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에 관한, '여섯개의 시선'

  • 95호
  • 기사입력 2005.11.29
  • 취재 황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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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법학과 김성돈 교수


평등의 땅에 정착하기 위한 선결조건


최근 프랑스의 파리 북동쪽에서 촉발된 소요사태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이 있다. 그 중에서도 이 사태의 불씨가 이민자들에 대한 사회통합정책의 실패에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에 따라 현존하는 차별의 장벽에 대한 분석 및 대책이 시급하다는 진단이 내려지고 있다. 프랑스의 문제가 서유럽의 이웃나라에도 확산되어 가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으면서 생각은 자연스럽게 우리 사회에서 온존하고 있는 차별과 불평등의 문제로 옮겨갔다.
차별의 땅 맞은편이 평등의 땅이라면 그 평등의 땅으로 이주하기 위한 필수조건은 차별적 시각을 바로잡는 일이다. 일그러진 우리의 망막을 효과적으로 치료하여 굴절된 시선을 교정해주는 영화, ‘여섯 개의 시선’은 이렇게 프랑스의 소요사태가 계기가 되어 나의 시선에 들어오게 된 영화였다.

여섯 감독의 ‘여섯 개의 시선’

‘여섯 개의 시선’은 여섯 명의 감독들이 평등과 차별의 문제를 각각의 시각에서 조명해 본 여섯개의 단편영화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 영화, ‘그녀의 무게’는 뚱뚱한 여감독 임순례가 우리 사회의 여성들이 과도하게 벌이고 있는 ‘살과의 전쟁’상황과 그 원인을 파헤치고 있다. ‘고양이를 부탁해’로 유명한 감독 정재은이 만든 영화 ‘그 남자의 사정(事情)’은 같은 아파트에 사는 두 남자, 오줌싸는 버릇 때문에 소금을 얻으러 다니는 초등학생과 신상이 공개되어 경계대상 제1호가 된 성범죄자의 사정을 절묘하게 비교하면서 차별적 시선의 정당성에 조심스러운 의문을 던지고 있다.

세 번째 영화 ‘대륙횡단’에서 감독 여균동은 뇌성마비 장애인의 일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 장애인의 슬픈 자화상과 아픈 외침을 한번이나 제대로 보고 들어본 적이 있느냐고 엄중하게 문책하고 있다. ‘죽어도 좋아’를 만든 박진표 감독의 ‘신비한 영어나라’는 유창한 영어발음이 사회적 잣대가 되어버린 현실을 실제 혀수술장면을 통해 리얼하게 보여주고 있고,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만든 박광수 감독의 ‘얼굴값(face value)’은 잘생긴 배우 지진희를 등장시켜 외모지상주의자들인 우리가 아이러니컬하게도 외모에 대해 기묘한 이중적 잣대를 가지고 있음을 희화적으로 그리고 있다.

‘올드보이’의 박찬욱 감독의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는 한국인과 잘 구별되지 않는 어느 네팔여인을 한국인으로 오인하여 6년 4개월동안 정신병자로 취급한 실제 사건을 창의적으로 재구성하여 우리의 무딘 판단력을 무섭도록 질타하고 있다.

진정한 평등은 극단적인 차등

평등에 관한 교과서적 정의는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취급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평등이란 차이를 인정하고 차이에 따라 차등하게 취급하는 것이고, 평등실현의 구체적인 방안은 결국 존재하는 차이를 인정하는 차등정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100억대의 재산을 가진 70세 노인과 생활보호대상자인 70세 노인에 대해 동일하게 교통비혜택을 주는 경로우대제도는 가장 불평등한 제도라는 결론이 나온다.

존재하는 차이, 만드는 차별

눈을 돌려 세상을 똑바로 보면 세상이 온통 차이로 가득 차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어디 하나같은 사람이 없다. 타고나는 차이, 환경에 의해 만들어진 차이, 내가 바꿀 수 없는 차이, 우리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차이가 이 세상을 조화롭게 만들고 살만하게 만들어주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차이는 원래부터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존재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차이는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다른 것은 다르게 취급하는 것은 차별이 아니라 평등이다.

평등의 반대말인 차별이란 ‘같은 것을 다르게’ ‘다른 것을 같게’ 취급하는 것이라고 정의내릴 수 있다. 같은 사람인데 인종에 따라 다르게 취급하고, 같은 여자인데 외모에 따라 다르게 취급하는 것이 차별이다. 차별은 우리의 무딘 시선이 같은 것을 같은 것으로 보지 못하고 우리의 고정관념이라는 생각속에서 만들어낸 재생산물이다. 같은 것을 다르게 보는 고정관념은 우리의 시각이 사물의 중심에 꽂히지 않은 탓에 생긴다. 그래서 일찍이 화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제자들에게 말했다. ‘사물의 경계를 그리지 말라, 경계는 이 세상에게 가장 중요하지 않은 것 중의 하나!’ 라고.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우리는 눈은 늘상 사물의 중심보다는 경계를 맴돈다. 경계에만 초점을 맞추면 다른 것을 다르게 보지도 못하고 같은 것을 같게 보지도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불평등과 차별을 식별할 수 없는 두 개의 안경알을 걸치고 다닌다. 하나의 렌즈에는 ‘다른 것은 같게’, 다른 하나의 렌즈에는 ‘같은 것은 다르게’ 맺힌다. ‘여섯 개의 시선’의 여섯가지 이야기도 모두 이 두가지 착시현상이 빚어낸 이야기를 담아낸 것이다. ‘그녀의 무게’, ‘그 남자의 사정’, ‘얼굴값’은 ‘같은 것을 다르게’ 보는 우리의 굴절된 시선에 대하여, ‘대륙횡단’, ‘신비한 영어나라’, ‘믿거나 말거나’는 ‘다른 것을 같게’ 보고 있는 우리의 희미한 시력을 보완하여 있는 것을 있는 대로 직시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현실세계에서도 우리사회가 ‘다른 것을 같게’ 만들고 있는 법제도가 쉽게 발견된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제도의 불허, 장애인에 대한 차별처우의 상존, 교육부의 대학입시자율권 통제(이른바 3不정책) 등이 그러한 예에 속한다. ‘같은 것을 다르게’ 취급한 호주제도에 대해서는 최근 헌법재판소에서 위헌결정이 내려져그나마 큰 진전을 이룬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노동가치에 대한 남녀의 차별, 외국인노동자나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차별 등 색출되어야 할 차별영역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평등패러다임의 전환

흔히들 평등정책은 모든 대상을 같은 출발선에서 서도록 만드는 것으로 믿고 있다. 그래서 지하철역의 노숙자들에 대해 그들의 현재상태가 그들의 게으름과 무노력 탓에 기인하는 것임을 강조한다. 뿐만 아니라 결손가정에서 자라나 거리를 방황하는 비행청소년들에 대해서도 몇몇 성공한 소년소녀가장의 예나 자수성가한 자들과 비교하면서 모두 그들만의 잘못으로 돌린다. 그래서 그들에게 부지런하고 성실한 국민의 혈세가 흘러들어가게 해서는 안된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도처에 ‘존재’하는 차이를 식별하고 그들과 저들의 다름을 인정하면 ‘출발선에 동열에 세우기’라는 형식적인 평등정책은 기만술에 지나지 않는다. 팔다리가 잘려나간 자와 사지가 멀쩡한 자를 같은 출발선에 세워 경주를 시키는 일을 누가 공정한 게임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진정한 의미의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같은 결승점에 도달할 수 있게 만드는 평등정책으로 그 패러다임을 전환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한 인식의 전환이 있으려면 먼저 같은 것과 다른 것을 구별할 수 있는 시력교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여섯개의 시선’은 ‘다름과 같음’을 알아차릴 수 있는 시력교정을 위해 거쳐야 할 권장 프로그램 중의 하나임을 감히 말하고 싶다. 만약 그것으로 2%부족하면, 최근 인권위원회가 제작한 애니메이션, ‘별별 이야기’를 권장한다.

 

 

편집 ㅣ 성균웹진 황예진 학생기자 (ooohyj@skk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