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범죄의 친고죄가 폐지된다

  • 268호
  • 기사입력 2013.01.18
  • 취재 이수경 기자
  • 조회수 5507
무제 문서

글 : 노명선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법무부는 금년 6. 19. 부터 모든 성범죄에 대한 친고죄 규정이 폐지된다고 밝혔다. 그렇게 되면 성폭행 피해자의 고소가 없더라도 가해자에 대한 수사는 물론 고소가 취소되더라도 형사 처벌할 수 있게 된다. 또한 강간 등 성폭력범죄 대상이 현행 '부녀자'에서 '사람'으로 확대됨으로써 남성도 성 범죄의 피해자로서 보호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직장 여 상사에 의한 남성 부하직원에 대한 성추행 행위, 남자 아동이나 성인 장애 남자에 대한 강간 또는 유사강간 행위에 대해서도 가해자가 남자이건 여자이건 형사처벌이 가능하게 되었다. 아울러 술에 취해 심신장애가 있었다는 변명도 할 수 없게 된다.

지난 호에서 필자는 "성폭력 범죄는 언제 선처 되는가" 라는 제목으로 성범죄에 대한 법원의 가벼운 처벌관행이 우리 사회 성 문제를 키워왔다는 여론의 지적과 함께 판사의 재량에 의한 '작량감경(판사의 재량에 의한 법정형 이하로 감경하는 처분)'도 그에 한 몫을 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번 형사소송법의 개정으로 취중에 우발적으로 저질렀다는 변명으로는 감형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친고죄라 함은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만 검사가 피의자를 기소할 수 있는 범죄를 말한다. 이러한 친고죄의 대표적인 범죄로서는 간통(형법 제241조), 강간(제297조), 강제추행(제298조) 등과 성범죄 이외에는 모욕죄(제311조), 죽은 사람에 대한 명예훼손죄(제308조) 등을 들고 있다.

이러한 범죄를 친고죄로 한 취지는 피해자나 피해자 가족의 의사와 명예를 존중할 필요가 있다거나 죄질로 보아 그다지 중하지 않은 경우 피해자 측의 의사를 존중하여 처벌하지 않겠다는 형사정책적인 배려이다.

형벌은 가장 강력한 제재수단이어서 범죄의 억지력이 크다고 평가하지만 만능처방약은 아니다. 그래서 사회적 분쟁이나 갈등은 기본적으로 당사자들의 자율적인 해결에 맡기되, 만약 스스로 해결이 어렵고, 다른 대체수단이 없는 경우에야 비로소 형법이 개입하고 있다. 이를 형법의 보충적인 성격이라고 한다.

친고죄에 대한 고소는 소송조건이므로 공소를 제기하기 전에 반드시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 한다. 고소가 없이 기소하면 그 이후에 고소장을 받아 보완하더라도 무효이다. 따라서 법원은 법률제기절차가 법률에 위반하였다는 이유로 판결로써 공소기각 하여야 한다(형사소송법 제327조 제2호). 고소장의 추완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검사는 고소장을 받아 다시 기소할 수 밖에 없다.

우리 형사소송법은, 일본과 달리 기소 후에도 1심 판결 전까지는 고소 취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제232조제1항). 그래서 1심 재판 도중이라도 고소가 취소되면 피고인에 대해서는 마찬가지로 공소기각(제327조 제5호)하여야 한다. 그러나 동일한 사유로 다시 고소할 수 없으므로 이 경우에는 검사가 재차 기소하지 못한다.

이와 같이 친고죄에 대해서는, 고소가 없거나 고소가 취소되면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가해자나 가해자의 가족 또는 친구들은 피해자로부터 고소취소를 받아 내기 위해 갖은 회유와 협박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번 개정으로 모든 성폭력 범죄에 대해 친고죄 규정을 폐지해 버림으로써 더 이상 이런 협박이나 회유는 없을 것으로 기대해 본다.
그러면서도 다음 몇 가지 점에서는 여전히 의문을 떨칠 수가 없다.

먼저, 피해자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경찰의 수사가 개시되고, 가해자가 형사 처벌되는 사례가 종종 나올 것으로 보인다. 친고죄라도 전혀 고소할 의사가 없음이 명백한 경우가 아니라면 경찰이 수사를 개시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래서 검찰에서는 월남전 파병 당시 서울에 남은 부인들의 간통사건을 남편의 고소 없이도 수사하기도 하였다. 파병 군인의 사기진작을 위해 배우자에게 알리지 않고 조용히 수사한 것이다.

그런데 친고죄가 폐지됨에 따라 피해자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수사 개시됨으로써 숨기고자 하는 피해 사실이 노골적으로 폭로될 여지마저 생길 수 있다. 가해자나 피해자가 특히 정치인이거나 연예인, 기타 중요인물인 경우에는 더욱 염려스럽다.

둘째, 피고인은 일단 기소되면 낮은 형을 선고받기 위해 여전히 피해자 측과 합의를 위해 노력을 할 것이다. 고소취소는 가해자에게 여전히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해자 측의 무리한 고소취소 요구를 막아보자는 친고죄의 폐지 취지가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반면에 가해자의 피해자 측에 대한 반성의 기미나 합의시도 노력이 오히려 감소하는 빌미를 주지 않을까 의문이다.

최근 형사법개정 특위에서는 포괄적인 작량감경 사유를 세분하고, 유형화함으로써 법관의 작량감경을 좀 더 객관화해 보자는 논의가 진행 중에 있다. 법정형보다 2분의 1이나 형을 감경하면서 아무런 근거를 제시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현행법의 태도로는 법관의 들쑥 날쑥한 양형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판사의 양형을 통제하고, 친고죄의 폐지에 따른 부작용을 시정하기 위해서 피해자와의 합의나 범행 후의 태도를 형법 제53조의 작량감경 사유 중 하나로 명문화함으로써 가해자의 피해자 측에 대한 화해와 반성을 통한 사법적 회복을 모색해 가는 機智(기지)도 필요한 때이다.

셋째, 최근 이러한 일련의 사법적 조치가 자칫 우리 사회의 성적 가치관에 혼란을 야기하고 있지는 않은지 챙겨보자.
혼인빙자간음죄는 위헌결정으로 형법에서 삭제되었고, 법률상 배우자의 간통죄는 폐지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다. 개인의 사적인 영역에 국가가 형벌로써 개입할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몇 일전 지방법원 판사가 "착취나 강요가 없는 성인 간의 성행위는 개인의 자기결정권에 맡겨야 하는데도 법률 조항이 변화된 사회 가치관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전제 하에서 성매매행위의 처벌규정이 위헌이라는 취지의 심판을 제청한 것도 그러한 맥락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한쪽에서는 모든 성범죄에 대한 친고죄 규정을 폐지하여 고소여부를 불문하고 형사 처벌하고, 유사강간행위는 물론 성폭력 범죄에 대해서는 특별법을 만들어 가중 처벌해 가고 있다.

반면에 성적인 자기결정권이라는 점에서 형사처벌에서 배제하는 비 범죄화를 주장하는 목소리 또한 강하다. 이러한 상반되는 주장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과연 형사 처벌의 대상과 비 범죄화 대상 간의 구별기준은 무엇일까?

성매매 여성을 교화가 아닌 형사 처벌을 강조한다면 최후의 수단이어야 할 국가형벌권이 남용될 수도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성인간의 개인적인 모든 성행위를 규율대상으로 포섭하자는 것은 아닐 것이다.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성을 파는 행위는 개인의 자기결정권의 범위를 넘어 건전한 성문화 질서를 해치는 범죄행위라는 점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가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실체법상으로 성폭력 범죄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당사자의 의사가 제일 중요한 요소이다. 그럼에도 친고죄 규정을 폐지함으로써 절차법상으로는 피해자의 의사가 무시되는 것은 아닌지, 자칫 수사기관이 우리의 은밀한 침실까지 지켜보고, 감시하지는 않을지 꼼꼼히 챙겨 보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