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본능의 원인을 찾아, 영화, ‘추격자’
- 154호
- 기사입력 2008.04.18
- 취재 이수경 기자
- 조회수 5592
글 : 법학과 김성돈 교수 <로스쿨의 영화들> 저자
외부와 철저히 차단된 빈집에서 계속되는 잔혹사에 접근을 시도하는 자는 외관상 출장안마사소를 운영하는 전직형사 중호 외에는 없다. 출장온 안마사들을 살해한 영민과 행방불명된 안마사들을 찾아 나선 중호의 조우는 매우 우연한 기회에 이루어진다. 중호에게 덜미잡힌 영민은 잠시 도망치지만 무기력하게 잡히고 만다. 하지만 단 한차례의 추격 장면 뒤에, 그것도 영화의 초반부에 범인이 잡히는 것으로 처리되지만 그것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이 이후에 계속되는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가 가지는 제한된 상상력에 관한 우리의 단견과 성급한 판단을 이내 바꾸게 만든다. 자백을 보강하는 물적 증거가 없음을 이유로 풀려나오는 영민의 태연한 모습에 대해서는 무기력한 공권력을 탓할 수 밖에 없다. 출장안마소를 운영하며 인간기생충과 다를 바 없는 중호가 인간 존엄성의 숭고한 실천자로 변해가는 과정을 보며 실낱같은 희망을 가져보기도 한다. 다시 풀려난 영민과 어려운 상황에서 추격의 고삐를 더욱 바짝 당기는 중호의 부딪침은 더 이상 보탤 것 없는 뻔한 실화사건을 모티브로 삼은 영화, ‘추격자’로 하여금 그 이후로 막을 올린 수많은 영화들의 막이 차례로 내려지는 동안에도 여전히 한국최고의 흥행기록을 맹렬하게 따라잡게 만들고 있다.
누구나 살인자가 될 수 있지만 아무나 살인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누가 범죄자가 되고 누가 범죄자가 되지 않는가에 대한 전통적인 통설의 대답은 간단하다. 인간은 언제나 다르게 행위 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진 존재라는 전제에서 인간행동의 원천을 자유로운 의사로 보아 범죄는 결국 범죄자의 자유의사에 기한 자유로운 행위선택의 결과라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는 근대 이후의 모든 법체계의 토대가 되어 있다. 반드시 임마누엘 칸트의 고전적인 관념철학부터라고는 할 수 없지만 형법은 개인의 자유라는 계몽적인 관념을 기초로 하고 있다. 지금도 여전히 자유로운 의사와 그로부터 나오는 인간 행동의 개인책임원리는 형법의 비난(책임) 내지 형벌메카니즘을 무제한적으로 타당하게 만들었다. 즉 형법은 의사자유가 있기 때문에 범죄행위를 하지 않을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사람의 범죄행위에 대해 형벌로서 비난을 가하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인간행동의 원천을 의사자유에서 찾지 않는 견해가 뇌과학의 이론적 성과로 알려지고 있다. 리차드 도킨스는 우리 몸의 신경계를 연구한 결과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책임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아무리 흉악한 범죄를 저지를 사람일지라도, 원칙적으로는 범죄자 자신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범죄자의 생리와 유전, 그리고 환경조건들을 비난해야 한다고 한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 대해 그런 결함을 제공한 생리적, 유전적, 환경적 요인을 따지지 않고, 한 사람의 책임을 묻는 법정의 청문회라는 것은 고장난 자동차를 몽둥이로 내리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범죄학 이론에서 범죄의 원인을 이와 같은 차원에서 추적한 자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람은 19세기 이탈리아의 의사 롬보로조였다. 그는 군의관으로 근무하면서 군대의 감옥에 있는 죄수들을 관찰한 결과 범죄인들에게 있는 신체적 특질을 발견하고서 범죄자는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범죄행위를 한 것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만들어진다라는 이른바 생래적 범죄인론을 주장한다. 그 후 범죄의 원인을 비정상적인 두개골, 염색체이상, 호르몬의 이상분비 등에서 찾는 롬보로조의 후예들이 끊임없이 이어져왔다.
연쇄살인범은 거의 대부분이 사이코패스적 성향을 가진다고 한다. 사이코패스의 출소 후 재범률은 80%, 그 중 강력범죄를 저지를 확률은 40%이며, 이는 일반 범죄자의 8배에 달하는 수치라고 하기도 한다. 유영철이 싸이코패스라면, 그리고 오늘날 사회를 떠들썩하게 하는 수많은 사건의 범죄자들이 싸이코패스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면 이들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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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ㅣ 성균웹진 정동환 (restartj@skku.ed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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