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를 사랑한 화가 김명수

  • 141호
  • 기사입력 2007.10.26
  • 취재 이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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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을 던지는 영화, ‘데스노트’

 지난 2002년 월드컵 때에 시청 앞을 비롯한 전국의 광장과 운동장에는 붉은 티셔츠와 더불어 태극기의 물결이 장관을 이루었다. 젊은 학생들은 태극기로 치마를 두르고 스카프를 메면서 대한민국을 연호하였다. 이 모습을 지켜본 사람들 그 누구도 이들이 태극기를 모독하였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러한 태극기 퍼포먼스를 지켜 본 화가 김명수는 그 누구보다도 감회가 새로웠을 것이다. 그는 일찍이 태극기의 아름다움에 반해 태극기를 이용한 작품 만들기를 시도하여 왔다. 그러나 1972년 그의 태극기 작품은 국기의 권위를 훼손하였다는 이유로 전시도 못해 본 체 폐기되는 불행을 겪었다.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장래가 촉망되는 한 젊은 화가의 날개를 꺾어버린 것이다.

 한국미술협회에서 주관한 앙데팡당전에서 그는 크고 작은 여러 개의 태극기를 자루모양으로 만들어 그 안에 모래를 담아 세우는 설치작품을 만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주최측에서 작품의 철거를 요청하였다. 사건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반체제인사라는 혐의로 보안기관에 연행되어 고초를 받았다. 그는 이러한 정치적 현실에 환멸을 느끼고 고향인 부산으로 낙향해 버린다. 그것이 오래 전의 일이 아니라 불과 삼십년 전의 일이다.

 그는 1988년 또 다시 태극기 조형물에 도전하였다. 부산 해운대 바다미술제에서 그 때의 태극기 작품을 다시 재현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 번에도 그의 작품은 작가가 자리를 비운 사이 누군가에 의해 눈 깜짝할 사이에 철거되어 버렸다. 그의 태극기 사랑은 이처럼 보이지 않는 외압에 의해 번번이 좌절되었지만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여전히 스스로를 태극기 화가로 자부하며 지금까지도 태극기의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있다.

 미국 화가이며 팝아트의 거두 제스퍼 존스도 동서냉전이 한창이던 1950년대에 미국의 국기인 성조기를 소재로 한 작품을 발표하였다가 사람들로부터 냉소와 비판을 받는 고초를 경험하였다. 뜨거운 왁스에 물감을 녹여서 채색하는 인코스틱 기법을 사용하여 성조기의 모습을 두껍게 그린 작품과, 성조기 3개를 zooming out하여 입체적으로 표현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이들 두 작품은 2차원의 평면에 3차원의 깃발을 입체적인 이미지로 표현함으로써 회화의 평면구성적 한계를 뛰어 넘으려는 제스퍼 존스의 실험적 시도를 엿볼 수 있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이들 작품이 발표된 당시에는 이러한 긍정적인 평가보다는 사실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것에 불과하다는 냉소적 평가와 국기를 모독하였다는 비판이 더욱 지배적이었다.

 이처럼 국기를 소재로 작품을 구상하는 것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너무나 일반적일 뿐만 아니라 그 의미가 모든 사람에게 일의적으로 고착화되어 있기 때문에 국기를 소재로 하는 작품은 자칫 그 사실성으로 인하여 진부한 인상을 줄 수도 있고, 반대로 이미지의 지나친 재구성으로 국기의 모독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그 만큼 위험적 요소가 크게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국기와 관련한 현행법으로는 대한민국국기에관한규정과 형법 제105조, 제106조, 그리고 제109조의 규정이 있다. 대한민국국기에관한규정은 국기의 제작 및 의례에 관한 일반적 내용을 규정하고 있는 법령인데, 특히 제2조는 ‘국기는 제작?보존?사용 및 판매 등에 있어서 그 존엄성이 유지되도록 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함으로써 국기에 대한 존엄성을 선언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한편 형법 제105조와 제106조는 우리나라의 국기·국장 모독죄와 비방죄를 제109조는 외국 국기·국장 모독죄를 각각 규정하고 있다.

 국기·국장 모독죄란 ‘대한민국을 모욕할 목적으로 국기 또는 국장을 손상, 제거 또는 오욕하는 죄’를 말한다. 국기란 국가의 권위를 상징하기 위하여 일정한 형식에 따라 제작된 기를 말하는 바, 바로 태극기를 의미한다. 한편 국장이란 국가를 상징하는 국기 이외의 일체의 휘장을 말한다. 육·해·공군의 군기, 대사관의 휘장 등이 이에 해당한다. 국기모독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국기를 손상·제거·오욕하는 행위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을 모욕할 목적이 있어야 한다. 이처럼 고의 이외에 일정한 행위의 목적을 필요로 하는 범죄를 목적범이라고 한다. 고의란 자신이 지금 어떠한 행위를 하고 있다는 사실과 또한 그러한 행위가 법을 위반하는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을 말한다. 쉽게 말해서 자신이 지금 타인의 물건을 훔치고 있다는 사실과 이러한 것이 법을 위반하는 범법행위라는 것을 인식하고 인용하는 것을 고의라고 하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목적이라는 것은 구성요건의 객관적 요소를 초과하는 사실을 의욕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위조죄의 경우 자신이 공문서나 화페를 위조한다는 사실과 이러한 행위가 위법하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을 넘어서 이렇게 위조한 것을 부정하게 사용하겠다는 의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목적범이라고 해서 이러한 목적이 달성된 경우에만 처벌하는 것은 아니다. 비록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경우라도 특정의 목적을 의욕하였다면 범죄가 성립한다.

 국기를 손상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국기를 훼손한다는 것이며, 제거란 국기 자체를 손상함이 없이 현재 게양되어 있는 장소에서 철거하거나 장소의 이전 없이 다른 물건 등으로 가려서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오욕이란 국기를 불결하게 하는 일체의 행위를 말한다. 예를 들어 오물을 끼얹거나 침을 뱉거나 먹물 등을 색칠하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국기비상죄는 대한민국을 모욕할 목적으로 국기를 훼손하지는 않았으나 언어·거동·문장·회화 등으로 국기를 비방하는 의사를 표현한 경우에 성립하는 범죄이다. 만약 화가가 대한민국을 모욕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궁창에 버려져 있는 국기를 그림으로 표현하였다면 비방죄가 성립할 수 있다.

 한편, 형법 제109조는 ‘외국을 모욕할 목적으로 그 나라의 공용에 공하는 국기 또는 국장을 손상, 제거 또는 오욕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300만원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고 규정함으로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외국의 국기에 대한 모독죄도 처벌하고 있다. 다만 외국의 국기에 대한 모독죄는 ‘공용에 공’하고 있는 국기에 한하여 범죄가 성립한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국기에 대한 모독죄와는 다르다. 공용에 공한다는 것은 그 나라의 공적 기관이나 공무소에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개인이 소지하고 있는 외국 국기를 훼손하였다고 해서 처벌되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현행 형법에는 국기모독죄가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이 죄는 목적범이므로 대한민국을 모욕할 목적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대한민국을 모욕할 목적이 없이 태극기의 아름다운 조형미를 추구한 화가의 그림을 형법의 규정으로 처벌할 수는 없는 것이다. 청소년들이 태극기를 두르고 대한민국을 연호하는 오늘의 현실에서 이러한 형법규정은 사실상 그 의미가 없다고 보여진다. 오히려 다양한 태극기 캐릭터를 개발하여 청소년들에게 국가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고 외국인들에게 대한민국을 보다 친숙하게 하는 노력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잘 못된 정치적 편견에서 벗어나 이러한 분위기가 늦게라도 형성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태극기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표현한 김명수 화백의 태극기 작품을 하루 빨리 보고싶다.

편집 ㅣ 성균웹진 김동선 (dsironz@skk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