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현장에서 프로파일링은<br> 필수적이다.

수사현장에서 프로파일링은
필수적이다.

  • 276호
  • 기사입력 2013.05.23
  • 편집 최보람 기자
  • 조회수 7374

  “아는 만큼 본다”는 말이 있다. 사람은 일반적으로 자신이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 생각하고, 자신이 알고 있는 잣대로 사물을 인식하게 된다는 것을 지적하는 말이다. 사람마다 같은 물건이나 형상을 놓고 달리 볼 수 있는 것이 그런 이유에서 이다. 범인을 쫒아가는 형사 또한 마찬가지다. 현장에 임하여 초동수사를 하는 형사의 경우 자신이 알고 있는, 경험한 지식의 범위 내에서 아는 만큼만 범인의 흔적을 찾아 낼 수 있다는 말이 된다. 그래서 경험이 없는 초자 형사의 경우에는 현장에서 자신의 지문이나 발자국만을 잔뜩 남겨 진범의 증거를 인멸하고 마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필자가 서울동부지방검찰청 형사5부장검사로 재직하면서 모녀살인사건에 대한 무죄선고공판이 있었다. 피해자인 모녀는 무려 20군데 이상씩 칼로 찔린 채 사망한 사건이었다. 왼손잡이가 범인으로 지목되었다. 피해자의 상처부위를 유심히보면 칼이 삽입된 각도나 방향으로 범행당시 왼손에 칼을 쥐고 찔렀는지, 오른손으로 찔렀는지 쉽게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경찰의 부검 과정이나 피의자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에 대한 조사나 신문이 있었을 법한데, 기록 어디를 보아도 그 점에 대해 지적하거나 이를 명확히 한 흔적이 없었다. 이 정도의 기초지식도 없는 새내기형사가 담당한 것일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사체는 이미 화장이 되어버린 후였으므로 남겨진 사진만으로 이를 구별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았다.

  친구와 사소한 시비로 시작한 싸움 끝에 돌멩이로 친구를 살해하였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서도 피의자는 “누군가 뒤에서 같이 가던 친구의 뒤통수를 돌멩이로 가격하고 도망가 버렸다”고 변명하면 그대로 믿을 수 있을까? 이러한 경우 노련한 형사라면 피의자의 점퍼에 묻은 혈흔을 감식에 넘겨 혈흔의 비산각도 즉, 피가 튀면서 날라 와 떨어진 각도를 주시할 것이다. 피의자의 변명대로 피해자와 나란히 걸어가고 있었을때와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직접 살해했을 때에는 피의자의 점퍼에 묻은 혈흔의 각도나 지름이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을 분석하고, 범행 현장을 재현하는 것을 프로파일링이라고 하고, 이러한 수사관을 프로파일러라고 한다.

  피해자를 죽이고 장소를 옮겨도 신체부위를 잘 살펴보면 살인현장의 모습을 재연해 볼 수 도 있다. 사람이 죽으면 체내에 있던 혈액이 낮은 곳으로 몰려 굳어지는데 엎어져 죽었다면 가슴부위가, 누워서 죽었다면 등 허리부분이 진분홍색으로 착색될 것이다. 죽을 당시 자갈밭에서 누운 채 죽었다면 허리부분 중 자갈이 닿았던 부분은 혈액이 고일 수 없어 흰반점 형식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프로파일러는 이러한 증거를 놓치지 않는다.

  시체는 죽어서도 말하는 것이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기법으로는 최면기법이 있다. 피해자나 목격자의 기억이 희미해진 경우 체면기법을 이용해서 사건 현장의 인근 주차된 차량의 번호나 사람들의 모습, 피의자의 도주로를 진술해 내기도 한다. 이를 근거로 결정적인 단서를 찾아 낸 것이 유영철 사건의 목격진술이다. 목격자가 최면상태에서 은행현금인출기 창구에서 나오는 유영철을 목격하고, 주변에 주차된 차량의 번호를 진술한 것이 결정적인 단서가 되었다. 이러한 최면상태에서의 진술은 증거능력을 인정받을 수 없다. 인격권의 침해라는 주장도 가능하고, 아직 과학적으로 증명이 되었다고도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최면분석도 프로 파일러들이 사용하는 수법중 하나이다.

재판은 사실인정법률적용이라는 두개의 축으로 구성되어 있다. 법률적용은 인정된 사실을 근거로 거의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이어서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사실인정은 지나간 사건을 사후에 재생하는 것이어서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이를 재생하기 위해서는 그 매개체가 필요한 데 그것이 증거이다. 남아 있는 증거를 가지고 프로 파일러들이 재연해 가는 범행 당시의 상황은 논리적이라기보다는 가히 예술적이라고 할 만큼 신비스럽다.

  사실을 재연해 가는 과정에서 많은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동물적 감각만으로 범인을 쫓아가던 종래 수사보다는 과학적인 원리와 분석을 통해 범행 당시를 재연해 가는 프로파일링은 기술의 발달에 편승해서 새롭게 각광을 받고 있는 분야이다. 향후 민간조사업(탐정업)법이 마련되면 실제사건을 해결해가는 프로 파일러의 재치를 자주 목격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