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 강제동원된 피해자들에 대한 <br>승소판결의 의미와 전망

일제시대 강제동원된 피해자들에 대한
승소판결의 의미와 전망

  • 284호
  • 기사입력 2013.09.18
  • 편집 이수경 기자
  • 조회수 5804


글 : 노명선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최근 부산고등법원(2013. 7. 30.)과 서울고등법원(2013. 7. 10.)에서는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의 취지에 따라 일제시대 강제동원된 우리나라 피해자들이 미쓰비시중공업(주)나 신일본제철(주)를 상대로 청구한 손해배상사건에서, '일본 회사들은 피해자들에게 각 8,000만원에서 1억원까지 배상하라'는 원고 승소판결을 선고하였다. 이는 2007. 11. 같은 당사자들 간 일본에서 제기되어 원고 측이 전부 패소한 일본 최고재판소 판결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판결이어서 특히 주목을 끌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1심과 2심에서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 의해 민간인의 손해배상청구권도 소멸되었고, 소멸시효도 지나 더 이상 청구할 수 없다는 이유로 원고 패소 판결한 적이 있었다. 다행히도 우리 대법원이 이러한 원심의 판단을 뒤 짚고 다시 판결하라고 돌려 보낸 것이었다.

원고 승소판결의 취지는, 피고인 일본기업 측의 강제연행 및 강제노동 강요행위는 당시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적극 동참한 반인도적인 불법행위에 해당하므로, 1)양국 국가간의 청구권협정으로 개인적인 손해배상 청구권까지 소멸되었다고 할 수 없으며, 2) 이러한 반인륜적인 범죄로 인한 손해배상사건에 대해, 가해자가 소멸시효를 주장하는 것은 권리남용에 해당한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피해자들의 일본기업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은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일본 최고재판소의 종래 패소확정판결은 대한민국의 헌법정신에 어긋나는 것이어서 효력이 없다고 덧붙이고 있다.
현재 위 판결은 재차 대법원에 상고되어 있지만 큰 이변이 없는 한 일본 회사 측의 상고는 기각되고, 원고승소로 확정될 전망이다. 만약 동 판결이 확정되면 원고 측은 우리나라에 있는 피고인 일본회사의 지사사무실에 대해 압류절차를 밟을 것이고, 일본 미쓰비시나 신일본제철이 가지고 있는 한국 기업에 들에 대한 주식에 대해서도 압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양국 간 경제거래, 주식시장에도 파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이 사건 판결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현재 우리 정부는 2004년 이후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의해 일제시대 끌려가 강제노역을 당한 피해자들에 대한 진상조사와 지원 등을 위한 위원회를 설치, 운영하고 있다. 금년까지 한시적이라고 하지만 그 동안 조사를 마치고 강제동원 피해사실을 확인한 인원만도 약 22만여 명에 이르고 있다.
그 중에 군인과 군속으로 동원된 피해자를 제외하고 순수 민간기업에 강제동원 된 피해자만도 10만여 명을 넘고, 적어도 이 숫자만큼은 당장 소송을 제기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에서는 피해사실이 확인된 사람에게 생활지원금을 주고 있다. 사망자나 행방불명자 유족 등에게는 1인당 2,000만원을, 부상자에게는 등급에 따라 300만원에서 2,000만원까지 주고 있다. 일본 회사에 대한 청구권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보상'이나 '배상'이 아닌 '지원' 형식으로 지급하고 있는 것이다.
어쨋거나 이와 같이 피해자로 확인된 사람들이 일시에 소송을 제기하게 되면 그 파장은 얼마나 클까? 양국 간의 외교는 물론 무역 등 경제거래에 심대한 영향을 줄 것은 뻔한 이치다.

> 이러한 문제를 원만히 해결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한일 간 청구권협정문의 정확한 내용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국가 간의 공식적인 문건내용의 해석이나 사법부의 손해배상 판단이전에 우리보다 한발 앞서 같은 문제를 해결한 독일의 예를 참고로 할 수 있다.
독일은 국가와 민간기업이 공동출자하여 손해배상을 위한 재원을 마련하고, 폴란드, 헝가리 등의 피해국가로부터 피해사실이 확인된 자료가 도착하면 간단한 확인절차를 거쳐 재단의 기금으로 배상을 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그 동안 피해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를 거쳐 피해사실을 확인해 오고 있다. 현재 까지 피해사실이 확인된 인원만도 22만명에 이르고 있지만 확인되지 않은 피해자들이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진상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는 일본 정부의 적극적인 협력이 절실하다. 필자도 조사위원으로 재직하고 있지만 당시 피해자들의 진술이나 유족들의 진술만으로는 불충분한 점이 너무나 많다.
이를 위해 양국의 외무부․외무성, 법무부․법무성, 기획재정부․산업경제성 등 관련 부처가 공동조사단을 만들어 피해 진상을 확인하고, 그들에 대한 해결방안을 논의할 것을 건의한다.

정치적, 외교적으로 해결해 줄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너무 오래 참고 기다렸다. 사법부의 일도양단식의 판단에만 맡긴다면 양국 외교는 물론이고, 민간경제 교역에도 많은 악 영향을 줄 수도 있다. 한일 간 시각차가 큰 청구권협정의 내용이나 국제사법재판소로 가자는 엇갈린 주장만을 계속하기에는 피해자들의 고통이 너무 크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