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죄의 공소시효는 폐지된다

  • 256호
  • 기사입력 2012.07.14
  • 취재 이해오름 기자
  • 조회수 6241

글 : 노명선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법무부는 2012년 6월 살인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폐지한다는 형사소송법 개정 법률안을 입법예고 하였다. 이에 대해 절대 다수의 시민들은 환영의 표시를 하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여론몰이식 엄벌주의 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공소시효는 범행 후 일정한 기간이 경과하면 검사의 공소권이 소멸되는 형사소송법상의 제도를 말한다. 그 기간은 법정형의 경중에 따라 살인죄와 같이 법정형이 사형인 사건은 25년, 강도강간과 같이 무기징역의 경우에는 15년, 도박과 같이 벌금형에 해당하는 사건은 5년으로 되어 있다. 물론 이보다 더 짧은 기간도 있다. 공직선거법과 같이 선거일로부터 6개월인 경우도 있다. 국회의 구성을 신속히 마무리하여 법적 안정성을 기하자는 취지에서 그와 같이 짧은 시효를 두고 있는 것이다.

공소시효는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국민의 처벌 감정이 약해진다는 가벌성의 측면에서 해석하는 입장과 오랜 기간이 지나면 증거가 흩어져 진실이 왜곡되어 공정한 재판을 해칠 수 있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그렇다면 국민의 처벌감정이 누그러지지 않거나 명확한 증거가 발견된 경우에는 세월이 지나더라도 처벌할 수 있다는 반증이 가능하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나라는 2011월 11일 13세미만이거나 장애를 가진 여자를 대상으로 한 성폭력 사범에 대해서는 공소시효 제도를 폐지하였고, 미국과 일본, 독일도 같은 이유에서 이를 폐지하거나 연장을 하고 있다. 같은 이유에서 살인사건과 같이 반인륜적인 범행에 대해서도 공소시효를 폐지하자는 것이 이번 법무부 개정안의 근본 취지이다.

1991년 3월 대구에서는 초등학생 5명이 도롱뇽 알을 주우러간다고 집을 나간 이후 11년 만에 유골로 발견되어 돌아와 사회적인 충격을 안겨 준 바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실체적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채 2006년 3월 25일 살인죄의 공소시효가 도과되어 영원히 묻혀버리고 말았다.

이러한 사례는 또 있다. 서울 압구정동에서는 당시 9세의 아동이 유괴되어 살해되었는데 공소시효가 도과되고 말았다. 친척 중 한 사람이 협박전화의 목소리와 유사하다는 점에서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었고, 이를 다룬 영화가 2007년 상영된 ‘그놈 목소리’라는 영화이다.

그 동안 특정범죄에 대해 공소시효를 연장하거나 폐지하는 취지의 특례입법은 사례가 많다. 「헌정질서 파괴범죄의 공소시효 등에 관한 법률」로 헌정질서를 파괴하거나 집단살해 사건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폐지해 왔다. 「5.18민주화 운동 등에 관한 특례법」은 특정 범죄에 대해 일정기간 동안 시효가 정지되도록 하는 특례조항을 두어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2011. 11. 「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나 「아동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은 13세 미만의 여자나 장애가 있는 여자에 대한 성폭력 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배제하였고, 「국제형사재판소 관할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또한 집단살해죄 등에 대해서도 배제하고 있다. 특히 미성년자에 대한 성폭력 범죄에 대해서는 피해를 당한 미성년자가 성인이 된 날로부터 공소시효가 진행하도록 하고, DNA 등 과학적인 증가 있는 때에는 10년을 연장하고 있다.

이번 법무부가 입법예고한 살인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한다고 하여 살인사건이 급감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공소시효가 폐지되어 언제든지 수사가 재개되고, 범인은 언젠가 반드시 처벌이 된다고 한다면 형법이 가지는 일반 예방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론이 없을 것이다. 수사기관도 공소시효에 쫒기지 않고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재수사를 통해 장기 미제사건을 해결 할 가능성도 크다.

2012년 6월 현재, 내란목적살인, 살인, 존속살인, 강간살인, 강도살인 등으로 수사 중이거나 기소중지된 인원만도 전국적으로 229건, 349명에 이르고 금년에 공소시효가 도과되는 것이 10여건에 달한다고 한다. 이런 저런 사유로 살인범을 처벌하지 못하는 경우가 그렇게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명백한 증거가 있고, 범인이 밝혀졌는데도 일정한 기간이 지났다는 이유만으로 형사처벌을 할 수 없다고 한다면 피해자 유족은 납득할 수 없고, 정의에 반하는 꼴이 된다.

국가의 형벌권은, 피해자의 사적인 보복을 금지하는 대신 국가가 처벌해 준다는 조건을 전제로 성립한 것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하는 탈리오 법칙이 아닌 정당한 절차에 의해 형사 처벌하는 것이 가해자에게도 유리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공소시효를 이유로 범인을 처벌하지 못한다면 사적인 보복도 재연될지도 모른다.

공소시효를 목전에 두고 검거된 사례도 있다. 1997년 전주에서는 3인조 택시강도 살인범 중 2인이 공소시효를 1년 남겨 놓고 검거되었다. 울산에서는 공소시효를 불과 6시간 남겨두고 불심검문에 걸려 체포된 사례도 있다.

반면 1983년 전북 익산에서는 친형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후 암매장한 사람이 매일 밤 악몽을 꾸는 등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2004년 12월 자수하였지만 공소시효가 도과되어 처벌하지 못하였다.

반면 공소시효에 임박하여 어쩔 수 없이 피고인의 신병을 확보하지 못한 채 기소한 사례도 있다. 검찰은 2011년 12월 공소시효를 4개월 남겨두고 이태원동 햄버거 가게 살인사건의 범인을 기소하였다. 미국에 있는 범인에 대해 범죄인인도청구 하면서 공소시효 도과를 염려하여 궁여지책을 강구한 것이다. 일단 기소하면 공소시효가 정지되기 때문이다.

살인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하더라도 이미 공소시효가 도과되어 버린 범죄행위에 대해서까지 처벌할 수는 없다. 소급입법 금지원칙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범행수법은 날로 교묘해 지고 있지만 수사기법은 이에 따라가지 못하는 케이스도 많다. 그러나 과학문명의 발달로 증거수집이나 분석기법도 날로 발전해 가고 있다. 이태원 살인사건도 자칫 미궁에 빠질만한 사건이었지만 검찰이 새로 개발한 혈흔형태분석과 진술분석기법을 활용하여 진범을 밝혀내었다고 한다.

생명을 침해하는 흉악범이나 반인륜범죄, 아동을 상대로 한 성폭력 사범은 공소시효가 폐지되어야 한다. 법무부의 금번 살인죄에 대한 공소시효 폐지법안은 뒤늦은 감은 있지만 이제라도 다행이다. 나아가 증거가 명백히 드러나 공정한 재판에 지장이 없다면 뇌물죄, 탈세범죄 등에 대해서까지 공소시효를 폐지하거나 연장하는 것도 검토하길 바란다. 국민이 처벌을 요구하고, 결정적인 증거가 있음에도 일정한 기간이 도과되었다는 이유로 범죄인을 무죄 방면하는 것은 사회 정의에 반하기 때문이다.



편집 | 이해오름 기자 (lhor70@skk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