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된 차량을 파손하고 도주하면 무슨 죄가 될까

  • 266호
  • 기사입력 2012.12.16
  • 취재 이해오름 기자
  • 조회수 8655
무제 문서
: 노명선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아파트나 학교 주차장에 자동차를 주차해 놓았다가 일을 보고 나와 보니 멀쩡한 차량이 찌그러져 있고, 누가 했는지 연락처도 없다면 얼마나 황당할까?

주차된 차량을 고의로 파괴한 경우에는 형법상 재물손괴죄(제366조)에 해당하지만, 차량운전 중에 과실로 파손하였다면 형법상 과실 재물손괴죄는 처벌규정이 없다. 또한 주차장은 도로교통법 상의 도로가 아니므로 도로교통법 상 재물손괴죄로도 처벌할 수 없다(도로교통법 제181조 참조). 결국 주차장에서 운전 중 다른 차량을 손괴한 경우에는 형사 처벌할 수 없게된다.

한편 대인사고의 경우에는 사고 후 그대로 도주해버리면 구호조치의무 위반으로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있다(도로교통법 제148조).

특히 피해자가 사망한 경우에는 「특정범죄 가중 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서 특히 가중처벌하고 있고(동 법률 제5조의3), 피해자를 다른 장소로 옮겨놓고 도주한 경우에는 사형 또는 무기징역형 까지도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이외 도로교통법은 대인사고이든 대물사고이든 모든 교통사고의 운전자에게 사고 후 즉시 현장에 있는 경찰관이나 가까운 경찰관서에 사고내용 등을 신고하도록 요구하고 있어서 신고의무위반에도 해당하게 된다(도로교통법 제54조제2항).

따라서 교통사고를 내고 사람이 다쳤는데도 그대로 도주해버리면 구호조치를 하지 않은 특가법 상의 도주차량과 도로교통법상의 신고의무를 위반한 두 개의 죄가 성립하고, 양 죄는 실체적 경합이 되어 중한 죄인 특가법위반 형의 1/2까지 한 번 더 가중 된다(대판 1992. 11. 13. 선고 92도1749).

이러한 구호조치의무나 신고의무 위반죄는 교통사고를 발생시킨 운전자에게 과실이나 위법, 유책의 유무를 따지 않고 처벌된다. 교통사고의 결과가 피해자의 구호 및 교통질서의 회복을 위한 조치가 필요한 만큼 법에서 특히 정한 의무이기 때문이다(대판 2002. 5. 24. 선고 2000도1731).

그렇다면 자동차만을 파손하고도 아무런 조치 없이 도주해 버리면 어떻게 될까? 구호조치의무는 없겠지만 대물사고의 경우에도 신고의무는 있고 그대로 도주하면 신고의무위반으로는 처벌할 수 있다. 그러나 도로교통법은 예외규정을 두고 있다. “도로에서의 위험방지와 원활한 소통을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한 경우”에는 신고의무가 없다고 한다(도로교통법 제54조제2항 후문). 대물사고 후 즉시 적절한 조치를 하거나 도로의 소통에 지장을 주지 않은 상황이었다면 신고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결국 도로교통에 지장을 주지 않은 주차장에서의 대물사고에 대해서는 신고 없이 그대로 도주하더라도 처벌할 수 없게 된다.

도로교통법의 주된 목적이 도로교통의 안전과 소통에 있는 것이고, 피해자의 피해회복에 있는 것은 아니다. 대물피해의 경우에는 대인사고와 달리 구호조치 등 응급조치할 필요도 없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차량 수리비는 어떻게 변상 받을 수 있을까? 사고차량이 밝혀질 때까지 수리하지도 않고 기다릴 수 없지 않은가.

우리 대법원 판례 또한 “교통상의 위험과 장해를 방지, 제거하여 안전하고 원활한 교통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필요가 없는 경우에는 본 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대판 2007. 4. 13. 선고 2007도1405)” 고 하여 도로교통법의 입법 목적과 문언에 충실한 해석을 하고 있다.

교통사고를 야기한 사람에게 경찰관서에 자진 신고하도록 하는 것은 자칫 진술거부권을 침해하고, 자기부죄금지원칙(自己負罪禁止原則)에 반할 수도 있다(헌법 제12조제2항). 그래서 일찍이 헌법재판소는 도로교통법상의 사고 후 신고의무 규정에 대해 운전자의 형사입건을 위한 범죄수사의 편의로는 이용할 수 없다는 취지의 결정(헌재 1990. 8. 27. 89헌가118)을 한 바 있고, 그 이후 정부는 도로교통법을 개정하여 물피 도주사고에 대해서는 이와 같이 신고의무를 일부 면제해 주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물피 후 도주한 사람을 이대로 방치해도 좋을까? 보험개발원의 조사보고에 의하면 2011년 한해 물피 도주사건은 57만 건으로 부당피해액만도 4,115억원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통계상 1일 평균 1,533건에 약 11억 원의 피해가 발생하는 셈이다.

이러한 물피도주 차량은 적발하기도 어렵고, 이를 찾았다고 해도 민사상 손해배상을 받기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수리비용은 대다수 피해자의 부담이거나 피해차량의 보험처리에 의해 보험회사가 부담하게 되는 꼴이 된다. 보험료의 인상요인이 될 것이 뻔하고, 우리 사회의 안전망에 커다란 구멍이 있음을 부정할 수가 없다.

외국의 입법례를 보면, 미국의 몇몇 주나 영국, 일본의 경우에는 단순 물피 사고의 경우에도 운전자와 소유자의 이름과 주소를 피해자나 경찰관서에 알리도록 하고 이에 위반하면 벌금 또는 징역형에 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우리도 사고차량 운전자에게 피해현장을 떠나기 전에 피해자에게 피해내용을 알리도록 하는 의무규정을 만들면 어떨까? 피해자가 현장에 없어서 이를 알릴 수 없는 경우 비로소 인근 경찰서에 가해자의 연락처와 보험가입회사 정도만이라도 신고하게 해서 피해변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도로교통의 상황에 지장을 주었는지 여부를 따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

설문응답자 중 약 29%가 물피도주 경험이 있다고 하고, 약 42%가 물피도주의 피해를 당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적발될 위험이 없다면 일단 도주하자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따라서 당장 이렇게 법률을 바꿀 수 없다면 물피사고 후 도주할 수 없도록 주위 환경이라도 조성하자.

그래서 일정규모 이상의 주차장에는 방범카메라 설치를 의무화하거나 적어도 영업용 차량의 경우에는 차량용 블랙박스의 설치를 권고하거나 의무화 하는 방향의 대책이 필요하다. 정책적으로 신고포상금 제도를 마련해서라도 도주차량을 잡자. 우리 사회가 더 이상 불신의 늪으로 빠지기 전에 사고를 내고 도망갈 수 없도록 인위적인 감시망을 구축해가자.



[사진설명:노명선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