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법, 나쁜 법, 이상한 법

  • 164호
  • 기사입력 2008.09.13
  • 취재 정동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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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경권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의료법무전담교수 · 법무법인 조율 변호사

18대 국회가 여,야의 지리한 공방을 마치고 정기국회에 들어갔다. 입법기관이자 행정부의 감시기관인 국회 본연의 임무를 비로소 시작한 것이다. 국정감사나 국정조사가 행정부의 감시기능의 대표라면 입법 활동이야 말로 대표적 입법기관인 국회가 해야 할 본연의 임무인 것이다. 사회가 다원화되고 전문화됨에 따라 개별 국회의원이 입법 활동을 하는 것이 상당히 어려워지고 있다. 해당 분야의 전문지식을 갖추지 않으면 입법을 할 수 없는 것이 작금의 상황이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분야를 예로 들면 현재 보건복지가족부가 맡고 있는 법률만 289개에 이른다. 대부분의 보건복지가족부 소속 공무원들도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법이 수두룩하다. 여기에 대통령령이나 보건복지가족부령까지 더해질 경우 그 수는 400여개에 다다른다. 하나의 행정부서가 관리하는 법률이 이렇다면 대한민국에는 얼마나 많은 법률이 있는지 가히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부분의 국민들은 일상생활이나 직장생활을 영위할 때 자신을 규율하는 법이 무엇인지를 알 지 못한 채 생활한다. 그러나 법원은 ‘법의 무지는 용서가 되지 않는다’는 법언에 충실하여 법률을 몰랐다는 당사자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따라서 자신과 관련된 법령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 지 잘 알고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대학생들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민법에 의할 때 20세가 되지 않은 대학생들이 하숙집 주인이나 원룸의 소유자와 계약을 할 경우 부모님에게 취소할 수 있는 권리가 발생한다. 형법에 의할 때 술에 취하여 실수로 남의 가게 물건을 파손하였을 경우 처벌받지 않는다. 이런 경우는 약간의 관심만 갖는 다면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을 통해 알 수 있는 내용이므로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생활하면서 행정기관이나 수사기관을 통해 생전 처음 들어본 ‘??법’을 위반하였다는 이유로 과태료나 벌금을 내야 하는 경우가 왕왕 발생한다. 몰랐다는 항변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므로 이와 같은 법률을 다 알고 있어야 하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상식(常識)에 의지해야 한다. 지금까지 받아 왔던 교육을 통해 형성된 지식과 판단력 및 양심을 바탕으로 생활해야 한다. 대부분의 문명화된 국가에서는 이들에 의지해 생활하면 별다른 문제없이 학교생활이나 사회생활을 해 나갈 수 있다. 일반인의 상식과 양심에 반(反)하지 않는 법이 ‘좋은 법’이다. 국민들이 예측가능하고 대다수의 상식에 배치되지 않는 법이 좋은 법인 것이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일반 국민들의 법감정에 다소 반하는 법도 좋은 법이 될 수 있다. 그 법이 지향하고 이룩하려는 사회의 모습이 바람직하고 이상적일 경우 현재 국민들의 법감정에 일정 정도 반한다 하더라도 좋은 법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는 것이다.

사회적 약자-여성, 장애인, 소수자 등-의 배려를 위해 평등의 원칙에 반하는 내용을 담은 법률이 대표적이다. 그와는 달리 일반 국민들의 양심이나 법감정에 반함에도 법률로서 존재하는 것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 정권에서 폐지를 하려다 실패한 국가보안법이다. 국가의 안보가 훼손당해서는 안 될 중요법익임은 의심할 바 없으나 이는 형법상의 간첩죄로 충분히 보호할 수 있다. 그에 비하여 위 법률의 찬양, 고무, 선동과 같은 죄목은 너무 포괄적이고 추상적이어서 수사기관이 마음만 먹으면 웬만한 사람들은 다 기소할 수 있다. 이런 것이 ‘나쁜 법’이다. 설사 법원에서 무죄를 받더라도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고 인신을 구속당하고 언론에 보도되고,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개인이 당하는 고통은 가히 상상을 불허한다.

이런 나쁜 법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이상한 법’이다. 개인적 가치관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수 있는 양심이 아니라 일반인의 상식에 반하는 법들이다. 현행 법률을 찍어서 말할 수는 없으므로 현재 국회의원들이 제출한 법률안 중 ‘복면금지법안’과 ‘몸싸움금지법안’이 대표적이다. 집회에 참여할 때 복면을 쓰면 안 된다는 것이 전자(前者)고, 국회 내에서 몸싸움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후자(後者)다. 두 법률안 모두 법조인 출신 국회의원들이 발의하였다는 점은 아이러니라 아니할 수 없다.

앞서 말한 것처럼 법의 무지는 용서되지 않으므로 가능한 한 ‘좋은 법’만이 제, 개정 되도록 두 눈을 부릅뜨고 국회를 감시해야 한다. 법률은 만들기도 어렵지만 없애기는 더욱 어렵기 때문에 한 번 만들어진 ‘나쁜 법’, ‘이상한 법’이 국민들에게 미칠 영향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표를 먹고 사는 국회의원들만 탓하지 말고 당장의 일이 아니라고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유권자들이 그러한 국회의원들을 재생산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특히 공부와 취업을 핑계로 견제와 감시에 신경을 기울이지 않는 대학생들이야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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