을 선고한 경우이었고, 그 중에는 법정 최소형보다 4년 이상을 감경한 경우도 상당수 있었다).

위 자료에 의하면 작량감경은 주로 뇌물사건 중에서도 거액의 뇌물사건, 강도치사, 강간치상, 뺑소니 차량, 보건범죄, 성폭력사범 등에 주로 적용하고 있다.

특히 성폭력 사범에 대해 피고인이 출소 후 흉기를 휴대하고 강도강간한 재범 사안에 대해 단순히 “반성하고 있다”는 이유로 작량감경하거나(부산, 2009년), 흉기휴대 강간사건에서 “피해자에게 상당한 경제적 도움을 주었음에도 자신을 배신하였다는 이유로 범행을 저지른 점을 참작”한 사안(수원, 2009년), 강도강간사건에서 교도소에서 “출소한 이후 3년 동안 범행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이를 적용한 사례(대구, 2009년) 등은 선뜻 이해하기가 어렵다.

“강간 이외 신체상의 피해를 주지 않았다”는 사유는 강간이외 상해가 없으면 강간상해죄가 아닌 강간으로 의율하면 그만이다. 상해를 가하지 않은 것이 강간죄의 감경사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징역 7년 이상의 범죄에 대해 “술에 취해 심신미약”이라는 이유로 3년6월로 줄인 다음 재차 “술에 취해 우발적 범행”이라는 이유로 작량 감경한 사례 또한 이해하기 어렵다.

이와 같이 아무런 기준 없이 형을 줄일 수 있는 작량감경 제도를 두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 뿐이라고 한다. 영미법계에서는 아예 없고,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형법은 법률상 명시된 요건 하에서만 법정형 보다 낮은 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하고 있을 뿐이다.

최근 성범죄가 사회적으로 커다란 이슈가 되면서 법원의 가벼운 처벌관행이 문제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판사의 재량에 따른 이러한 ‘작량감경’도 그에 한 몫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작량감경제도는 폐지되거나 특별한 사유에 한하여 적용기준을 명확히 한하여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기준이 없이 “정상을 참작할만한 사유”라는 사유만으로는 더 이상 안 된다.

누구는 이 조항을 적용하여 석방해 주고, 누구는 적용을 거부하여 중형을 선고하게 되면 형법이 기본원칙으로 내세우는 형벌의 예측가능성이 떨어지게 된다. 특히 최근 대법원에서 양형기준을 정해 시행한 이후 변호사들도 걱정이 많다고 한다. 자신이 선임된 사건에 대해 작량 감경조항을 적용해 줄 것인지, 아니면 양형기준대로 중형을 선고할 것인지 전혀 예측할 수 없고, 최종적으로 판사의 판결이 나 봐야 안다는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판사의 기준이 더욱 모호해 지고 있다는 것이다. 법률의 전문가라고 하는 변호사들이 판결내용을 예측할 수 없다면 구속되어 있는 피고인으로서는 예측 가능한 전관예우(?) 변호사를 찾아갈 수밖에 없다. 돈을 싸들고 담당 판사와 친한 변호사를 찾아가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죄형법정주의(罪刑法定主義)가 아닌 죄형법관주의(罪刑法官主義)가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진설명:사단법인 한국 포렌식 학회에서 제자들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