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틴 기어의 귀향'과 거짓말

  • 73호
  • 기사입력 2004.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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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법학과 김성돈 교수


영화 뒤에 나온 책 \\'마틴기어의 귀향\\'

영화 \\'마틴 기어의 귀향\\'(The Return of Martin Guerre)은 16세기 프랑스의 한 지방에서
일어난 실제사건을 영화한 것이다. 가짜 마틴 기어(프랑스식 발음 마르탱 게르)가 진짜 마틴
기어 행세를 한 사건에 관한 재판을 기록한 한 판사의 \\'잊을 수 없는 판결\\'을 재구성한 이
영화가 제작된 후에는 같은 제목의 책으로도 출간되기도 하였다. 이 영화제작시 고문으로
참가했던 역사학자 나탈리 제먼 데이비스는 영화제작 후 마틴 기어의 진위를 둘러싸고 행해
졌던 재판 등 당시의 사건을 실제로 복원하는 과정을 그린 책을 출간하였던 것이다.

특히 이 책은 수많은 자료들을 통해 당시의 주요 인물들의 활동 무대의 지리적 특성, 경제활동, 사회 구조, 토지 소유 및 상속과 관련된 관습 등 이야기를 이해하고 상상하는 데 유용한 상
세 정보를 제공하여, 20세기 사학계의 큰 흐름으로 떠오른 \\'미시사(微示史)-어떤 특정 사회
에 살고 있는 인간들의 일상적인 삶의 방식, 신념, 태도를 결정하는 그 사회 특유의 의미체
계로서의 문화를 이해하고 해석하여 역사를 보려는 방식\\'연구에 큰 기여를 하였다고 한다.

가짜 마틴 기어와 진짜 마틴 기어

영화는 현재와 과거의 시점이 교차되어 나타나지만 시간적 흐름에 따라 전개된 사건의 줄
거리는 다음과 같다(영화속의 사건의 전말이 책의 내용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1540년대
프랑스의 한 농촌지역에서 마틴 기어라는 자가 어린나이에 결혼한 후 힘들게 아들까지 두었
으나 아버지와의 불화를 참지 못하고 가족을 떠나 수년간 소식이 단절된다. 부모가 모두 사
망하고 8년 후 고향으로 돌아온 마틴 기어는 다시 이웃에 의해 신임을 받으면서 자상한 남
편이자 아들과 딸의 좋은 아버지로서 성실하고 평온하게 살아간다. 삼사년 후 마틴 기어가
진짜가 아니라는 소문이 나돌면서 마틴 기어는 숙부와의 재산문제로 갈등을 일으키다가 마
침내 숙부의 고발로 형사재판에 회부된다.

일심재판에서 마틴 기어는 자신이 진짜 마틴 기어임을 법정에서 납득시키는데 성공했으나 그의 숙부는 다시 그를 고등법원의 법정에 서게 하였다. 고등법원에서도 자신이 마틴 기어임을 훌륭하게 변호하여 판사들이 유리한 판결을 내리기 직전, 마지막 순간에 진짜 마틴 기어가 나타난다. 가짜 마틴 기어는 진짜 마틴 기어의 옛 전우로서 그가 고향에 돌아가지 않는다는 말을 믿고 마틴 기어의 행세를 하기로 한 다른 사람으로 밝혀지고 결국 그는 교수형에 처해진다.

비록 8년이라는 시간적 격차가 있었지만 마을 사람들이나 이웃들 특히 마틴 기어의 아내 조차 돌아온 그가 가짜 마틴 기어임을 모를리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아내나 다른 가족들이 그를 마틴 기어로 인정한 진정한 동기를 영화 속에서 추측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들의 나름대로의 계산법과 이중성의 근원을 추적해 가는 일 보다 그리고 이 영화가 제공해 주는 여러 가지 일상적 자료들의 역사학적 의미를 새겨보는 일 보다 더욱 더 나의 관심을 끈 것이 있었다. 그것은 진짜 마틴 기어의 출현만 없었더라면 법정에서 가짜 마틴 기어는 진짜 마틴 기어로 살다가 죽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거짓말과 과학의 한계

오늘날의 우리나라 법정에서 그러한 가짜 소동은 쉽게 잠재워질 수 있다. \\'지문\\'이나 \\'혈
액\\' 혹은 \\'유전자(DNA)\\'감정 등 여러 가지 과학적 증거에 의한 판별법에 의해 가짜 마르탱
게르는 그러한 시도조차 할 수 없을지 모른다. 지금까지도 지상 최고의 명판결로 손꼽히고
있는 솔로몬의 판결도 유전자 감정 하나면 간단하게 끝날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사람 사는 세상에 과학의 지배력이 미치지 못하는 영역이 훨씬 더 많다. 그리고 특히
법정과학(forensic science)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난공불략의 요새가 바로 사람의 내면속
의 사실이다.

거짓말을 가려내는 과학적 장치인 거짓말 탐지기는 \\'입은 가만히 있어도 몸은 가만 있지 않는다\\'는 프로이트의 말과 같이 거짓말을 하면 혈압, 맥박, 호흡 등의 신체 변화가 나타나는 것을 감지하는 기계에 불과하다. 최근에는 거짓말을 할 때 신체변화를 수반하지 않는 경우까지도 측정하기 위해 뇌파를 측정하는 뇌지문 기술이 개발되고 있을 정도이지만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지는 아직도 미지수다.

이 때문에 법정에서 거짓말을 밝혀내는 일은 \\'검은 석탄창고에서 검은 색 고양이를 찾아
내는 작업\\'에 빗댈 수 있을 만큼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수사기관에서 진범이면서 범행을
부인하는 비율이 50%정도나 된다고 하지만 그가 진짜 진범인지 범행부인이 거짓말이 아니
라 진실일지도 모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캄캄한 우주공간에서 블랙홀을 찾아내는 작업\\'
은 16세기의 피레네 산맥 너머에서나 21세기의 이 땅에서 나날이 매순간 이루어지고 있는
일이다.

 

거짓말과 법의 한계

우리나라에서는 재판단계에서 피고인이 자신의 범행을 부인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
그 자체를 처벌할 수 없지만, 피고인 외의 다른 사람(증인)의 법정에서의 거짓말은 위증죄
로 처벌될 수 있다. 그러나 수사단계에서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을 받는 \\'피의자\\'나 수사에
도움을 주는 \\'참고인\\'의 거짓말은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수사기관의 수사의 핵심
이 바로 그러한 자들의 진술의 진위를 가려내는 조사작업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사의
효율성을 위해 피의자나 참고인의 거짓말을 처벌할 수 있게 하려는 이른바 \\'허위진술죄\\'를
도입하려는 요구가 일선 경찰이나 검찰에서 지속적으로 있어왔다.

이러한 주장은 사람은 누구에게나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않을 권리(자기부죄금지의 권리)는 모든 자유민주주의국가에서 헌법상의 권리로 보장하고 있지만, 그러한 권리는 묵비권을 보장한 것으로 충분하고 적극적으로 거짓말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강변한다. 특히 1998년 미국연방대법원이 Brogan v. United States 사건에서 수사기관에서 피의자의 신분으로 조사받으면서 무죄주장을 위해 한 거짓말도 \\'허위진술죄\\'로 처벌된다는 판결을 내린 것을 주지시키고 있다. 특히 미국이나 독일 프랑스 등 선진국에서는 참고인도 수사기관을 위시한 국가기관에서 허위의 진술을 한 경우에 형사처벌이 가능한 바, 우리나라가 거짓말 천국이 된 것은 수사기관 등에서 거짓말을 하는 경우를 처벌하지 않고 있는 법의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국가의 형벌을 통해 거짓말을 막는 일에는 분명한 한계가 그어져야 한다. 국가의 형벌은 그 거짓말이 일정한 외부적 효과를 가져와서 개인과 국가가 보호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구체적인 이익이 침해된 경우에만 발동되어야 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이다. 특히 국가공권력의 행사로 인한 인권침해의 시비가 끊임없이 일고 있는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수사기관에서의 허위진술을 범죄시하기에는 국가공권력의 서슬이 아직도 너무 퍼렇다. 2004년 12월 16일 선고된 대법원의 한 판결은 수사기관에서 오히려 피의자의 유죄를 인정하는 쪽으로 허위진술을 강요할 가능성이 더 많음을 확인해 주고 있다.

우리나라 형사소송법(제312조)하에서는 피의자가 경찰에서 한 범행자백은 그것이 조서에 기재되어 피의자가 거기에 서명하였더라도 법정에서 피의자가 그 내용을 부인하면 무조건 유죄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었다. 그러나 검찰에서 한 피의자의 자백에 대해서는 그렇지가 않았다. 즉 피의자가 검찰에서 일단 자백을 한 것인 사실이고 거기에 서명만 하였다면 법정에서 피의자가 그 내용을 번복하더라도 법원은 그것을 유죄의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그동안의 판례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형사소송법이 제정된 이래 50여년 동안이나 인정되어 오던 판례를 변경하였다.

이 판례를 통해 대법원은 검찰단계에서의 자백조서에 대해서도 경찰단계에서의 자백조서와
마찬가지로 법정에서 그 자백한 내용을 부인하면 그 자백조서가 휴지조각처럼 될 수 있음을
천명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수사상황이 여전히 강압적이어서 피의자들이 범행자백을 강요당
하여 허위의 자백을 할 가능성이 많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피의자나 참
고인이 수사기관에서 거짓말을 하지 않고 진실만을 말하여 수사에 협조하라는 요구를 하고
그렇지 못할 때에는 형사처벌을 하게 하자는 주장은 국민일반의 정서에 맞지 않다. 수사기
관에서 하는 거짓말을 처벌하는 법이 없어서 우리나라가 거짓말 천국이 되었고 국민들의 거
짓말을 막기 위한 법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국가의 안보도 \\'법\\'으로만 지킬 수 있다는 생각과
다름없다.

거짓말의 실체

거짓말의 사전적 정의는 \\'사실과 다르게 꾸며하는 말\\'이다. 거짓말도 사형에 해당하는 죄라고 성경의 저자는 기록하고 있지만, 중세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거짓말을 악의적 거짓말, 이타적 거짓말, 선의의 거짓말로 나누었다.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세상에는 869가지 거짓말이 있다고 하였다는데, 물론 이것도 거짓말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는 것을 보여 주는 또 하나의 거짓말이다. 거짓말이 일상의 윤활유가 되는 경우도 많고, 커다란 위약적 효과 (Placebo Effect)를 발휘할 수도 있고,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영화에서처럼 사람을 살리는 감동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가짜 마틴 기어가 한 잘못의 실체는 거짓말 하나 뿐이었다. 가짜 마틴 기어가 진짜 마틴 기어 행세를 하여 진짜 마틴 기어와 그의 가족의 재산을 가로채려고 했다면 그 거짓말은 \\'사기죄\\'가 될 수 있다. 가짜 마틴 기어가 자신이 진짜 마틴 기어라고 법정에서 거짓말을 한 것은 국가의 공정한 사법작용을 방해한 \\'위증죄\\'로 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거짓말한 마틴 기어를 일찌감치 교수형에 처한 프랑스 사회에서도 여전히 거짓말은 공기처럼 많이 떠돌고 있을 것이다. 사람은 하루에 200번 가까이 거짓말을 한다는 말도 들린다. 8분에 한 번씩 거짓말하는 셈이라면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말인지 조차 알기 어렵다. 거짓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진짜이고 진짜라고 생각하는 것이 거짓일지 모른다. 장자가 나비인지, 나비가 장자인지를 알 수 없듯이.

편집 ㅣ 스큐진 황예진 학생기자 (ooohyj@skk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