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인은 속으면서 자란다

  • 252호
  • 기사입력 2012.05.08
  • 취재 이해오름 기자
  • 조회수 9770

글 : 노명선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검사는 해외로 도망갈 우려가 있는 피의자에 대해서는 출국금지조치를 한다. 물론 해외로 도피한 피의자에게는 공소시효가 정지되지만... 수사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신속히 조치한다.

그래서 영리한 고소인은 고소장의 제출과 동시에 피 고소인의 출국금지를 요구하기도 한다. 여권이나 비자 발급이 흔치 않고, 시간이 걸리던 시절에는 상대방이 여권을 신청했다거나 비자발급신청을 해 놓은 상태라는 것도 하나의 표징이 되었다. 그러나 요즈음은 대다수가 여권을 소지하고 있고, 비자 면제국이 많아 쉽게 출국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금지조치 또한 신속히 조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음 사건은 홍콩법정에서 일어난 것이다. 홍콩에서 일어난 상사분쟁 사건에 대해 불리해 진 고소인이 법정 출석기일을 눈앞에 두고 상대방을 출석하지 못하도록 이를 이용하는 사례도 있었다. 한국에서 고소장을 접수한 검사가 상대방을 출국금지해 놓으면 고소인 자신은 살짝 홍콩 법정에 다녀온다.

이 사실을 모르는 상대방 피고소인은 출국하려다 공항 출국 심사대에서 제지를 받아 비행기를 못타고 홍콩 재판에도 출석하지 못한다. 피고소인은 뒤늦게 변호사를 선임하여 부랴부랴 출국금지 해제신청을 해보지만 해제 절차가 쉽지 않다. 한국의 검사도 뒤늦게 그 사실을 알고 재판에 출석할 수 있도록 해제조치를 해 보려 하지만 결제과정에서 부장검사가 막는다.

“0 검사 술 얻어먹었어요? 일단 출국금지해 놓은 사안을 그렇게 쉽게 풀어주면 오해합니다.” 고 시비를 걸면서 검사의 자존심을 건드린다.
“저의 실수이었습니다. 해제해도 수사에는 차질이 없을 것 같습니다. 홍콩법원의 사건 접수증도 확인했고, 출석통지서도 제출 받았습니다”
“홍콩 재판부에 직접 전화해 봤어요? 가짜일 수도 있잖아요!”
몇 차례 결제가 반려되는 수모를 거치면서 법무부를 거쳐 용케 금지조치가 해제된다. 그러나 부장검사와 검사 사이 신뢰는 금이 갔다.

“부장검사 너는 좋은 시절, 술 얻어먹고 판단했는지 모르지만... 나는 속아서 했다”
평검사의 독백.속고, 사과하고, 자존심 상하고 결제과정에서 때로는 싸우기도 한다. 그렇다고 고소인을 형사입건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검사가 출국금지조치를 신중히 처리했어야 했다. 고소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되지만 피고인의 변명 또한 함부로 믿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판사 또한 알게 모르게 속으면서 산다.

모 대학 4학년 여학생(회사원)으로부터 고소장이 제출되었다. 졸업 여행을 가 숙소 근처에서 풀밭에 모여 캠 파이어를 하는 도중 남학생으로부터 추행을 당했단다. 경찰 기록을 보니 여학생이 예쁜 다리 위로 스커트를 살짝 올리고 사진을 찍어 제출하였는데, 허벅지에 시꺼멓게 멍이 들어 있었다. 남학생이 반항한다고 양 무릅으로 허벅지를 찍어 눌러 난 타박상이라는 것이다.
“이런 나쁜 ××! 이렇게 연약한 여자의 신체를...”

구속되어 송치된 피의자가 계속 억울하다고 변명하지만 검사는 이를 무시한다. 검사는 적어도 피해자와 함께 울어줄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배웠다. 사법연수원 시절 지도검사의 한 마디가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여자를 울리면 가중처벌해야 한다”

“멍이 어떻게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서로 좋아서 했습니다”
피의자는 일관되게 변명한다.

“두 번 좋아했다가는 애 잡겠다. ××하지 말고, 판사한테나 변명해봐. 지가 좋아서 자해하더라고...”
그런데 법원의 분위기가 심상치가 않다. 1심 판사는 피해자의 허벅지에 난 상처가 피고인의 행위에 의한 타박상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자해행위라는 증거도 없지 않은가.

형사소송에서 유죄판결을 위한 증명의 정도는 합리적 의심 없는 증명(proof beyond a reasonable doubt) 또는 확신의 단계에 이르러야 한다. 법관의 심증이 이러한 정도의 확신을 가지지 못할 때는 어떠한 판단을 하여야 하는가. 그러한 정도의 확신에 이르지 않고 합리적인 의심이 아직 남아 있는 경우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하여 무죄판결을 하여야 한다. 이 원칙이 바로 「의심스러운 때에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in dubio pro reo라는 원칙이다.

검사로서는 난감하다. 법정에 증인으로 나와야 할 고소인은 연락이 안 된다. 피고인은 여전히 둘이 좋아서 한 것이라고 변명하고 있으므로 피해자의 법정 증언이 필요한 실정이다. 영리한 변호사는 피해자의 허벅지 상처에 대해서는 여러 가능성을 열어 놓고 수명의 의사 작성 소견서를 제출하고, 법정에 나온 거만한 풍채의 의사 선생님 또한 검사의 눈치를 보면서도 할 말은 다 한다.
“여성의 피부는 약해서 자신이 조금만 힘을 주어도 멍이 들 수 있습니다. 애 또... 성행위 중에 정상적인 경우에도 온 몸에 멍이 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검사는 씁쓸한 마음에 의사를 째려보지만 설마 설마한다. 결국 무죄가 선고되고, 검사는 충격을 받는다. 판사가 속았다. 피해자가 피고인과 적당히 합의하면 법정에 안 나오는 것은 이해할 수도 있다. 피고인과 합의가 되면 대 놓고 법정에서 말을 바꾸는 피해자도 있다.

수사 검사 앞에서 피고소인에 대해 온통 험담을 늘어놓던 고소인이 일단 합의가 되어 충족이 되면 법정에 나와서 180도 말을 바꾼다. 수사 검사가 시켜서 피고인을 험담하였다고....
“진술을 번복하려 하니까 검사님이 진술의 일관성을 보이라고 해서..진실을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거짓말을 했단다. 이런 경우에는 고소장 기재사실을 확인해서 사실과 달리 고소한 부분에 대해서는 무고죄로 처벌할 수 있을 것 같다. 영악한 고소인이 너무나 많다. 범죄자 못지않게 고소인 또한 교활한 경우도 있다.

검사나 판사는 속으면서 자란다고 한다. 그렇지만 국가의 공권력이 능욕당해서는 안 된다. 로-스쿨을 통해 다양한 학문적 배경을 갖은 법률가들이 대량 배출된다면 고소인의 변절은 근절될 수 있을까? 기대해 본다.



편집 | 이해오름 기자 (lhor70@skk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