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기관이 함부로 피의사실을 공표하면 처벌 받는다

  • 260호
  • 기사입력 2012.09.14
  • 취재 이수경 기자
  • 조회수 5499
무제 문서
: 노명선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故 노무현대통령의 사망과 박연차 게이트 사건 수사는, 검찰이 자신이 수사하고 있는 범죄사실을 악의적으로 공표한 전형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다. 수사 도중 약 40여회에 걸쳐,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언론 브리핑을 통해 낱낱이 공표함으로써 혐의사실을 기정사실화하였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한명숙 전 국무총리에 대한 수사,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에 대한 수사 또한 수사공보준칙마저 무시하고 수사상황을 자세히 언론에 공표함으로써 관련자의 명예를 훼손하였다는 주장이다.

우리 형법은 수사기관이 공소제기 전에 피의사실을 공표하면 형사처벌하고 있다(동 제126조) 그러나 2006년부터 2011년까지 사이에 고소, 고발된 총 208건 중 검사나 수사경찰관이 이 죄명으로 처벌받은 사람은 한명도 없다고 한다.

2012. 9. 국회에서는 ‘피의사실공표죄 처벌의 실효성 확보’라는 주제로 공청회가 있었다. “새 법률을 만들어 처벌하자는 공청회는 있었지만 기존의 처벌 규정을 살려보자는 공청회는 처음”이라는 멘트도 있었다. “검찰은 자신들이 알리고 싶어 하는 것은 부풀려 알리면서도, 숨기고 싶어 하는 사실을 폭로한 애꿎은 사람들만 처벌하려 한다”는 비방도 빼놓지 않았다.

공소제기 전에 피의사실이 공표되면, 수사기밀이 누설되어 수사가 방해받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무죄추정을 받고 있는 피의자의 명예가 손상되는 폐해가 크다. 종래 우리의 형사사법이 전자에 무게를 두었다고 한다면 최근에는 피의자의 인권보호에 중심축이 이동되었다고 할 수 있다.

각종 대형 의혹사건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고 공정한 처분을 하는 것이 검찰 본연의 자세다. 그렇다고 하여 초기부터 섣불리 수사에 착수하거나 모든 의혹에 대해 해명하려 한다면 얻게 되는 득보다는 오히려 실이 더 클 수가 있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언론에서 의혹을 제기하는 초반부터 검찰이 직접 수사를 착수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하여 검찰이 가만히 있는 것만은 아니다. 언론이 떠들어 주고, 국회의 특별조사위원회 등이 조사해서 증거가 명백히 드러날 때 쯤 검찰이 나서고 있다. 어찌 보면 검찰은 초반에 내사는 하되, 언론의 예봉은 피한다고 하는 것이 솔직한 표현일 것이다. 그래서 뒤늦게 검찰이 수사의 결과물이라고 내놓으면 의혹이 해소된 것인 양 검찰의 공(功)을 인정해 주는 것은 아닐까.

반면 우리 검찰은, 의혹의 초기단계에서부터 나서다보니 의혹의 전부를 해명해주어야 하는 책임까지 부담하고 있는 것 같다. 잔뜩 부풀려진 의혹은 쟁쟁한 사람 몇 명 구속했다고 하여 해명되었다고 인정해 줄 리가 없다.

검찰의 수사영역은 크게 두 가지 부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성폭력범죄나 폭력 등 주로 길거리범죄(street crime)에 대해서는 검사 개인의 가치관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범죄가 있으면 범인을 밝혀 기소하는 것이 검사의 책무이다. 만약 범인을 밝히지 못하면 검사의 수사능력이나 검찰조직의 수사역량이 문제된다.

반면 공무원 뇌물사건이나 선거법위반, 대기업 비자금 사건 등 속칭 화이트칼라 범죄(white crime)는 검사의 가치관이 개입될 여지가 크다. 그래서 검사는 그러한 수사를 하게 된 동기, 경과와 그 결과물에 대해서 국민에게 설명하고 설득할 책임이 있다.

그렇다고 하여 기소하지 않는 사실에 대해서까지 자세히 설명하려 한다면 곤란하다. 건너간 돈이 적법하다는 이유를 자세히 해명하다보면 자칫 관련자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명예를 훼손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기소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 해명성 발표는 하지 않아야 한다. 적어도 일본은 위법성이 없는 금품 수수나 정치헌금의 경우에는 수사개시단계는 물론이고 수사결과물을 발표하는 경우에도 일체 언급하지 않고 있다. 심하다고 할 만큼 철저히 함구하고 있다.

만약 우리나라 검찰이 이렇게 한다면 억측을 해서 비난을 퍼부을 것이 뻔하다. 일본에서도 록히드 사건이나 리쿠르트 사건 수사결과 발표 당시 일부언론에서 이러한 식의 비판도 있었다.

일본의 유명한 법사회학자 겸 저널리스트인 에가와 쇼코(江川紹子)는 일본의 검찰이 수사 중일 때에는 수사 중이라는 이유로 기자들의 질문에 일체의 대꾸를 하지 않고, 수사결과 발표 시에는 피고인 이름과 기소범죄사실 만을 간단히 발표함으로써 국민의 알권리와 언론의 정당한 비판의 기회를 박탈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검사가 기소하는 범죄사실에 대해서 공표하는 것은 어느 정도 국민의 알권리와 언론의 표현의 자유에 부응하는 점도 있다. 기자회견을 통해 피의사실을 공개했다는 이유만으로 피의사실공표죄로 처벌하겠다고 하면 검찰의 입을 막게 될 지도 모른다.

헌법이 요구하는 공익 즉, 국민의 알권리, 언론, 출판의 자유, 보도의 자유라는 법익과의 균형이 필요한 부분이다. 우리 대법원도 비록 민사사안이지만 같은 취지의 판단을 해 오고 있다(사건번호:2001다49692 등)

사건접수대비 피의사실공표죄로 처벌받은 검사나 경찰관이 전혀 없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피의사실 공표죄의 실효성은 확보되어야 한다. 수사기관의 잘못된 공표행위는 처벌되어야 마땅하다. 이를 가지고 검찰이 억울하다고 할 것은 아니다.

한편 이러한 피의사실공표죄의 처벌대상을 수사기관으로 한정할 것만은 아닌 것 같다. 피의사실에 대해 영장을 처리하는 법원직원이나 법관의 부당한 공표행위도 처벌되어야 하지 않을까. 또한 언론기관이 다양한 채널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수사기관에 간단한 확인만을 거쳐 마치 대서특필하는 식으로 피의사실을 폭로하는 것도 문제다. 수사기관에 제보를 하고 언론플레이를 해서 기정사실화하려는 하는 악질적인 제보자도 있다.

그래서 영국은 처벌 대상을 법원판결에 부당한 영향을 주는 피의사실공표 행위에 대해서 널리 처벌 규정을 두고 있다(Contempt of Court Act 1981, 제3조, 4조, 5조 참조). 독일 또한 마찬가지이다. 수사기관만을 처벌하는 규정을 두는 나라는 우리나라 뿐이다.

이러한 피의사실 공표행위는 공정한 재판을 방해하는 사법방해 행위에 해당한다. 그래서 향후 수사기관은 물론 수사과정에서 참여한 변호사, 제보자, 언론인, 법원직원, 법관 등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사법방해죄로 확대, 신설하기를 바란다.

그 동안 피의사실공표죄로 처벌하는 사례가 없다는 점에서 제3의 수사기구를 두자는 주장도 있지만 기존의 검찰, 경찰과의 관계설정도 어렵다. 자칫 기존 수사기관과 갈등도 우려된다. 소탐대실(小貪大失)이 될 수 있다.

검찰이 부당하게 피의사실을 공표하면 재판의 공정성을 해하였다는 이유로 사건자체를 기각해 버림으로써 검찰에게 한방 메길 수도 있다(형소법 제327조제2호). 영국에서는 Sheppard v. Maxwell사건(384 U.S. 333, 1966)에서 사실심 법관이 피고인을 ‘massive, pervasive, and prejudicial publicity’ 로부터 충분히 보호하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사건을 파기한 적도 있다. 민사상으로 사후 손해배상책임도 가능할 것이다.

수사기관이 ‘일단 발표하고 아니면 말고’라는 식의 부당한 피의사실공표행위에 대해서는 끝까지 추적하여 형사처벌되어야 한다. 그러나 수사결과 발표 때마다 이것을 문제 삼아 처벌하려 한다면 국민의 알권리, 언론, 출판, 보도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 될 것이고, 자칫 사회적 비판의 대상이 묻혀버리게 될지도 모른다.

[사진설명:가을 초입 캠퍼스에서 제자들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