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위 신고나 고소에 의해 선의의 피해자가 늘어 간다?

  • 254호
  • 기사입력 2012.06.15
  • 취재 박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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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노명선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제19대 국회의원선거가 끝이 나고, 개원을 앞두고 있다. 선거와 관련하여 경찰, 검찰에 고소, 고발된 인원만도 2012. 5. 말 기준으로 약 700여명에 이른다고 한다. “일단 고소해보고, 요행히 범죄를 구성하면 처벌해 주고, 아니면 말고..”라는 식이다. 최근에는 연예인들의 고소도 늘고 있다. 댓글을 이유로 명예훼손이나 모욕을 문제 삼고 있다. 2010년 한해 고소사건만도 39만 건에 이르고, 매년 3-4%씩 증가하고 있는 반면 기소율이 21% 정도로 점차 하향하고 있고, 고소, 고발사건의 약 80%가량이 불기소 처분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마디로 형사 처벌할 수 없는 사건이 절대다수라는 것이다. 그 중에는 심지어 의도적으로 허위신고하거나 고소하는 사례도 눈에 띄고 있다.

우리나라 굴지의 자동차 회사인 H자동차 회사의 중간간부사원이 술에 취해 길을 가는데 마주오던 여인이 말을 건다. “아저씨 만원만 꿔 주실래요” 하자 직원은 “그-러-ㄹ까요. 그런데 언제 갚을 건가요, 어떻게?” 하고 비틀거리면서 묻는다. “아저씨가 달라고 하면 언제든지 다~ 줄께요” “뭐든지요?” 하고 술김에 묻는다 “그럼요” 그 다음 둘이는 자연스럽게 여관에 들어 간다. 잠에 취해 골아 떨어진 00직원에게 경찰관이 와서 깨우면서 하는 말 “피의자를 강간죄로 긴급체포하겠습니다.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고, 진술을 거부할 수도 있습니다” 고 중얼 중얼 댄다.

여기서 잠깐 쉬었다 가자.

수사메뉴얼은 체포하기 전에 피체포자에게 체포사유는 물론 변호인 선임권, 진술거부권 등을 고지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를 「미란다 원칙」이라고 한다. 미란다 룰의 사건 당사자인 어네스토 미란다는 정작 나쁜 놈 중에 아주 나쁜 놈이었다. 19세 소녀를 차로 납치해서 피닉스 근교 사막에서 강간하고, 다시 버스정류장으로 돌아와 지갑에서 4달러를 꺼내 가졌다. 그러고는 “나를 위해 기도해 줘(Please, pray for me)”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뉘우침도 없었다. 그는 경찰에게 미성년자 납치, 강간, 성폭력 혐의로 체포되었고, 경찰 조사관에게 순순히 자백했다.

그러나 미국 연방대법원은 체포되기 전 진술거부권 등을 고지 받지 못하였다는 것을 이유로 그 이후의 자백 진술을 모두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판결하였다. 사건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피의자는 아직도 몸을 잘 가누지 못한 채 묻는다. “내가 누구-ㄹ 강간했나요?” 하면서 기억을 더듬는다. 기억할 수가 없다. 경찰서에 연행되어 조사실에 가니 피해자라고 하는 여인이 울고 있다. 어렴풋이 본듯한 여인 같기도 하지만 대질조사를 할 때까지는 누구인지 몰랐다. 몇 시간 전 길거리에서 만원을 꾸어준 그 여인이었다. “내가 여관에 같이 갔나요?”하고 묻는다.

그러자 여인이 대답한다. “억지로 끌고가 강간 했잖아요?” 하고 얼굴을 파묻는다. 기가 막히다. 명문 대학을 졸업하고 굴지의 회사에 취직하여 근 10여년 근무하는 동안 큰 과오 없이 과장이 되고, 가정을 꾸리고 건전한 아빠로 살아가고 있는데 강간이라니 청천벽력이다. 놀란 나머지 부인에게 차마 전화할 수 없어 아버님에게 전화드린다.

“아버지 제가 술에 취해 실수했나 봅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아들의 장래 생각에 다짜고짜 따지지 않고 합의금조로 요구하는 돈 500만원을 가지고 가 여인과 합의한다. 당시 평검사 월급이 120만원 정도이었으므로 그 4배 남짓의 큰돈으로 기억하고 있다.

강간죄는 형사소송법 상 친고죄로서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 죄를 논할 수 있는 범죄이다. 그래서 수사가 진행 중이라도 피해자와 합의를 하고 고소가 취소되면 그야말로 공소권 자체가 없어지기 때문에 수사는 중단된다. 이것을 친고죄라고 한다.

강간죄나 간통죄 등 사적으로 내밀한 범죄가 친고죄의 주를 이루고 있지만 대기업의 불공정 행위에 대해서도 공정거래위원회의 고발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같은 법적 효과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적 고발권에 대해서는 폐지하거나 일반 시민도 고발할 수 있도록 개정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합의가 되었다는 이유로 경찰에서는 피의자에 대한 강간피의사건에 대해 「공소권 없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였다. 본 건을 배당받은 필자로서는 기록을 살펴보니 곳곳에 헛점 투성이었다.

먼저, 술에 취한 사람이 어떻게 여인을 끌고 가고, 여관에 들어갔는지, 입구에 손님을 맞이한 여관 주인이나 종업원은 과연 몰랐을까? 그래서 검사는 여관 주인을 먼저 소환해서 물어보기로 했다. “피해자가 끌려 들어갔다고 하는데 몰랐습니까?” “경찰에서도 또 같이 물어보던데요. 전혀 몰랐습니다. 오히려 여자가 부축이면서 방으로 들어갔고, 야한 비디오를 틀어 달라. 너무 사이가 좋아 찬물이 더 필요하다고 할 만큼 사이가 좋아 보였습니다” 고 답변한다.

“두 번째, 경찰은 왜 여관 주인을 불러 조사까지 했으면서도 합의를 종용하였을까? 실체관계를 따지기 어려워 적당히 합의를 권유하고 사건을 종결한 것일까? 여인의 눈물을 믿어 준 것일까. 너무 복잡해서 판단이 되지 않았을까. 지금도 이해가지 않는다.

검사는 더 이상의 조사가 필요 없다는 결론을 내고 고소인을 소환해 무고죄로 인지하여 구속기소하였다. 타인을 형사처벌을 받게 할 목적으로 허위사실을 들어 수사기관에 고소하면 형법상 무고죄에 해당한다(형법 제156조)

고소사건은 수사를 마치면 검찰에 증거와 함께 기록 전부를 송치하도록 법에 명시되어 있다. 고소사건으로 접수되면 경찰은 신속히 조사하여 관계서류와 증거물을 검사에게 송부하여야 한다(형사소송법 제238조). 이를 전건송치주의라고 한다.

다행히 본 사건은 고소장이 정식으로 접수된 것이어서 검찰에 송치되었고, 뒤늦게나마 피고소인의 억울함이 밝혀져 누명도 벗고, 돈도 돌려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피해자라는 사람이 단순히 경찰에 피해신고만 하고 정식으로 고소장을 제출하지 않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만약 경찰에 신고나 고소를 한 후 돈만 챙긴 다음 고소취소나 신고취하 되었다는 이유로 슬며시 사건이 무마되어 버렸다면 허위 고소한 사람의 무고행위는 암장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서 검찰에서는 매년 정기적으로 경찰송치 고소사건을 재검토하여 허위 무고사범을 일제 단속하고 있다. 2011년 3월부터 6월까지 3개월간 단속한 결과로 약 50여명이 허위고소가 적발되었다고 한다. 그 숫자는 매년 줄어들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떳떳하지 못한 자신의 처신으로 변명한마디 못하고 뒷전에서 눈물 흘리고 있는 사람이 그만큼 아주 많을 수 있다는 반증이 되기도 한다.

편집 | 박주영 기자 (qwd0378@skk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