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 의심’과 ‘12명의 성난 사람들’

  • 83호
  • 기사입력 2005.05.31
  • 조회수 14520

글 | 법학과 김성돈 교수

12인의 성난 사람들’과 배심제도의 학습장

얼마 있지 않아 우리나라에도 국민의 재판참여제도가 도입된다고 한다. 최근 사법개혁추진위원회의 발표에 의하면 우리나라에도 배심제와 참심제를 혼용한 국민재판참여제도가 2007년 3월부터 5년간 시범 실시된 뒤 2012년 본격적으로 실시될 것이라고 한다. 아직 영미식 배심제도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에게 영화 ‘12인의 성난 사람들‘은 배심제도의 진수를 맛보게 해주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작년에 개봉한 존그래샴 원작의 영화 ‘사라진 배심원’은 배심제도가 배심원매수로 얼룩져 있는 어두운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라면, 영화 ‘12명의 성난 사람들’은 배심원실에서 12명의 배심원들이 피고인의 유무죄평결에 이르는 과정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어서 배심제도에 관한 영화의 고전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영화라고 말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이 영화는 우리나라에서 장래의 배심원으로 법원의 소환을 받을 수 있는 모든 국민들이 필수적으로 보아야 할 영화로 손꼽을 만하다.

국민주권과 국민의 재판참여제도

배심제도는 영미에서 발달한 제도로서 사건의 사실문제를 법관이 아닌 배심원이 독립적으로 인정하고 법관은 이를 채용하여 법률적 결론을 내리는 제도이고, 참심제는 독일이나 프랑스에서 채택하고 있는 제도로서 사실문제뿐만 아니라 법률문제도 일반 시민(및 해당분야의 전문가)인 참심원과 법관이 합의하여 다수결로 재판하는 제도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국민의 재판참여라는 명제가 머리를 들기 시작한 것은 우리 헌법이 선언하고 있는 '국민주권'이라는 민주주의의 원칙의 실현을 위한 개혁방향에서 비롯되었다. 민주국가에는 국가의 권력집중을 막기 위해 입법권, 사법권 그리고 행정권이 분리되어 있지만 이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비롯되어야 정당성을 부여받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입법권은 국민의 대표자로 국민에 의해 직접 선출된 국회의원이, 그리고 행정권은 국민이 직접 선출한 대통령이 권한을 행사하고 있어서 국민주권의 원리가 실현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재판작용을 통해 법을 적용하는 사법권에는 국민주권의 원리를 구현할 수 있는 내용물이 전혀 들어있지 않았다. 이 때문에 국민의 직접적인 재판참여제도의 도입은 사법권에서 주권재민원칙을 실현하는 바람직한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국민이 재판하는 법정풍경

배심원제도이건 참심원제도이건 간에 시민이 재판에 참여할 수 있게 되면 현재의 법정풍경은 크게 달라지게 된다. 일반 시민들이 배심원의 자격으로 재판에 참가해 증인과 피고인에게 진술을 요구하고 판사와 함께 사실을 심리하며 유·무죄 판단과 양형과정에도 참여할 수 있게 된다. 이런 방향으로 재판 운영이 바뀌게 되면 재판의 투명성을 높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법관이 법률 비전문가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쟁점을 정리해야 하기 때문에 법원과 국민들의 거리감도 줄어들 수 있게 된다. 국민이 재판참여를 경험하게 되면 국민이 인권과 법률이 갖는 의미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게 될 뿐 아니라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이 공공을 지탱하는 주권자라는 것을 자각하게 될 것이다.

특히 시민이 형사재판에 참여하게 되면 형사법관 개인의 직업관에 기초한 형식적이고 경직적인 가치관에 일반시민의 다양한 가치관이 추가됨으로써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국민의 법감정과 배치되지 않는 결론이 도출될 수 있는 여지가 커지게 된다. 특히 형사사건의 경우에는 형식적이고 고정된 법률적 시각만으로는 합당한 결론이 도출되기가 어렵기 때문에 그 사회의 건전한 상식 및 통념 그리고 그 시대의 도덕 감정과의 밀접한 연관속 에서만 보다 합당한 결론이 도출될 수 있기 때문에 국민의 재판참여는 부동문자로 되어 있는 법을 살아있게 만들 수 있다.

 

미래의 사법주권자의 자질

국민의 재판참여가 성공하려면 재판의 기본원칙에 대해 시민들이 정확한 지식을 갖고, 적정한 판단을 할 수 있는 기본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열린 사법시대에 미래의 ‘사법주권자’들이 사실 확인절차 속에서 합리적으로 의심하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어야 한다.

“당신이 피고인의 유죄에 대한 확신을 가지기 위해서는 그의 유죄가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도록(beyond reasonable doubt) 입증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우리가 절대적으로 확신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고, 형사사건에서 법은 모든 가능한 의심을 뛰어넘는 그런 입증을 요구하지는 않습니다. 제출된 증거를 고려하여 판단한 결과 당신이 만약 그 피고인이 유죄라는 분명한 확신이 들면, 당신은 그를 유죄라고 해야 합니다. 그러나 만약 그 피고인이 실제로 유죄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당신은 그 의심을 그에게 유리하도록 하여 그가 유죄가 아니라고 해야 합니다”.

위 내용은 미국 모범형법전에 들어있는 내용으로서 판사가 배심원들에게 지시해주는 사항이다. 피고인에 대해 유죄를 확정하기 위해서는 제출된 증거를 통해 그 피고인이 기소된 범죄에 대해 유죄라는 점이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충분하게 입증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의심하고 또 의심하라

영화 ‘12인의 성난 사람들’은 소년의 유죄를 확신하는 11명의 배심원들과 유죄에 합리적인 의심을 가지고 있는 1인과의 대립에서 시작한다. 제각기 다른 환경에서 다른 직업을 가지고서 저마다 일정한 편견 내지 고정관념을 가지고 사물과 사실을 바라보는 11명의 인물들은 우리들 모습의 복제판이다. 한때 나는 개인 홈페이지의 초기화면에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시작되는 브레히트의 시 ‘의심을 찬양함’을 게시해 두었었다. “의심을 품는다는 것은 찬양받을 일이다! 당신들에게 충고하노니 당신들의 말을 나쁜 동전처럼 깨물어보는 사람을 즐겁게 존경하는 마음으로 환영하라(후략)”. 영화, ‘12인의 성난 사람들’을 보고 난후, 나는 이 영화의 마지막 화면이 같은 제목의 브레히트의 또 다른 다음의 싯구로 장식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 본다.

 

- 의심을 찬양함 -

절대로 의심할 줄 모르는, 생각 없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의 소화능력은 놀라워서, 그들의 판단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들은 사실을 믿는게 아니라 그들 자신만을 믿는다.
필요한 경우에는
사실이 그들을 믿어야 한다.
자기 자신에 대한 그들의 참을성(믿음!)은 한계가 없다.
논쟁을 할때
그들은 첩자의 귀로 듣는다.

절대로 의심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절대로 행동할 줄 모르는 생각 깊은 사람들과 만난다.
이 생각 깊은 사람들은 결단을 내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결단을 피하기 위해서 의심한다.
그들은 자기의 머리를 오직 옆으로 흔드는 데만 사용한다.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물을 조심하라고 경고한다,
침몰하는 배의 승객들에게
그들의 활동은 우유부단을 본질로 한다.
그들이 애용하는 말은, 아직 결단을 내릴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후략)


편집 ㅣ 스큐진 황예진 학생기자 (ooohyj@skk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