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대통령에 대한 추징금 환수

  • 282호
  • 기사입력 2013.08.16
  • 편집 이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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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노명선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새 정부 출범이후 제일 바쁘게 움직이는 곳이 일선청 중에서 검찰청과 국세청인 것 같다. 검찰은 재벌기업의 비자금과 탈세 수사를 통해 부당한 돈의 흐름을 추적하고 있고, 국세청은 서민복지자금의 마련을 위해 세법의 개정 등 정당한 세원의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특히 검찰은 1,672억원에 달하는 전직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을 환수하기 위해 아들을 포함한 친인척의 재산을 압류하고, 조만간 범죄수익은닉 및 탈세 등 관련 범죄로 본격수사에 착수할 전망이다.

우리 형법 제48조는 범인의 소유에 속하거나 범인이외의 자가 그 정을 알면서 취득한 1)범죄행위에 제공하였거나 제공하려고 한 물건, 2) 범죄행위로 인하여 생하였거나 이로 인하여 취득한 물건, 3) 위 각항의 대가로 취득한 물건은 몰수하되 불가능한 때에는 그 가액을 추징하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전직 대통령의 경우 뇌물이라는 범죄로 인해 취득한 현금을 몰수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현금이 그대로 남아있지 않은 한 재산을 상대로 추징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전직 대통령은 명목상 자신의 소유는 자신의 지갑 속에 있는 29만원뿐이라고 하여 추징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형법상 추징은 시효가 3년이지만 압수 등의 강제처분을 개시하는 방법으로 시효를 중단시킬 수는 있다. 그동안 검찰은 시효가 임박해 오면 한 차례씩 압수처분을 함으로서 이를 연장해 오고 있지만 이 또한 한계가 있는 것 같다.
한편 정부는 일찍부터 공무원의 불법수익을 철저히 추적·환수하기 위하여 '공무원범죄에 관한 몰수특례법'을 제정하고, 공무원이 범죄로부터 직접 얻은 재산뿐만 아니라 그로부터 유래한 재산까지 몰수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몰수 대상을 형법의 규정보다 대폭 확대하고, 검사의 입증책임을 완화함은 물론 재산의 긴급한 보전처분도 가능하도록 입법화 하였다.

그럼에도 전직 대통령에 대한 미납추징금의 추적과 집행이 어렵게 되자, 정부는 2013. 7. 1)범인 외의 자가 그 정황을 알면서 취득한 재산까지로 집행대상을 재차 확대하고, 2)검사의 추적권한을 강화하면서, 3)시효 또한 10년으로 연장하여 검찰의 추징금 환수작업에 힘을 실어 주었다.

법 개정 이후 검찰은 전직대통령의 아들과 친인척에 대한 재산을 폭넓게 압류하고, 구입자금의 출처 등을 추적함으로써 그 재산이 전직대통령의 뇌물로부터 유래한 재산은 아닌지 여부를 집중 조사하고 있다.
벌금형은 납입하지 않거나 납입할 능력이 없으면 1일 이상 3년 이하 기간 동안 노역장에 유치하여 작업에 종사시키고 있다(형법 제69조제2항). 반면 추징금은 그러한 대체 집행방법이 없다. 따라서 오로지 은닉한 재산을 끝까지 추적하여 집행하는 수 밖에 없다.
뇌물거래나 마약의 밀매, 성매매, 고리대금업 등 불법적인 거래, 물물교환 등 제도권 밖의 거래 등을 통틀어 地下經濟(지하경제)라고 한다. 이러한 지하경제는 거래내역이 포착되지 않아 세금을 부과할 수도 없고, 자금의 선순환을 막아 국민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지하경제 규모는 국민총생산대비 27%를 상회함으로써 유럽금융위기의 본산지인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스를 웃돌고 있다는 보고도 있다.

이러한 지하경제에 대해서 국가마다 국가의 명운을 걸고 이를 차단하려는 노력을 다하고 있다. 우리 현행법 또한 재산을 국외에 불법으로 은닉하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국외재산도피의죄)로, 부동산을 차명으로 거래하면 「부동산 실권리자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로, 은행거래를 차명으로 하면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로, 페이퍼컴퍼니(빈껍데기 회사)를 만들어 세금을 탈루하면 조세범처벌법위반으로 형사 처벌하거나 과태료 등 행정제재를 하고 있다. 나아가 범죄수익에 대해서는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해 형사처벌은 물론 이를 끝까지 추적, 환수하고 있다. 법률제도상으로는 가히 법률 선진국가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녹녹치만은 않은 것 같다. 김영삼 정부시절 깜짝 도입한 금융실명제도 올해로 시행 20년을 맞이하고 있으나 여전히 차명거래가 성행하고 있다. 거액의 현금을 맡기면서 누구 명의로 하든지 원금만 보장해달라고 하면 이를 마다할 은행지점장이 있을까?
국회에서는 이러한 차명계좌에 대해 계좌 평가액 일부를 과징금으로 부과하거나 실질권리자의 반환청구를 금지시키자는 취지의 개정안도 제시되고 있지만 실효성은 의문이다. 두 사람 사이에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속성상 이를 적발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이러한 지하경제를 양성화하여 세금을 부과하는 방법 등이 활발히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범행으로부터 얻은 재산이나 이로부터 유래한 재산은 끝까지 추적하여 몰수하거나 추징하는 것이 사회 정의에 부합하는 길이다.
수사는 살아있는 생물과 같다. 수뢰한 금원을 추적하고, 재산의 형성과정을 추적하다보면 본인은 물론 친인척들의 해외 재산도피 및 역외탈세, 고가의 미술품 구입을 둘러싼 횡령과 탈세의혹, 관련 은행 임직원들의 배임 행위 등 범죄행위가 당연히 불거져 나오고, 결국 특별수사로 전환될 것이 뻔한 이치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숨겨놓은 재산을 국고에 반납하고 스스로 자세를 낮추는 것이 전직 대통령으로서 남은 자존심을 지키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